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경제 칼럼인데 싸가지가 웬 말이냐?’ 싶으신 분들도 있으실 텐데, 의외로 싸가지는 경제학에서 꽤 중요한 연구 과제다. 경제학은 인간이 왜 그런 경제적 선택을 하는지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인데, 싸가지는 인간의 선택에 매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주류경제학에서야 인간은 싸가지고 뭐고 무조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을 한다고 가르치지만 실제 사람은 그렇지 않다. 특히 나처럼 협력적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인간에게는 비록 그 선택이 나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죽어도 저 싸가지 없는 놈과는 함께 하지 않겠어!”라는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즘 한창 멍멍이판이 된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TV 토론을 보면서 나는 나름대로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됐다. 한동훈 후보, 저 인간은 저렇게 싸가지 없이 굴다가 언젠가 크게 망할 것이라는 점이다.
유난히 싸가지가 없는 정치인
“나경원 후보가 얘기할 때 30초 이상 말을 참지 못 한다. 10초에 한 번씩 끼어든다. 사소한 공격도 참지 못한다.”
JTBC 앵커 출신인 박성태 사람과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이 17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한 말이다. 멍멍이판이 된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꽤 재미지던데, 한동훈의 이런 싸가지 없는 태도는 쏠쏠한 재미를 한층 더한다. 이번에는 또 어떤 싸가지 없는 태도를 보여줄지 은근 기대도 되더라니까?
한동훈의 이런 태도는 그의 고질병이다. 그가 법무부장관 시절 민주당 의원이 “오늘이 마지막 상임위이신가, 아니면 다음주가 마지막 상임위이신가 궁금해 하는데…”라고 묻자 한동훈이 “그냥 의원님 혼자 궁금해 하시면 될 거 같아요”라고 답한 대목! 나는 그 대목에서 진심으로 ‘와, 이런 싸가지 없음은 진중권 이후 실로 오랜만인데!’라며 감탄했다.
문제는 한동훈이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나는 지난주 칼럼에도 썼듯이 진중권을 매우 비겁한 평론가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싸가지가 없다고 욕을 하지는 않는다. 그건 그 평론가의 스타일이다.
또 평론가로서 그런 싸가지 없음은 평론가로서 그의 상품성을 높인다. 싸가지가 없는 말로 상대를 조롱하면 상대가 약이 오른다. 그런데 상대가 약이 올라할수록 내 뇌에서는 도파민이라는 쾌감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게 은근히 사람을 짜릿하게 만든다.
사실 진중권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별 내용이 없다. 그런데도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평론가 시장에서 휘젓고 다닐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싸가지 없는 말투가 사람들의 도파민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그가 비아냥거리는 상대방이 약이 올라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을 때 함께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이게 진중권이 평론가로서 살아남는 방식인데, 나는 그 방식을 존중한다. 선동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다. 그리고 평론가랍시고 생계를 꾸리는데 머리에 든 내용이 없으면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야지!
하지만 정치인은 다르다. 더군다나 그 정치인이 대권을 노린다면 이야기는 더더욱 달라진다. 왜냐하면 그 싸가지 없음에 열광하는 지지자들만으로 절대 대권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선거는 언제나 45대 55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싸가지 없음에 열광하는 지지자들은 많이 잡아야 30%다. 그 30%로 이길 수 있는 선거는 단언컨대 한 개도 없다.
이길 수 있는 공동체
이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가 하나 있다. 캐나다 인류학자 리처드 리(Richard Lee)의 부시맨 연구가 그것이다. 리는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 부시맨(Kung Bushmen)을 연구하기 위해 이들과 3년 동안 동고동락한 인물이다.
연구를 마치고 떠나기로 한 날이 다가오자 리는 3년 동안 정든 부시맨들을 위해 이웃마을에서 황소 한 마리를 구입해 선물했다. 그런데 선물을 받은 부시맨들의 반응이 뜨꽝했단다. “아니, 어디서 이렇게 삐쩍 마른 황소를 샀어요?”, “이거 먹어서 어디 배가 차겠어?” 뭐 이런 반응이었다는 거다. 그런데 더 웃긴 건, 부시맨들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 엄청 맛있게 그 황소를 먹어치우더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진 리가 잘 알고 지내던 토마조라는 부시맨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랬다니 토마조의 답은 “그건 교만을 막는 우리들의 독특한 문화다”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부시맨 중 누군가가 사냥에서 엄청 큰 짐승을 잡았다. 이러면 그 사냥꾼은 거들먹거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싸가지 없는 사람이 나오면 공동체가 깨진다. 그래서 사냥에 성공한 사냥꾼은 되레 “오늘 사냥을 망쳐서 미안해요”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부족원들도 그가 싸가지 없는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뭐 이딴 걸 잡아왔어!”라며 핀잔을 준단다.
물론 이 대화가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냥꾼도, 그 사냥꾼이 잡아온 짐승을 나눠먹는 부족원들도 안다. 하지만 이런 거짓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사람들은 싸가지 없음이 얼마나 공동체를 위협하는지를 경계한다.
싸가지가 없다는 게 이렇게 위험한 거다. 어떤 집단이 경쟁력이 있는 집단인가를 생각해보면 이 명제는 더 명확해진다. 경쟁력이 있는 집단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모두가 힘을 모으는 집단이다.
그런데 그 집단에서 싸가지 없는 자가 등장해 “이건 내 덕분이야!”를 외치면 공동체의 경쟁력이 깨진다. 하물며 그 싸가지 없는 자가 리더가 된다? 그딴 리더로 어떻게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예언 같은 거 잘 할 능력도 없고 내 예언이 맞을 것이라 자신하지도 않는 편이다. 미래를 내다볼 능력이 없는 한, 예언이란 결국 확률의 싸움이다. 그래서 모처럼 미래에 관해 한 마디 해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동훈이 저 싸가지를 가지고 정치인으로 성공할 확률은 너무 낮다. 한동훈은 언젠가 저 싸가지 때문에 크게 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