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원전 사고 발생,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연극 ‘아이들’

극단 돌파구 전인철 연출가 연출 맡아…오는 11일까지

연극 '아이들' ⓒ박혜정 (스튜디오 에이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핵발전에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부은 어른들이 있다. 실제로 핵은 많은 풍요로움을 안겨줬다. 그런데 쓰나미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원전 사고가 일어났고, 나와 나의 아이들의 일상은 파괴됐다. 아포칼립스의 도래. 우리(특히 소비가 주는 기쁨과 풍요를 누린 우리 어른이란 존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연극 '아이들' 속 주인공인 헤이즐과 로빈은 핵발전소에서 일했던 핵물리학자였다. 하지만 원전 사고가 일어나면서 부부의 삶은 폐허가 됐다. 두 사람은 은퇴를 하고 외딴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다. 덜 쓰고 더 절약하면서 산다. 어쩌면 더 쓰고 더 소비할 수 있는 시대 속에서 "덜 쓴다"는 것은 두 사람에게 사고에 대항하는 최후의 반항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핵발전소에서 16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오두막에서 원전의 망령을 두려워하며 사는 두 사람의 모습엔 재앙의 그늘이 늘 서려있다. 방사능 검사기, 샐러드와 크래커로 배를 채워야 하는 식량 상황, 잦은 정전 등은 재난의 여진을 여실히 느끼게 만들어준다. 어쩐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부의 상태는 원전 사고를 경험한 인류, 혹은 원전이라는 둥지에서 살아야 할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연극 '아이들' ⓒ박혜정 (스튜디오 에이치)

'아이들'의 아포칼립스는 생각보다 일상적이고 차분해 보인다. 하지만 부부의 친구이자 핵물리학자인 로즈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컵, 술병, 찻잔, 포트, 자전거 등이 무대를 점점 어지럽게 채워갈수록 세 사람의 관계, 삶을 대하는 태도도 아슬아슬하고 복잡하게 드러난다. 로빈과 로즈의 대화, 로즈와 헤이즐의 대화에선 자본주의와 핵발전이 가져다준 풍요 앞에 드러난 어른들의 태도를 만날 수 있었다.

공연 후, 무대 벽면을 채운 해안가 물거품을 바라보며 어떤 관객이 "그래서 왜 제목이 '아이들'인 거야?" 라고 질문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연극 '아이들'엔 실제 아이들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극 중 어른들의 입을 통해서 아이들이 드러날 뿐이다. 아이들은 헤이즐과 로빈의 자식들과 손주들, 피오나, 더글라스의 딸 등이다. 이 아이들이 실존 공간(무대)에 드러나지 않는 것 자체가 어쩌면 또 하나의 공포다. "그래서 아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지?"라는 관객의 거대한 질문이 원전 사고와 맞물릴 때 연극은 생생하게 호흡하게 된다.

연극 '아이들'은 풍요로움을 누린 인류의 대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그 대가를 어떻게 치러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연극은 어떻게 하라고 정답을 주진 않는다. 마지막에 로즈가 부부를 방문한 이유가 공개됐을 때, 헤이즐의 대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이렇듯 연극은 종말 앞에 선 입체적인 얼굴들을 보여준다.

연극 '아이들' ⓒ박혜정 (스튜디오 에이치)

물 속에서 교회의 종소리를 들었다는 로즈의 말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희망적으로도 비극적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텀블러를 쓰고, 비사용 전기를 끄고, 최대한 절제하고 절약하는 개인이 얼마나 세상을 바꿀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개인과 개인이 모여 전 세계 인구가 바뀐다면 어떨까. 수요를 자양분으로 삼는 자본주의가 무분별한 수요를 제거한 거대 인류를 만난다면? 그런 인류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전복시킨다면? 어쩌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아이들을 (세계) 무대에 등장시킬, 아이들을 구할 희망 말이다.

연극 '아이들'은 영국에서 주목받는 작가 루시 커크우드가 쓴 작품으로, 극단 돌파구의 전인철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다. 권정훈 배우가 로빈 역할을 맡았다. 윤미경 배우가 헤이즐을, 조어진 배우가 로즈를 맡아 연기했다. 지난 3일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오는 11일까지 미아리고개예술극장에서 볼 수 있다. 

연극 '아이들' ⓒ박혜정 (스튜디오 에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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