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저게 뭐야? 우리 구경하고 가자!" 서울연극센터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이한 광경에 일부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어떤 이들은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 한 예술가가 찍, 찍, 짹, 짹, 희귀한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연극센터 창문에 분무기를 대고 물을 뿌리기도 하고, 소화전에도 분무기 물을 발사하고, 도로변 노란 점선 위에 노란 끈을 대고 당기기도 했다. 뱅크유씨(유한솔)의 공연이었다.
지난 해 4월, 3년 만에 재단장을 끝낸 서울연극센터에선 연극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 1일 시작해 4일 종료된 '연극 하기와 보기'였다. '연극 하기와 보기'는 서울연극센터의 전체 공간(1~4층)을 하나의 무대이자 객석으로 변모 시켰다.
지난 1일 공연의 서막을 연 것은 시크릿 공연이었다. '연극 하기와 보기'는 총 4팀의 시크릿 공연을 준비했는데, 이 비밀 공연은 공개되기 전까지 어떤 예술가가 어떤 공연을 할지 알 수 없다. 어떤 공연이 펼쳐질지 상상하고 기대하는 것이 또 하나의 매력이다. 축제 첫날 첫 시크릿 공연은 뱅크유씨의 '서울Jjig! 연극 Jjig! 센터Jjig!'이었다.
뱅크유씨는 센터 내부에서 "찍! 찍!" 거리면서 도시락을 먹거나 줄자를 뺐다가 넣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센터 외부로 나가서 당최 예상할 수 없는 행보를 보여주며 관객과 시민의 일상을 허물었다.
근처를 지나가던 이보라(22)씨는 "특이한 의상을 입은 분이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도로에 계시길래 계속 지켜보게 됐다"면서 "이 길은 자주 다니는 길인데 시크릿 공연을 통해 예상치 못한 색다른 경험을 얻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뱅크유씨는 "(이번 공연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없고 즉흥적으로 하는 거였다"면서 "오브제들을 제 가방에 많이 가져와서 즉흥적으로 작업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찍'은 중의적인 표현"이라면서 "무언가를 떼거나, 분무기를 찍 쏘거나, 그런 뜻이었다. 쥐 소리일 수도 있고, 새 소리일 수도 있다. 밖에선 노란색 선을 끊어내는 게 찍 소리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것들이 용납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가짜도 진짜로 만들 수 있는 게 서울연극센터 안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어진 공연은 극단 여름의 낭독공연 '텃밭킬러'였다. 윤미현 작가가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이호성·장성익·박지아·류제승·황미영·태현지·이장건·김병규 배우가 출연했다.
극 중 등장인물인 할머니(골륨)는 사람들이 키운 작품을 서리하는 텃밭킬러다. 할머니는 훔친 작물들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다. 그러나 좁은 구둣방에서 할머니와 살고 있는 진로, 청년, 아가씨, 수음은 할머니의 금니 세 개를 뺏지 못해 안달이다.
부모에게 기생하는 자식들, 청년 일자리의 부재, 거주지 문제, 자본 앞에 무기력한 인간 등 '텃밭킬러'는 자본주의의 부조리함을 윤미현 작가의 언어로 독특하게 풀어냈다. 비참함도 비참하지 않게, 고통스러움도 고통스럽지 않게 풀어내는 윤 작가의 화법이 돋보였다. 은유, 상상, 잔혹 동화스러운 화법은 외려 우리의 세태를 콕콕 집어낸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낭독은 텅 빈 무대를 꽉 채웠다.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깔깔깔 웃다가 키득거리기도 하고 눈물도 쏟아내며 낭독의 힘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배우들이 내뱉는 낭독과 관객의 눈빛이 함께 호흡하는 시간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만난 양수경(57) 씨는 "일반적으로 극장의 분위기는 암전이 되고 무대만 보이는데, 서울연극센터의 공연들은 공연을 보면서도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면서 "(주위를 둘러본다는 게) 방해되기 보다 오히려 더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개방적인 느낌이 들어서 공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