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애화 칼럼] 문화격차를 심화시키는 윤석열 정부

작은 학교 청소년들의 문예체 활동

나는 청소년 방과후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주 대상은 중학생들이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일정 보조금을 받아서 방과후 강사를 모집하고, 학생들의 학교 수업 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이었다. 본래 활동 목표는 학력 격차를 줄이는 데 있었다. 도시와 읍면 단위의 청소년들 학력 격차가 큰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학급 내 학생 간의 격차도 여전했다. 학생 수는 줄어들어서, 학생 수준에 개별 맞춤 학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소규모 학교도 암기식 교과 중심의 교육을 벗어나기 힘들어 보였다. 그러니 빨리 학업을 포기한 학생들이 많았고, 지식과 교과 중심의 수업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그런데 예체능 활동은 달랐다.

우리 단체가 지원한 예체능 활동은 악기 배우기와 축구였다. 악기라고 해봐야 기타, 드럼, 키보드였다. 다행히도 지역의 작은 도서관에 이 악기들이 있었다. 현악기, 관악기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이런 예체능 활동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뭘까? 우선 국제화된 K팝 영향도 있고, 성적과 무관하게 놀이로 편하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강사의 열정으로 초보부터 개별 맞춤 교습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이유는 지역 특성 때문이다. 존폐 위기가 있는 작은 학교가 있는 면 단위에서 학생들을 읍에 있는 학원으로 데려갈 대중교통을 찾기 힘들다. 부모님이 차로 학원까지 데려가야 하지만, 시골의 부모님은 농사일 등으로 그런 여유가 없다. 예체능 학원비도 다른 과목 학원비에 비해서 비싸다. 그러니 방과후 선생님이 직접 면 소재 학교로 오고, 무료로 배우니,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악기라고 해봐야 기타, 드럼, 키보드였다. 다행히도 지역의 작은 도서관에 이 악기들이 있었다. ⓒpixabay


나의 청소년기 예체능 활동은 어떠했나. 나의 청소년기는 최소 5~60명이 한 반에서 수업하는 과밀학급인 시대였다. 그리고 사회 전체가 ‘생산성’ 이란 신념으로 움직일 때였다. 당시 산업화, 2차 산업 위주의 일꾼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예체능 교육은 등한시되었다. 예체능 수업은 다른 학과 과목과 달리 무엇보다 개별 지도가 필요했으나,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학생들 각각의 능력, 소질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준비된 아이들만이 즐길 뿐이었다.

나와는 많은 세대 격차가 있으나, 지금 작은 학교의 청소년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지 않은지 걱정이 된다. 학원을 찾아가기도 힘들고, 학교는 개별 수준과 소질을 고려한 수업이 힘들다. 우리 단체가 만났던 학생들은 작지만 그런 기회를 갖게 된 행운아들이었다.

청소년들을 문화에서 소외시키는 정부

‘일인일예(一人一藝)’라는 오래된 교육 목표가 있다. 이는 아직도 필요한 목표이다. 그러나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에 합당한 방법을 윤석열 정부는 알고 있다. ‘누구나, 더 가까이, 더 깊게 누리는 K-문화예술교육’이다. 누구나 더 가까이 더 깊게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정부가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교육실태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교육은 사교육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학부모들도 자녀를 동네 학원에 보내는 것을 당연히 생각한다. 이는 소박한 편이다. 그런데 다른 과목보다 사교육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과목이 문예체이다. 문예체(문화예술체육) 교육은 학생들에게 기능,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인성교육, 감성교육 육성이 제일 목표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공적 기관이 앞장서야 한다.

내가 일하는 지역에 지역인재를 양성시킨다는 목표하에 운영 중인 아카데미가 있다. 지역 학생들의 엘리트 코스이다. 지역 중학생들이 시험을 통하여 이곳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방과 후에 모여서, 대도시에서 초빙된 학원 강사가 진행하는 수업을 받을 수 있다. 면 단위 학생들은 택시비까지 지원된다. 결국 공부 잘하는 아이는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아카데미 운영은 모두 공적 자금으로 진행된다. 이런 공적 자금이 소위 국영수 과목 중심의 엘리트를 만드는 데만 사용되고 있다.

문예체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어려운 학생들은 어떡하나? 그것을 내가 일하던 단체에서 적게나마 했었다. 그런데 걱정이 생겼다. 강사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한 시간에 4만원정도 강사비를 받으며 면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강사가 드물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는 혜택은 전혀 없다. 일시적인 구두 계약으로 강사를 모집하고 파견한다. 이렇게 혜택도 적다 보니, 아르바이트 정도로 일을 받아들이기 쉽다. 또한 자동차 기름값 상승으로 가능하면 큰 지역에서 수업을 하려 한다.

윤석열 정부는 ‘누구나, 더 가까이, 더 깊게 누리는 K-문화예술교육’을 비전으로 삼아 문화 접근 기회를 보다 폭넓게 하기 위한 정책들을 내세우겠다는 방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올해 학교 문화예술교육사업 예산을 50% 삭감했다. 이에 따라서 특히 작은 학교에서는 강사 채용 과정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누구나, 더 가까이, 더 깊게 누리는’ 라는 구호가 무색해진다.

문화 격차의 영향

문화는 경제적 격차와 지역적 격차를 반영한다. 또한 역으로 영향을 미친다. 문화 격차는 단순히 취향의 차이만을 만들지 않는다. 문화 격차로 인한 문화 소외는 삶의 질을 낮출 뿐만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 갈등에 영향을 미친다. 이제 더 이상 문화는 생산적 활동 밖의 취미 영역이 아니다. 이미 문화는 중요한 생산 수단이 되고 있다. 소위 콘텐츠 산업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혁신성장산업으로 콘텐츠 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영화, 음악, 방송, 게임 등 산업의 규모와 고용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작은 지역의 작은 학교 학생들은 이런 산업에 얼마나 창의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의 문화 소외는 그들의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들에게 장래 꿈, 일자리를 물어본 적이 있는가? 문예체 관련 꿈을 꾸는 청소년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미 꿈마저 차단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이 생활을 위해 갖게 될 직업이 하찮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아무 거리낌 없이 막연하나마 모든 일을 상상해볼 수 있는 것이 청소년 때이다. 그런데 꿈조차 꾸지 못하는 현실이다.

학교에서 배운 악기 연주로 공연을 하는 학생들 ⓒ필자 제공


미래는 차치하고 현재 그들의 여가활동을 보라. 방과후 예체능 활동이 없다면, 방과후 여가는 주로 스마트폰 속으로 빠져든다. 그 속에서 모든 예체능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 몸으로 익히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접하는 스마트폰 속 문예체 콘텐츠도 자신이 가진 소양에 따라서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2018년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이 희망하는 방과 후 활동이 계층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한다. 즉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TV 시청하기를 희망하는 비율이 높았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신체활동·운동하기를 희망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스마트폰 사용 시간과 TV 시청 시간이 길며, 게임을 하는 시간도 많았다.

이제 여름 방학이다.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의 청소년들, 작은 학교의 청소년들이 어떤 모습으로 여름을 보내고 있을까 상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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