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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탈출의 방식, 모허 [만화경]

모허 '만화경' ⓒMCS

음악을 들으며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끌리는 멜로디와 리듬, 화음과 사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목과 노랫말로 함께 표상하는 세계가 음악을 듣는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기 이야기 같다고 느껴지면 끌리고 빠져든다. 비슷한 사건을 겪거나 흡사한 감정을 느꼈다는 노래는 동병상련의 힘을 발휘한다. 물론 음악은 다른 정체성의 삶을 살아가는 이까지 설득할 수 있는 음악언어의 마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 동일시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만큼 힘이 세다.

사이키델릭 포크 듀오 모허의 첫 음반 [만화경]을 들으며 내 이야기 같다고 느낄 사람도 많지 않을까. “그날로부터 한 달 하고 사흘 지나도 여전한 비명소리에 / 책임질 사람 하나 없는 곳”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첫 노래 ‘방백’을 들으며 지금 한국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정도는 예사롭다. “무거워진 다리 뒤 새겨진 의심 / 밀어낸 밤들에다 녹여낸 마음”(‘박수기정’) 같은 노랫말은 누군가의 일기장을 옮겨둔 것 같다. “어지러워 돌아가는 게 세상이 도는 건지 내가 돈 건지”(‘만화경’)라는 노랫말 역시 흔한 일상이다.

하지만 모허의 노래에서 한탄하는 노랫말만 골라내 다들 그렇다고 단정하는 건 모허의 음악을 일면적으로 한정하는 일이다. “내가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붉은 해를 데려올 거야 / 내려보는 벽을 기어올라 바다 위를 날아갈 거야”(‘박수기정’), “하나만 제발 하나만 더”(‘발장구’) 같은 노랫말의 간절함 또한 살펴야 한다. “난 빈손으로 태어났지만 난 너무 많이 받아 왔어요‘(’한낮‘)의 성숙한 통찰까지 빠트리지 말아야 한다.

Moher(모허) - Sand Grave(모래 무덤)

모허의 첫 음반은 이렇게 삶의 희노애락을 모두 살피며 삶의 총체성에 다가간다. 꿈꾸고 사랑하고 도전하고 좌절하고 분노하는 삶의 다층적인 편린들이 시적이거나 직설적인 노랫말로 그려진 덕분이다. 기쁘거나 슬픈 순간만 담아내지 않고 여러 감정이 공존하는 삶의 복잡함을 드러낸 음악은 리얼하다. 게다가 ’부지깽이‘에서는 ”기어코 열쇠를 낚“고, ’맨발로 뛰는 여자‘에서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의 북극성까지 보여줌으로써 탈출구를 마련해둔 음악은 사려 깊은 면모까지 드러낸다.

모허는 이 많은 이야기를 몽환적인 사운드로 접합한다. 기타, 베이스, 아이리시 휘슬, 아이리시 부주키, 퍼커션, 신시사이저를 비롯한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은 첫 곡 ‘방백’에서부터 사이키델릭 할 뿐 아니라 다른 지역 민속음악의 기운이 배어난 사운드를 펼친다. 모허의 음악이 익숙한 어법에 국한되지 않음을 드러내는 곡들은 단지 다른 사운드를 구사할 수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의 산물이 아니다. 한 사람의 내면을 무의식까지 드러내려는 노력이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어 실존하고 감각하는 세계를 최대한 확장해 재현하려는 모허의 방식이다. 감정과 사건을 재현하거나 토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근거와 너머를 탐색하는 음악은 “너를 잃고 나도 잃어버”리는 일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닐 수 있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특히 제주도의 박수기정을 제목으로 삼은 곡 ‘박수기정’이 한국적인 질감에 머물지 않고 신령스러운 아우라를 뿜어낼 때 이들은 스스로를 해방시킬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것이 사이키델릭한 음악의 가치인데, 모허는 사이키델릭 포크 사운드와 제주의 특정 지역을 연결해 곡을 완성함으로써 제주 음악/음악인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산과 바다가 가까운 곳에서 만든 음악은 이렇게 다를 수 있다.

모허 - 발장구 (Band Version)

모허는 무한의 세계로 확장하는 사운드를 아름답게 직조해냄으로써 자신들의 개성과 역량을 증거한다. 아이리시 휘슬과 아이리시 부주키가 몽롱한 여운을 배가시키는 음악, 목소리를 높이거나 낮추거나 드럼을 사용하지 않고 연주하는 음악은 내내 꿈처럼 물처럼 흘러간다. 공감하게 되는 음악이고, 위로가 되는 음악이다. 그 뿐 아니라 계속 상상하게 하는 음악이다. 현실의 굴레가 아무리 굳건해도 음악은 이렇게 탈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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