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에 외사촌 언니가 죽었다. 봄날 저녁, 언니는 내가 좋아하는 강화도 그녀의 집 마당에서 쓰러져 한동안 의식이 없었고, 여름에 장례가 치러졌다. 그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언니의 어머니, 나의 외숙모가 매일같이 전화를 걸었지만 닿지 않았다고 했다. 그 봄에서 여름, 나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그해 가을, 거짓말처럼 불쑥, 25년이나 본 적이 없는 한 살 아래 외사촌에게 연락을 했다. 연극 표 두 장이 생겼어. 너 연극 좋아했지? 천연덕스럽게 전화를 걸어 그런 이야기나 하는 나에게 사촌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누나는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야? 그제야 나는 언니의 죽음을 알게 되었고, 소식을 전해준 사촌과 25년 만에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만나 내가 가지고 있는 티켓으로 연극 ‘이인실/고영범 작, 박정희 연출’을 보았다. 연극이 끝난 뒤에는 사촌이 예약해둔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늦도록 와인을 마셨다. 사촌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때, 그러니까 여섯 명의 사촌들이 한두 해 간격으로 대학에 입학해 거리로 나가고, 죽고, 감옥에 갔던 80년대에, 늘 도서관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자신을 누나는 경멸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하자, 사촌은 안쓰러울 만큼 홀가분한 얼굴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연극과 극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을 것이다. ‘이인실’ 희곡을 쓴 고영범 작가는 2012년에 천 페이지에 가까운 책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캐롤 스클레니카’을 번역 출간했는데,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고, 그는 뉴욕시에서 80km쯤 떨어진 곳에 살며 급할 것 없이 느리게, 끝나지 않는 일을 평생을 계속하는 사람처럼, 거대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집 어딘가를 뜯어내고 짓고 수리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을 준비하고 개와 산책하고 틈틈이 희곡을 쓰는 사람일 거라고, 연극 무대 위 병동 2인실에 입원한 두 남자 중 한 사람이 탈북자인 것, 몸에서 풍기는 악취의 원인을 끝내 제거하지 못하고 수술 중 사망하는 탈북자와 분단의 상처와 그리움을 안고 생을 마감해가는 남쪽 친척 노인이 등장하는 것은 작가가 어떤 식으로든 분단을 감각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나 노인과 탈북자 지룡을 그리는 방식은 다르다, 극 중 지룡은 몸에 밴 '냄새' 때문에 죽어버리고, 이인실 병동, 옆 침상에 입원해있던 사기꾼 남자에 의해 '연기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러나 작가는 꽤 정직하고 윤리적인 방식을 택한 것이다, 당사자로서의 '탈북자'를 제대로 말하기는 어려울 테니······ 그런 불확실한 이야기를 띄엄띄엄 나누었을 테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그날이, 언니에 대한 뒤늦은 애도의 시간이었다.
2년 후 2016년에는 고영범 희곡 연극 ‘방문’을, 2021년 초여름에는 ‘서교동에서 죽다’를 보았다. 벽산희곡상을 수상해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 작품 ‘에어콘 없는 방’은 보지 못했지만, 그의 작품에 공통점이 있었다. ‘방문’의 목사 아버지, ‘에어콘 없는 방’에서 등장하는 실존 인물 ‘피터 현’의 아버지, ‘서교동에서 죽다’의 부모 모두 전쟁을 겪은 실향민이고, 작품의 초점 인물들은 한결같이 한국을 떠난 이주자로 고국을 방문한다. 작가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이산이든, 탈북이든, 이주든, 생계 때문에 혈혈단신 세상에 내던져진 막막한 상황이든,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은 ‘실향의 마음’이었다. 그것은 느닷없는 곤경에 처했을 때 ‘나를 도와줄’ 어느 누구도 없는 ‘고독한 마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집요하게 ‘기억’을 소환하고 마주 보는데, 일반적으로 현재의 서사를 구성하기 위해 과거를 소비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기억 자체인 듯, 작가는 사진이나 영상처럼 충실하게 재현한다.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를 만든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 추측해 보지만, 뉴욕에서도 80km나 떨어진 물리적 거리에서 살아가는 한국 국적의 한 개인으로, '기억'은 그를 구성했던, 그리고 상실했던 모든 것으로의 귀향, 여전히 국적을 유지하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최근작이자 첫 자전적 장편소설 ‘서교동에서 죽다’ 역시 1974년 여름부터 1975년 봄까지, 열세 살 소년 진영이 경험한 ‘더 없이 외로웠던’ 실향의 이야기이다. 평안도 출신 부모와 네 남매는 1970년대 서울 서교동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살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병이 한꺼번에 덮쳐와 화곡동 변두리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동네로 쫓기듯 이사 한다.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시장 골목에 작은 가게를 열게 되는데, 간판에 새겨진 상호는 어머니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 ‘정주상회’였다.
“남쪽 사람들은 돌아갈 고향이라도 있고, 급할 때 도와줄 친척이라도 있지. 우린 아무도 없다.”
망해서 도망쳐 온 것이라 생각한 곳에 마치 ‘사라진 세계가 나타난 것처럼 뭉클하게’ 내 건 고향의 이름, 살던 곳을 떠나 낯선 환경에 던져진 진영 남매들이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이유로 반복하는, “남쪽 사람들은······”으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저 말은 어머니가 실감하는 실향이었을 것이고,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달릴 수 있는 길과 동네, 학교와 친구들, 온 가족이 함께하는 밥상과 정든 물건들과 고유한 정서까지, 익숙한 모든 것을 상실해야 하는 것, ‘어둠 속에 앉아 바깥에 내리는 밤눈을 보면서 까마득한 먼 데와, 묻어놓고 온 옛 이야기들을 생각하는 마음’, ‘모든 것이 그리워지고, 더없이 외로웠고, 이미 오랜 세월을 산 것 같은 기분’, 그것이 열세 살 소년 진영이 느꼈던, 작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 쓸쓸하게 마주하고 있는 ‘실향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생생한 언어, 서교동, 화곡동의 풍경과 길과 노래와 살림살이와 마음에 관한 작가의 충실한 묘사는 우리를 각자의 시간과 공간으로 귀환하게 하는데, “이미 사어가 되어가고 있는 것같은 ‘실향’이라는 말을 좀 더 붙들고 있어 보려 한다”는 작가의 이야기처럼, 사라지기 직전의 골목, 그 막바지에 그가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외사촌 언니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올해 여름, 그녀의 어머니, 나의 외숙모도 떠나셨다. 그분을 보내드리며, 2014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이인실’을 함께 본 사촌을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외숙모가 지키고 살아온 집, 나의 엄마가 나고 자란, 명절과 방학을 꽉 채워 사촌들과 어울려 지내던 그 집은 이제 재개발로 허물어질 거라 했다. 대문 안 좁은 계단 위에 묶여 있던 검은 개와 화분에 핀 꽃과 아직 살아있던 사람들, 젊거나 어린 그들,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소리와 냄새, 마루와 방에 드리운 빛과 어둠, 김민기나 송창식의 노래들, 몇 차례 수리로 바뀌어온 모습까지 낱낱이, 나는 그 집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사랑했고, 사랑해서 끝없이 생각했고, 그래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
고영범 작가 평안북도 출신 실향민 부모 밑에서, 1962년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서는 신학을, 미국에서 다닌 대학원에서는 영상 제작을 전공했다. 다큐멘터리와 광고,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1·2’,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예술하는 습관’ 등을 번역했고, ‘태수는 왜?’, ‘이인실’ 등 다수의 희곡과 장편소설 ‘서교동에서 죽다’ 출간. 2016년에 벽산희곡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