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티메프 사태에도 ‘자율 규제’ 고집하는 윤석열 정부

28일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에서 한 피해자가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2024.07.28. ⓒ뉴시스

티몬·위메프(티메프) 정산 지연 사태의 배경으로 지나치게 긴 대금 정산 주기가 지목되지만, 규제당국은 여전히 '자율규제'만 강조한 채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이다.

플랫폼 업체들의 대금 정산 주기가 지나치게 길어 입점 업체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는 '티메프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김종민 새로운미래(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플랫폼 입점업체 정산대금 대출 현황'에 따르면, 이미 플랫폼 입점 업체가 매출 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건수가 5년간 약 1만3000건, 대출 규모는1조8,130억원에 달했다. 플랫폼 업체가 대금 정산을 늦게 하면서 입점 업체가 은행 대출을 받은 것이다. 정산 주기가 77일인 위메프 입점 업체 대출액은 2,554억원이었다. 쿠팡은 이보다 큰 1조3,322억원으로 가장 큰 규모였다.

쿠팡도 대금 정산이 최대 60일까지 걸려 정산 주기가 긴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다. 쿠팡의 경우 직매입인 로켓배송은 2개월 뒤에 정산이 완료된다. 판매자들이 직접 배송하는 위탁판매 방식은 배송완료 후 70%는 한달, 나머지 30%를 두달 내에 정산하는 식이다.

이는 판매가 이뤄지면 빠르게 정산하는 다른 이커머스와 비교하면 긴 정산 주기다. 네이버·G마켓·옥션의 일반정산은 소비자가 '구매확정'한 뒤 1영업일에 각각 지급된다. 11번가의 일반정산은 구매 확정 시 2영업일에 100%를 지급한다.

정산주기이 길수록 득을 보는 곳은 이커머스 업체들이다. 이커머스 결제 구조를 보면 PG(전자지급결제대행)사가 소비자의 결제 정보를 카드사에게 전달하고, 이를 확인한 카드사가 결제 대금을 PG사에 전달, PG사가 이를 쇼핑몰에 지급하는 순서를 거친다. 이는 통상 2~3일이 소요된다. 소비자가 결제한 돈은 이미 이커머스에 넘어가 있지만, 이커머스는 이 결제 대금을 최대 2개월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2개월 동안 이커머스는 결제 대금을 유용하거나 이자 수익을 벌어들이는 등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입점 판매자는 긴 정산 기간으로 인해 자금난을 겪게 된다.

실제로 티메프의 모회사인 큐텐은 두 기업에 있던 판매 대금을 마음대로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구영배 큐텐 대표는 올해 2월 진행된 미국 이커머스 위시 인수에 위메프 자금 400억원을 유용했다고 시인했다. 큐텐이 빼간 돈에는 판매자들에게 줄 판매대금도 포함돼 있었다. 또 티몬·위메프의 자금 1,700여억원이 큐텐 싱가포르 본사로 빠져나간 정황도 드러났다.

판매자들에게 줘야 할 돈을 큐텐이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 플랫폼·이커머스에 대한 판매 대금 정산이나 관리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윤석열 정부는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선 자율규제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플랫폼 자율기구 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플랫폼 자율기구에는 티몬과 위메프도 참여해 각각의 상생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자율규제 방안이 나온 지 1여년 만에 정산지연 문제가 터졌다.

자율규제가 결국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30일 국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정산 주기와 관련해 당사자 간의 계약을 통해 정하도록 명시하는 자율 규제를 추진했다"면서도 "정산대금 유용 문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자율규제의 허점을 인정했다.

한기정(왼쪽)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에 대한 현안질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2024.07.30. ⓒ뉴시스

공정위는 뒤늦게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 등의 개선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존의 법으로는 온라인 플랫폼·이커머스의 제각각인 정산주기를 통제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유통업법은 월 판매 마감일로부터 직매입은 60일, 위수탁은 40일 이내에 대금을 지급하도록 대금 정산 주기를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적용 받는 대상은 백화점,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거래를 기준으로 짜여 있다. 거래중개자임과 동시에 판매자이기도 한 온라인 플랫폼·이커머스는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

전자상거래법 또한 애초에 법 취지가 소비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번에 문제가 된 정산 주기 등 온라인 거래의 근본적인 문제를 규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율 규제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입점업체에 대한 플랫폼 업체를 규제할 수 있는 '온라인플랫폼법'의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2대 국회에는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은 온라인 플랫폼 중개서비스의 내용, 대가 등에 관한 내용을 표준 계약서로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플랫폼 업체가 입점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제재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입점 업체에게 불리한 정산 주기를 개선할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여전히 자율규제 기조를 강조한다. 한 위원장은 자율규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제도 개선을 충실히 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자율규제 전체를 가지고 말씀드릴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의 온라인 플랫폼 자율규제가 '결국 방관하겠다는 것'이라는 우려는 이번 위메프 사태를 통해 현실이 됐다. 한계가 드러난 자율규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제2, 제3의 티메프 사태가 일어나도록 방치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티메프 사태는 큐텐의 무분별한 확장이 실패한 결과지만,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할 때까지 방관한 정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부가 구영배 대표에게 '사과하라'고 윽박지르고 사태를 덮을 생각이 아니라면 '온라인플랫폼법' 입법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