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시, 정선군 등 5개 도시가 지난 6월 25일 개최된 고준위핵폐기장 ‘지하연구시설’ 부지 공모 설명회에 참여했다. 정부는 지하연구시설(URL)이 핵폐기물을 전혀 반입하지 않는 순수 연구시설이라고 강조하지만, 장차 고준위핵폐기장으로 전환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태백시, 정선군 등 해당 주민들의 매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지하연구시설은 지하 500미터에 건설되어 지하 암반의 특성, 최적 처분시스템 등을 연구하는 시설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건설비만 약 5,138억 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토목공사다. 이러한 거대 토목 시설을 순수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별도의 부지를 다시 마련해서 고준위핵폐기장을 건설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핀란드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준위핵폐기장을 건설 중인 나라다. 핀란드도 지하 500미터에 지하연구시설을 먼저 건설했다. 이곳의 암반 특성을 연구한 뒤 규모를 수평으로 확장해서 고준위핵폐기장을 건설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핀란드의 전철을 밟을 확률이 거의 100%에 가깝다.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나타난 지하연구시설 계획, 지하연구시설은 영구처분시설, 즉 고준위핵폐기장으로 확장된다. ⓒ필자 제공
정부의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보면, 핀란드와 판박이 계획을 담고 있다. 정부 계획은 고준위핵폐기장 부지를 선정하고, 부지 안에 지하연구시설을 먼저 건설한 후, 지하연구시설을 확장하여 고준핵폐기장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부지 선정 후 고준위핵폐기장 건설까지 총 24년이 소요된다.
다만, 작금 뜬금없는 지하연구시설 추진이 기존 계획과 다른 점은 고준위핵폐기장 부지선정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큰 의문 또는 의혹이 제기된다. 고준위핵폐기장 ‘부지’를 선정하지 않고, 과연 지하연구시설을 먼저 건설할 수 있는가? 필자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오히려 지하연구시설 ‘부지’가 장차 고준위핵폐기장 부지로 전용되고, 지하연구시설이 고준위핵폐기장으로 확장되는 게 자연스럽다.
필자가 우려하는 시나리오대로 간다면, 정부는 대략 13년이 소요되는 지난한 고준위핵폐기장 부지 선정 절차를 건너뛰고, 지하연구시설 부지 선정으로 갈음하려는 역대급 꼼수가 숨어있다. 정부는 지하연구시설 부지 확보 시점을 2026년으로 계획하고 있다.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고준위핵폐기장 부지선정에 13년 소요. 부지선정에서 건설까지 24년(37년-13년)이 소요된다. ⓒ필자 제공
굳이 왜 2026년일까. 앞서 고준위핵폐기장 건설이 부지 선정에서부터 총 24년이 소요된다고 했다. 만일, 2026년 확보되는 지하연구시설 부지가 고준위핵폐기장으로 확장된다고 가정하면, 2026년에 24년을 더하면 2050년이 된다. 2050년은 핵발전 확장 정책을 무섭게 추진하는 윤석열 정권에게 매우 중요하다.
유럽연합은 금융기관의 에너지 산업 투자 기준인 ‘EU 택소노미’에서 핵발전의 경우 2050년까지 고준위핵폐기장을 운영해야 녹색 에너지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권은 2050년까지 고준위핵폐기장 운영 계획을 입증해야 동유럽의 핵발전 사업에 원활히 진출할 수 있다. 이것이 지하연구시설을 순수 연구시설로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이다.
태백시, 정선군 등 5개 도시 주민에게 당부드린다. 지하 500미터에 5,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서 건설하는 순수 연구시설은 존재하기 어렵다. 우리 마을에 고준위핵폐기장이 들어서는 위험 신호로 읽어야 한다. 제발 그 땅을 내어주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