이른바 ‘VIP’를 통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15일 JTBC와 인터뷰에서 VIP는 ‘김건희 여사’를 지칭한 것이 맞고, VIP를 통한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를 언급한 것은 해병대 후배들에게 과시하려고 했던 것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공익제보자 김모 변호사는 “허세라기엔 상당히 구체적이었다”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16일 ‘민중의소리’에 이같이 말하며, 이 전 대표가 자신과 통화에서 한 얘기들이 상당히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수사를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9일 자신이 임 전 사단장을 구명하기 위해 “VIP한테 얘기를 하겠다”고 말했다는 통화 녹음 보도가 나온 뒤에는 “VIP는 윤석열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가 아닌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지칭한 것”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랬다가 지금은 김 여사를 언급한 것이 맞지만 허세였다는 취지로 번복한 것이다. 이 전 대표는 JTBC에 “(해병대) 후배들이고 하니까 제가 한 것처럼 그 문자를 토대로 한 것을 (VIP에게 로비를) 한 것처럼 부풀려서 얘기한 부분이다”고 했다.
공익제보자 말처럼 실제 통화 녹음을 보면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와 관련된 말들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또한 내부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알지 못하는 외부자가 임의로 꾸며서 부풀렸다고 보기에도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
‘민중의소리’가 확보한 작년 8월 9일 통화 녹음에서 경호처 출신 송모 씨가 한 말을 보지. 송 씨는 이 전 대표와 임 전 사단장의 매개 역할을 한 인물이다.
“나는 사단장 여기만 잘 살피고 있는 거라. 내가 통화도 하고 그랬는데, 내가 그랬어. ‘어떤 경우가 와도 도의적 책임은 지겠지만, 그걸로 인해서 전혀 사표라든지 이런 건 내지 말아라’, ‘사의 표명을 하지 말아라’ 그러니 자기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자기가 여태까지 쌓아 올려서. 군 작전에 실패했다던지, 아니면 내부 관리를 잘못했다든지, 근데 밖에 나가서 대민 돕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그걸 사단장 책임이라고 하면 그건 말이 안 된다. 여튼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어.”
여기서 “밖에 나가서 대민 돕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그걸 사단장 책임이라고 하면 그건 말이 안 된다. 여튼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7월 31일 대통령실 청사 내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임 전 사단장을 혐의 대상으로 특정한 해병대 수사단 수사 내용을 보고받은 뒤에 격노하면서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하느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통화를 한 작년 8월 9일은 윤 대통령의 ‘격노’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기 한참 전이었다. 윤 대통령의 ‘격노’ 보도는 그로부터 19일 뒤인 8월 28일에 처음 나왔다.
또한 같은 날 이 전 대표와의 통화에서 김 변호사가 “위에서 (임성근을) 지켜주려고 했다는 건가요? VIP 쪽에서?”라고 묻자, 이 전 대표는 “그렇지. 그런데 언론이 이 XX들을 하네”라고 답했다. 이어서 김 변호사가 “그럼 얘기가 원래 다 되어 있었던 거예요?”라고 물었고, 이 전 대표는 “내가 얘기를 풀었지. 하여간 좀 있어봐”라고 했다.
8월 28일 통화에서는 이 전 대표가 김 변호사에게 “오늘 얘기한 것 서로 지키기로 하는 걸로 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단순히 과시하기 위해 허세를 부린 말이라면 굳이 입단속을 당부할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는다. 이 통화가 있기 전 두 사람은 서울 모처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는데, 이 자리에서 이 전 대표는 ‘내가 임성근 로비를 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V1’, ‘V2’로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각각 지칭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말 이 전 대표와 제보자 김 변호사 등이 들어가 있던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임 전 사단장과의 골프모임 관련 대화가 오갔다는 사실이 보도된 이후에 단톡방 멤버들이 이 전 대표를 통한 VIP 로비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시도를 한 정황도 확인됐다. 단톡방 멤버 중 한 명인 사업가 최모 씨는 이달 초 박정훈 대령과 박 대령의 동기를 잇따라 만나 ‘제보자를 믿지 말라’ 등의 말을 전한 것으로 ‘민중의소리’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또 다른 단톡방 멤버인 청와대 경호처 출신 송모 씨는 지난달 30일 김 변호사와 통화에서 김용현 경호처장이 수사외압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취지의 말을 하면서, “그쪽 중심으로 보면 다 나올 것이다. 그런 것들을 유심히 보라”고 말했다. 해당 내용 역시 통화 녹음에서 확인된다. 이 전 대표 말대로 단순히 허세에 불과했다면 다른 단톡방 멤버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매우 어색한 지점이다.
아울러 이 전 대표는 JTBC에 “작년 5월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때부터 녹취를 했다는 게 제가 생각하기에는 어떤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이게 가능하겠느냐”며 자신을 통한 VIP 로비설이 공익제보자 김 변호사의 기획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도 폈다.
이에 김 변호사는 “휴대전화 자체에 애초에 모든 통화를 녹음하는 기능이 있었는데, 채 해병 (사망) 사건 전에 있었던 일을 어떻게 기획한다는 것이냐”고 반박했다. 휴대전화 자동 녹음 기능은 일반인들도 상당수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