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짜인 일정표 안에서 학생들과 지지고 볶으며 보내는 일상이 버거워지고, 밀려오는 일들에 지쳐 반쯤 정신이 나갈 때쯤 찾아오는 방학. 출퇴근과 수업의 압박이 없는 방학은 교사 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큰 힘이다. 누군가가 교사의 좋은 점을 딱 하나만 말해 보라고 하면 난 ‘방학’을 꼽을 것이다.
교사는 교육공무원법 제41조에 의해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연수기관이나 근무 장소 외의 시설 또는 장소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다. 이를 교사들은 ‘41조 연수’라고 줄여 부르고 주로 수업이 없는 방학 때 이용한다. 그러니까 교사는 이 41조 연수를 통해 방학 때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연수를 누릴 수 있다.
많은 교사들이 방학을 통해 배우고 싶었던 연수를 찾아 듣기도 하고, 쉬면서 책을 읽기도 하며, 또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히거나 다양한 경험을 쌓기도 한다. 미뤄두었던 치료를 진행하거나 심리치료, 상담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서 지난 학기의 교육활동을 돌아보고 다음 학기의 교육활동을 준비한다. 이렇게 방학을 잘 보내면 다음 학기를 버틸 수 있는 심신의 근육이 생긴다.
41조 연수는 교원의 법적 권리이기도 하지만 또 법적 의무이기도 하다. 교사에게 41조 연수를 보장하는 이유는 교사의 전문성 함양을 위해서다. 교사가 학생 교육에 전문성을 갖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교육기본법 제14조에서는 ‘교원은 교육자로서 갖추어야 할 품성과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했고, 교육공무원법 제38조에서는 ‘교육공무원은 그 직책을 수행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연구와 수양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의 41조 연수를 아니꼽게 보는 시선들
이렇듯 교사의 권리이자 의무인 41조 연수는 재충전하며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데 교직 사회 밖에서 교사의 41조 연수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아니 아주 아니꼽게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교사의 41조 연수 관련 기사에서는 ‘일반 직장인은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서 자기 계발을 하는데 교사들은 왜 방학 때 자기 계발을 하냐.’, ‘방학 때 쉬는 교사에게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해라.’, ‘국민 세금으로 방학 때 놀고먹는 00’ 등의 비난 댓글이 달리기 일쑤다. 심지어 교사의 41조 연수를 폐지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오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교사 사이에서는 학교 밖에서 방학의 ‘ㅂ’ 자도 꺼내지 말라고 한다.
이런 시선을 마주하면 한편으론 억울해지고 한편으로 슬퍼지며 마음이 두 갈래가 된다.
억울한 건 교사의 처우에서 불이익을 정당화할 때마다 41조 연수를 거론하기 때문이다. 다른 공무원과 달리 교사는 연가 사용에 제한을 받아 학기 중 연가를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 또한 연가를 사용하지 못하면 받을 수 있는 연가 보상비도 받지 못한다. 게다가 연가 저축도 할 수 없다. 이런 손해에 대해 애기할 때마다 대신 교사는 방학이 있지 않냐고 41조 연수를 거론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편으론 세금 받고 꿀 빤다고 비난을 해대니 이런 반응을 대할 땐 억울해진다.
한편 마음이 슬퍼지는 건 많은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을 끊임없이 목도하기 때문이다. 과로에 시달려 병을 얻거나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노동자의 사례는 어제도 오늘도 끝없이 쏟아진다. 게다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연차는커녕 병가도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며 장시간 노동에 허덕인다. 이렇게 노동시간이 세계 최상위권인 한국 사회에서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교사의 41조 연수는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릴 것이기에 이를 공격 거리로 삼는 게 이해도 되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에 박수를 보내자!
그렇지만 나는 교사의 41조 연수에 응원을 받고 싶다. 특히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응원받고 싶다. 그리고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41조 연수처럼 자유롭게 전문성을 함양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나와는 다른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개선하면 결국 나의 노동조건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다른 사업장의 좋은 노동조건은 내 사업장의 노동조건을 높이는 좋은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노동자들이 임금을 높이거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시선이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여기에 갈라치기와 배제의 논리가 더해지면 다른 이들의 노동조건 개선이 노-노 갈등의 소재로 전락한다.
학교도 이런 종류의 노-노 갈등이 일어나기 쉬운 곳이다. 각양각색의 노동조건을 가진 노동자들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 학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원과 일반직 공무원, 정규 교사와 기간제교사, 교과 교사와 비교과 교사…… 나누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나눌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갈라치기와 배제의 논리가 자라기 쉬운 곳이 되었다.
그렇지만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하면 교사의 배가 아프고, 교사가 방학 때 41조 연수를 누리면 일반직 공무원들의 배가 아픈 식이어서는 안 된다. 그건 서로를 갉아 먹고 함께 주저앉는 길이다. 서로의 힘든 부분은 외면할 일이 아니라 함께 아파할 일이다. 마찬가지로 서로의 좋은 부분은 아니꼽게 볼 일이 아니라 함께 기뻐할 일이다. 그래야 갈라치기를 넘어설 수 있고, 그래야 노동자 전체의 힘이 세질 수 있다.
다른 노동자들의 좋은 노동조건에 비난 말고 박수를 보내자. 그리고 내가 속한 곳의 노동조건을 높이는 원동력으로 삼자. 옆의 노동자의 좋은 노동조건에서 내가 속한 곳의 노동조건 개선의 영감과 논리의 근거를 얻자. 각자의 좋은 노동조건과 처우 개선을 서로가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을 때 갈라치기와 배제가 힘을 잃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41조 연수를 응원받고 싶다. 물론 나 또한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진심으로 응원할 것이다. 모든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에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