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월요일’ 아시아 시장에서 시작된 주가 폭락사태가 미국과 유럽시장까지 이어졌다. 한국 코스피와 일본 닛케이가 사상 최대 폭락을 기록한 데 이어 뉴욕 증시는 2년 만에 가장 낙폭이 컸다. 미국의 7월 고용지표 발표 이후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세계 증시가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 원인과 전망을 짚어본 포린폴리시의 기사를 소개한다.
5일에 세계 시장이 최근 기억 중 최악의 거래일을 기록하며 혼란에 빠졌다. 미국 경제 둔화 우려로 인해 아시아, 유럽, 미국의 주식 시장이 모두 하락세를 보였고,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인 미국과 독일 국채로 자금을 옮겼다. 이는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져 갑작스러운 시장 추락으로 인한 재정적 여파를 피하기 위해 안전한 피난처를 찾고 있다는 신호다.
이미 2일 금요일 급락한 일본 닛케이 지수는 12% 이상 하락해 서킷 브레이커가 여러 차례 발동되면서 거래가 중단됐다. 한국 시장도 9% 가까이 떨어져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날을 기록했다. 유럽 시장은 2~3% 하락했고, 미국 다우존스와 나스닥의 초기 거래도 암울한 월요일을 예고했다.
‘시장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언제든 투정을 부릴 수 있다. 어린아이는 항상 흑백으로 상황을 인식하며, 결코 중간은 없다’고 브루킹스 연구소의 로빈 브룩스 글로벌 경제 및 개발 선임 연구원이 말했다.
이번 대규모 매도 사태는 비이성적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문제가 된다. 특히 수천억, 아니 수조 달러에 달하는 명목 자산이 증발하면서 소비자 심리, 제조업 신뢰, 주택 착공, 일자리 창출 등 국가 및 세계 경제 번영의 기본인 실제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금융 불안은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극심한 시기에 발생했다. 유럽과 중동에서의 전쟁, 남아시아와 영국 등의 혼란, 분열된 유럽, 중국의 확장주의 등 다양한 요인들이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국 대통령 선거가 불과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첫 악재는 지난주에 발표된 예상보다 저조한 미국 고용지표였다. 이는 수년간의 고성장 이후 오랫동안 예측된 경제 둔화가 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난주에도 고금리를 유지하면서 대응이 늦었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중앙은행인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이제 본격적인 폭풍이 불어오기 전에 급히 금리를 인하해야 할 압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고용 보고서가 유일한 악재는 아니었다. 연준이 발표한 7월 베이지북은 미국 경제의 지역별 상황을 비공식적으로 요약한 보고서인데, 여기서 소비자 대출과 신차 판매 등에 잠재적인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경제 속에서도 취약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또 다른 악재도 있었다. 과열된 기술 부문에 찬물을 끼얹는 실적 발표가 있었는데, 인텔과 같은 대기업의 실적이 저조했고 애플에서는 대규모 자금 이탈이 있었다. 그 결과 역사적으로 과대평가를 받아온 기술 부문 주식이 오랜만에 대거 매도됐다.
미국외교협회의 세계 경제 전문가인 벤 스틸은 ‘지난해를 지배한 시장 낙관론은 연준이 연착륙을 앞두고 있고 인공지능 투자가 곧 수익을 내기 시작할 것이라는 믿음에 따른 것이었다. 이제 시장은 연준의 금리 인하에 늦어지고 인공지능 수익이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타격은 일본에서 왔다. 지난주 일본이 수년 만에 처음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며 금리를 사실상 0%에서 0.25%로 갑작스럽게 인상했다. 이는 소폭의 금리 인상이었지만, 일본의 저금리와 저렴한 통화에 익숙한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문제를 일으켰다. 금리 인상과 이를 수반하는 엔화 급상승은 일본에서 돈을 싸게 빌려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을 더 이상 유리하지 않게 만들었다. 따라서 투자자들이 엔화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모든 곳에서 은을 팔아 치우고 있으며, 전 세계 주식 시장이 강세장에서 약세장으로 바뀌고 있다.
자금은 이제 미국과 독일의 10년물 국채와 같은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 국채 수익률은 7월 말 이후 약 0.5%포인트 하락했고, 독일 국채 수익률도 급락하고 있다. 대규모 자금이 서둘러 안전 자산으로 이동할 정도로 시장에 불안감이 크다는 얘기다.
2008년과의 유사점과 차이점
이번 시장 폭락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미국 대선의 막판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2008년과 표면적으로 유사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경제 성장, 낮은 실업률, 상승하는 주식 시장을 이끌었지만, 인플레이션 문제에 줄곧 시달려왔다. 미국 경제가 둔화되고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큰 폭의 시장 조정은 새 대선 후보로 바이든과 거리를 두려던 민주당에 불리한 소식이다.
반면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경제 데이터와 시장 조정을 활용하고 있는데, 이는 주춤했던 그의 선거운동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만하다고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경제 및 무역 전문가인 게리 후프바우어가 말했다. 그는 특히 시장의 붕괴로 트럼프 지지율이 경합주에서 상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브루킹스 연구소의 브룩스 선임 연구원은 현재 미국 인플레이션이 큰 문제가 아니며, 지난주 고용 지표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며 패닉에 빠질 때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연준과 정책 입안자들이 ‘차분하라고 말해야 한다. 고용 상황은 나쁘지 않았고, 인플레이션도 양호하다. 경기 침체의 징후는 전혀 없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시장 폭락을 제쳐두면 이번 위기는 2008~09년과 매우 다르다. 2008년 금융위기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채와 세계적인 파생상품 폭락으로 은행과 보험 회사, 심지어 유럽 지역 저축은행까지 엄청난 손실을 보면서 시작됐고, 신용 흐름, 재보험 등을 통한 시스템적 파급 효과가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에 그 독성이 매우 컸다. 이번에도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2008년과는 다르다. 상황이 그때보다 덜 위협적이다.
그래도 결국 시장 심리가 중요하다. 하락하는 시장은 신뢰 위기를 초래한다. 서구 경제 모델과 서방 민주주의가 도전받고 있는 시기에 글로벌 신뢰 위기는 이미 화약고 같은 지정학적 상황에 매우 환영받지 못할 추가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