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을 만세] 2024 경기마을주간, 이 무용한 것들의 쓴맛

1. ‘수상한 마을’ 개막 퍼포먼스 단체사진 ⓒ필자 제공

2024년 6월 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간 경기도 안양시에서 ‘2024 경기마을주간: 마을은 놀라워’가 열렸다. 이번 마을주간은 33개의 프로그램이 이틀 동안 운영되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올해 3년차에 들어선 경기마을주간은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주관한다.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 중에 시작한 경기마을주간은 경기도내 마을공동체들이 참여하는 경기도마을공동체들의 축제다. 경기도는 광역단체 중 가장 인구가 많고 그만큼 공동체의 숫자도 많다. 마을공동체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서면서 각종 마을지원이 시작되었으나 각 기초단체에 따라 공동체 지원이 축소되거나 폐지되기도 하고, 확대되기도 했다. 경기도는 농촌지역과 도농복합, 또는 도시형 기초단체가 뒤섞여 있다. 기초단체의 구조 자체가 완전히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어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일수록 마을공동체의 움직임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마을주간은 ‘마을은 놀라워’라는 주제로 컨퍼런스와 대화모임을 주로 하는 ‘수상한 마을’과 마을활동가 체육대회인 ‘놀러와 명랑운동회’를 구성했으나, 경기도 내 아리셀 공장 화재참사로 체육대회는 취소하고 ‘수상한 마을’만 축소 운영하게 되었다.

뜨거운 6월 말에 행사를 준비하면서 여러 우려가 있었다. 더위가 심하지 않을까, 또는 장마가 닥치지 않을까. 31개 시군의 공동체들이 과연 얼마나 모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폭염과 장마를 둘 다 고려해, 외부 활동을 최소화하고 33개의 프로그램이 자리를 나눠 진행하도록 구성했다. 주 행사장으로 공간이 모자라 외부 대관도 감행했다. 마을주간 개시 직전 사전 신청자가 900명에 육박했고, 각 프로그램 운영진만 해도 150명에 다다랐다. 1천 명을 예상하긴 했으나 실제로 숫자가 계속 올라가니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찾아왔다.

실제로 이틀간 약 1천 명의 마을공동체 활동가들이 경기마을주간에 모였다. 용인과 수원, 파주에서는 버스를 대절해 왔다. 사전 신청과 다르게 인원이 몰린 프로그램은 의자가 부족하거나 장소가 빼곡해져 참가자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이틀간 경기도를 비롯한 각 지역의 활동가들이 모여 웃고 떠들고 즐겼다. 마을정책과 마을지원법, 경기도 기회소득, 마을활동가의 사회적 인정, 경기도의 마을 관련 전략사업 등 진지하게 마을의 정책을 살펴보고 미래를 모색하는 프로그램이 묵직한 주제를 활동가들의 언어로 풀어냈다. 공동체성이 사라진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경기도내 작은도서관의 커뮤니티 의미, 마을미디어의 현재, 주민자치와 마을공동체의 수상한 관계를 모색하는 자리에서 활동가들의 당면한 현실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주민자치와 마을공동체의 수상한 관계’ 컨퍼런스 모습 ⓒ필자 제공

자유학교는 이번 마을주간에 기획팀에 참여해 먹고 노래하고 이야기 나누는 대화의 만찬 ‘빅런치’와 민주주의 근육을 키우는 ‘데모크라시 피트니스’를 통해 동적인 대화모임을 선보였고, 용인시에서 인문학공동체를 운영하는 문탁네트워크의 비폭력대화, 사주, 타로, 별자리로 보는 마을활동가 고민상담 프로그램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문화기획을 주로 하는 플랜포히어는 마을에서 작업장이 사라진 이유를 찾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마을에서 소득을 올릴 목적이 아닌, 생활자치를 위한 작업장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겪게 된 변화에 주목했다.

대체로 이번 마을주간에서 각 프로그램을 관통한 주제는 ‘변화의 시대에 마을공동체가 할 일’라고 할 수 있다. 마을공동체가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며 각 기초단체의 지원이 시작된 것은 2015년쯤으로 기억한다. 마을공동체의 붐업 시즌이었다. 마을공동체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인식이 무르익을 때쯤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마을공동체뿐 아니라 다수의 공동체사업들이 중단되었고, 사업이 아닌 자발적 움직임조차 움츠러 들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위험해지는 시기라는 건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인류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는 예견은 무수했으나 그 실체에 대해선 막연했다. 팬데믹 이후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경제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고립과 위기라는 키워드가 속속 등장했다. 급격한 인구변화와 산업의 해체와 융합을 거치는 혼란이 도래했다.

