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가 쏟아진 9일 오후 경북 경산시 진량읍 평사리 평사교에서 소방구조대가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이날 오전 5시 12분쯤 평사리 소하천 인근 농로에서 침수된 차량을 확인하던 40대 여성 A 씨가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24.07.09. ⓒ뉴스1
폭우 속에서 쿠팡의 ‘로켓배송’을 위해 택배배송을 하던 40대 여성 택배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런데 숨진 노동자가 사고 당일 폭우로 배달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일을 하다가 하천 급류에 휩쓸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로켓배송’이라고 불리는 쿠팡의 배달 시스템이 다시 한번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과 전국택배노동조합은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은 故 정슬기 님의 과로사 사건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당연히 배송을 멈춰야 할 천재지변의 상황에서도 노동자를 배송업무로 내모는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이 낳은 또 다른 참사”라고 비판했다.
법의 허점을 노린 “꼼수 고용” 산재보험도 미가입...“처벌해야”
앞서 평사리 소하천 부근에서 쿠팡 물품을 배달하던 A 씨가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실종됐다. A 씨는 지난 11일에서야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는 쿠팡에서 운영하는 ‘쿠팡플렉스’를 통해 택배배송을 하는 ‘쿠팡플렉서’였다. 쿠팡플렉스는 자가용으로 쿠팡 물품을 배달하면서 건당 수수료를 받는 시스템이다. 이를 이용하면 쿠팡에서 제공하는 쿠팡 플렉스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회원가입하고 간단한 교육 영상을 시청한 뒤, 애플리케이션 안내에 따라 배송 일을 할 수 있다. 쿠팡은 원할 때 일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인기가 높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는 “꼼수 고용”이라는 비판이 있다.
고용책임이나 산재책임도 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배달비용도 쿠팡이 일방적으로 정한다. 무엇보다 쿠팡플렉서 역시 기존 ‘쿠팡친구’(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소속 배달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쿠팡이 정해놓은 마감 시간을 지켜야 하는 압박을 받는다. 만약 쿠팡플렉서가 배송마감 시간을 넘길 경우 다음부터 배송업무를 할당받지 못한다.
A 씨 역시 배송시간을 지키려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A 씨는 사고 당일 새벽에 쿠팡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배달을 못 하겠다”고 연락했지만, 쿠팡 측은 ‘그 현장에서 철수하고 다른 곳부터 하라’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이 홍보하는 쿠팡플렉스 안전 유의사항에도 악천후 날씨에 관한 안전수칙은 없었다.
A 씨는 산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았다.
지난해 7월부터 개정 시행된 산재보험법 시행령에 택배노동자와 퀵서비스노동자 등 18개 업종에 종사하는 특수고용직·플랫폼노동자도 산재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 됐지만, 쿠팡은 쿠팡플렉서를 산재보험에 가입시키지 않고 쿠팡플렉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정혜경 의원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도 쿠팡플렉서가 산재보험 의무 가입 대상인지 아닌지 판단을 안 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플렉서들의 산재보험 가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과 전국택배노동조합은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폭우 속 로켓배송 쿠팡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2024.07.17. ⓒ민중의소리
정혜경 의원은 “법의 미비를 이용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쿠팡의 경영진, 쿠팡의 수많은 변호사가 법의 허점을 찾아내 혁신경영으로 포장했을 것”이라며, 고용노동부에 “쿠팡의 노동자 편법 고용, 고용보험·산재보험 미가입에 대해 처벌해야 한다. 법의 미비가 있다면 바로잡아 쿠팡플렉스 노동자도 (산재보험 가입 의무 대상인) ‘노무제공자’에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광석 택배노조 위원장은 “결과적으로 쿠팡은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새벽 3시부터 고인이 연락한 새벽 5시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이미 때가 늦었다고 볼 수 있는 새벽 5시 고인의 연락을 받고서도 배송 중단을 지시하지 않았다”면서 “그야말로 쿠팡 로켓배송의 처참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혜진 쿠팡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이번에 사망한 쿠팡플렉스 노동자도 폭우가 쏟아지고 천에 물이 불어나는 위험한 환경에서도 배달을 해야 했다. 제때 배달을 마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해서 일을 못 받게 될 우려 때문”이라며 “이런 재난 상황에서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권리”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들은 위험하다고 판단할 때 멈출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노동자로 인정되지도 않고, 위험하다고 말하는 순간 일감을 받을 수 없는 쿠팡플렉서가 그런 권한을 행사하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