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주요 4대 그룹 중 가장 먼저 한국경제인협회 회비를 납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차그룹은 이달 초 35억원 수준의 회비를 한경협에 냈다. 앞서 한경협은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에 회비 납부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삼성·SK·LG 등도 조만간 회비를 낼 태세다.
한경협의 전신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에 가담해 큰 파문을 일으킨 단체다. 전경련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와 달리 민간 기업인들의 임의적 단체다. 실제에 있어서도 재벌 총수들의 공동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정부와 비공식적으로 교섭하는 단체였다. 한국의 재벌체제를 상징하는 단체였던 셈이다. 그런 전경련이 한경협으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재벌 대기업의 대표로 재등장하고 있다.
4대 그룹은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국민 앞에 사과하면서 전경련 활동을 중단했다. 전경련이 박근혜 청와대의 요구로 설립된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업들이 774억 원을 출연하는 데서 주도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판부는 이 사건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규정하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LG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총수도 국회 청문회에서 자발적 탈퇴를 선언했다.
그때의 전경련이 한경협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지만 실제에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장 한경협은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 제3자 변제안을 지원한다는 미명 아래 일본의 재계 단체 게이단렌과 손잡고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만들었다. 제3자 변제안이 가진 문제점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양국간 역사·외교 문제를 재벌들의 돈을 끌어모아 해결해보겠다는 건 그 자체로 정경유착이다. 윤 정부가 그 전후로 재벌 사면, 법인세 인하, 투자세액 공제 확대 등 친재벌 행태를 보여온 것은 당연할 것이다.
4대 그룹이 국민 앞에서 전경련 탈퇴를 선언했으면 돌아갈 때도 그에 준하는 설명을 내놓는 게 정상이다. 한경협 없이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처지도 아니다. 당장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상공회의소의 의장을 맡고 있지 않은가. 결국 4대 그룹의 복귀 뒤에는 윤석열 정부의 요구와 이에 맞장구치는 재벌대기업의 독점적 이익 추구가 깔려 있다. 그 끝에선 정경유착과 국정농단, 사법적 단죄라는 익숙한 비극만 반복될 것이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