2024년 경기마을주간을 기획하며 공유지와 커먼즈, 로컬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함께 논의했다. 다들 무한경쟁의 자본주의체제와 수도권 중심주의가 답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으나, 이 익숙한 체제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답답했다. 마을미디어나 마을돌봄, 또는 문화예술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도구’라는 발표에1) 동의한다. 마을작업장으로 대표되는 생활자치는 점점 자취를 감춘다. 상장례를 비롯한 일상의 의례가 외주화된 것처럼, 빨래나 먹거리생활도 배달형으로 외주화된 도시와 아직 그 외주가 도착하지 못한 비도시지역이 공존한다. 버스의 배차간격이 40분을 넘는 지역과 인공지능자율주행버스를 시범운영하는 지역이 경기도 내에 공존한다.

행정도 당연히 받아야 하는 서비스가 되었고,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행하던 돌봄과 살림 역시 이제 행정서비스의 일부로 취급받는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주체적인 역할까지 오지 못한 사람들은 누군가 이 서비스를 더 많이, 자주 배송해주길 바란다. 이 사이에 마을활동가들이 있다.

마을활동가들은 본인들의 소득과 무관하게, 함께 하는 것이 좋아서 마을활동을 한다고 말한다. 현장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다보니 더 많은 지원과 성장 방법을 찾고자 한다. 경기마을주간에서는 활동가들이 겪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면했고, 소액의 예산으로 진행한 사업의 성과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사이사이 장탄식의 안타까움과 눈물, 서투른 과정에 대한 웃음도 이어졌다. 다수의 활동가들은 각 토론회와 컨퍼런스의 주제를 보고 참가할 프로그램을 선정했으며 다른 지역의 사례를 더 많이 듣길 원했다.

요컨대, 이들은 다른 지역의 사례를 통해 더 현명한 공동체 활성화 방안을 찾기 원했고, 외롭지 않은 마을을 만들고 싶어 했다. 1천 명에 육박하는 인원을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마을활동가’들이 모이기 때문에 아무 염려가 없다고 답변했던 것처럼, 활동가들이 모인 자리는 책임을 따져 묻기 전에 누군가 이미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와 에코백, 플라스틱 부채 교환을 진행했는데 안쓰는 텀블러와 에코백을 가져온 활동가들이 많아 부족함 없이 나눠 쓸 수 있었다. ⓒ필자 제공

마을을 비롯한 공익활동의 가장 큰 장점은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본다. 거래로 증명되는 프로페셔널리즘보다, 누구든 잘하는 사람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관용이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한국적 특성이 작동하기도 한다. 개인이 핵심이 될 때 부작용은 당연히 따라오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우리끼리’가 강조되었을 때 외부에 대한 개방성이 상실되기도 한다. 우리끼리의 즐거움을 타인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지, 삽시간에 폐쇄적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활동가는 성인군자가 아니고 성직자도 아니다. 마을활동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활동가 개인의 역량으로 헤쳐 나가기엔 이제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특히 지역생산율이 낮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은 더 촘촘한 거버넌스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2024년의 마을은 모든 사회적 문제가 농축되어 있었다. 고립과 위기 대응, 행정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세한 부분, 노인들의 활력 있는 삶, 대안적 삶을 찾는 주민들의 기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상까지 수십 가지의 키워드가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커다란 판을 만들었다. 이틀 동안 활동가들은 같이 울고 토닥이며 뜨거운 6월을 마무리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나는 이들을 보며 ‘무용한 것을 사랑한다’던 미스터선샤인의 대사를 떠올렸다. 예전 나의 한 스승도 ‘문학은 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용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돈도 안 되고 경력도 안 되는 마을활동, 이것들은 무용한 것인가 스스로 묻는다. 증명할 수 없는 쓸모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마을주간을 닫으며 쓴맛을 느낀다. 이 무용한 쓴맛에 대해서 마을은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사람의 힘만으로, 마을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2024 경기마을주간에 관해서는 http://week.ggmaeul.or.kr에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각주

1) 진저티프로젝트 발표 “마을임팩트 마을변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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