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출석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내년부터 초중고에 단계적으로 도입되는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문제 제기에 ‘국제단체에서도 효과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며 반박했지만,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지난 2일, 이 장관이 언급한 국제단체인 국제교육연맹(EI) 연구 총괄 담당자와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국제교육연맹은 전 세계 교사 노동조합의 연맹이다.
전교조는 국제교육연맹 마틴 헨리(Martin Henry) 연구총괄에게 지난달 12일 이 장관의 발언에 대한 진위를 확인했다. 당시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우려가 집중적으로 나왔다. 조국혁신당 강경숙 의원은 해외 여러 나라에서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집중력, 문해력 등을 위해 디지털 학습을 제한하는 추세임에도 왜 우리나라에서는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서두르는지를 추궁했다. 이에 이 장관은 “그렇지 않다”며 “국제기구에서도, 또 심지어는 교사들의 연합체 EI 같은 교사들의 단체에서도 이렇게 사용하면 굉장히 효과가 있다는 지지들도 많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당시 이 장관의 답변을 직접 확인한 EI 측은 “EI의 입장은 장관의 이야기와 반대”라고 밝혔다.
마틴 헨리 연구총괄은 “AI가 효과적이라고 입증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라며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AI 디지털 교과서 사업은 AI와 관련된 OECD 가이드라인, UNESCO 가이드라인도 모두 어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I는 AI나 기술의 해악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틴 헨리 연구총괄은 ‘한국의 AI 디지털 교과서 사업에 대한 우려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학생들의 개인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상업적으로 모아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꼽았다.
그는 “이미 주변 모든 곳에 테크놀로지가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우리는 그런 도구들과 일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명백하다”며 “하지만 중요한 건 교사가 그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부가) 정책 추진에서 교사의 의견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점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많은 곳에서 공적 교육 자금이 민간업자들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며 정책 재고를 촉구하기도 했다.
국제교원연맹 수잔 훕굿(Susan Hopgood) 회장 역시 “전 세계적으로 AI 에듀테크 기업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이런 일에 뛰어들고 있는데, 이것이 궁극적으로 교육의 자주성과 공교육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전교조는 “세계 최대 교원노조, 교원 단체 연합 조직인 국제교육연맹의 입장은 한국의 AI 디지털교과서 사업과 성급한 기술 도입에 대해 명확하게 우려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며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에 출석해 장관이 직접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본인의 정책 성과 쌓기에 눈이 멀어 국제 망신을 자초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장관이 EI를 언급하며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직접 사과하고 해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교육부는 학생 개개인의 맞춤형 학습으로 교육격차를 완화한다는 명분으로 AI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추진 중이다. 내년부터 초3·4, 중1, 고1을 대상으로 수학, 영어, 정보 과목에서 우선 도입하고 2028년까지 전과목에서 종이 교과서를 AI 디지털교과서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교육계 안팎에서는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검증이 부족하고, 정보 인권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문제 등을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에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유보해달라는 청원이 상임위 회부 기준인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