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 술 마시는 것 가지고 뭐라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 스스로도 술을 즐기는 편이거니와, 전쟁 같은 밤 일을 마치고 난 새벽쓰린 가슴위로 찬 소주를 붓는(박노해 ‘노동의 새벽’ 중) 그 기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과음 성향에 대해 비판할 때에도 말을 아꼈다. 개인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한 몫 했다. 그런데 최근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한동훈 대표는 앞으로 그냥 ‘술 안 먹는 윤석열’ 하겠다는 겁니까?”라고 적었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이 정도면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 왜냐하면 나는 이준석 의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똑똑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방송 중에 나온 즉흥적인 말도 아니고, SNS에 올린 정제된 글에서조차 그가 저런 표현을 할 정도면 윤 대통령의 과도한 음주는 이제 하나의 밈이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엉망진창 이미지 관리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이미지를 관리하는 일이다. 마케팅 용어 중 PI(President Identity)라는 것이 있다. PI란 말 그대로 조직의 수장(President)이 보여주는 정체성(Identity)을 뜻한다. 그 조직의 리더가 어떤 이미지로 대중 앞에 서느냐가 그 조직 성패를 가른다는 뜻이다.
그가 기업의 리더라면 높은 PI를 갖춘 리더는 그 기업의 가치를 높인다. 그가 국가의 리더라면 높은 PI를 갖춘 리더는 그 국가의 위상을 높인다. 개인적 평가이지만 국가 지도자 중 이게 가장 잘 된 인물이 미국의 전직 대통령 버락 오바마다.
실제 오바마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PI 전략이 대단했다는 점에 대해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청소 노동자에게 주먹인사를 건네고, 어린이에게 허리를 굽혀 자신의 머리를 만지도록 배려하는 미국 대통령. 이것이 바로 ‘대통령은 당신의 이웃’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오바마의 PI 전략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PI가 오바마 재임시절 미국의 가치를 높였다.
그렇다면 이와 비교해 윤석열 대통령에 관해 떠오르는 첫 이미지를 생각해보라. 독선, 불통, 멍청함, 고집···. 뭐 여러 단어들이 떠오를 수 있겠지만 이 모든 단어들을 다 집어삼키는 이미지는 바로 음주와 김건희다.
문제는 이런 거다. 김건희 여사에 관한 일이야 그가 잘못한 게 워낙 많으니 그 부정적 이미지의 확산을 쉽게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음주는 다르지 않은가? 참모들이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용산의 시스템이 최소한 정상적으로만 굴러갔어도, 대통령이 조금만 제정신이었어도, 만취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는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안 된다. 그냥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안 된다. 이 사진을 보라.
이게 그 유명한 ‘이 새끼가 술맛 떨어지게’라는 밈이다. 이 짤은 그야말로 만능 짤이다. “각하, 300mm(폭우)가 왔답니다!” “난 500 시켰는데?”, “각하, 북한이 쐈습니다!” “뭐? 언제 계산하고 갔어?” 등등 이 짤에 붙은 수많은 밈들은 검색만 해도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저런 것들이 단순히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겠나? 만취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얻으니 저런 밈이 끝도 없이 생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술 마시는 것에 관대한 사람이다. 그런데 한 나라 리더의 이미지 관리가 이렇게 엉망진창인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죽하면 이준석 의원이 술과 아무 관련 없는 한동훈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술 안 먹는 윤석열이 되겠다는 거냐?”라고 비아냥댈까? 그런데 또 어찌 이 비아냥거림에 조금도 위화감이 안 느껴지느냔 말이다.
또 하나의 실패작 정뵹진 씨PI가 엉망진창인 사람으로 정계에 윤 대통령이 있다면 재계에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있다. 지난해 가을 정 회장의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건 어떤 설명도 없이 그냥 사진을 봐야 한다.
일단 나는 오타에 매우 관대한 사람이다. 내 직업이 글을 쓰는 것이다 보니 나 역시 오타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또 나는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에 대해서도 매우 관대하다. 이건 관대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장려하는 편이다. 그래야 창의적인 발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용진의 찌개 드립은 본인이 밝혔듯이 오타가 아니다. 그냥 자기 꼴리는 대로 쓴 거다. 그리고 이건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 찌개를 찌게라고 쓰는 게 무슨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냐? 그리고 여기서 무슨 창의성이 나오나?
그 유명한 멸공 논란을 비롯해 정용진이 일으킨 이런 종류의 논란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정용진이 얻은 이미지는 뭔가? 그냥 통제가 안 되는 세 살짜리 칭얼이, 그냥 지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들 때까지 징징대는 사회 부적응자 아닌가?
그런 정용진을 따라 한다면 이런 일도 가능해진다. 정용진이 제 멋대로 쓰는 것을 허용했으니 나도 정용진을 정뵹진이라거나 정븅진으로 부르는 거다. 왜 안 되나? 찌개를 찌게라고 멋대로 쓰는 사람한테. 어때요? 정뵹진 씨. 마음에 들어요?
이런 멍청한 이미지 관리로 국가와 기업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더 슬픈 사실은 이런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리더 옆에 이걸 말리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PI는 근본적으로 이미지 메이킹 작업이어서 참모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윤석열과 정용진에게는 이걸 말릴 참모가 없다. 왜? 그걸 말리면 윤석열과 정용진이 기분 나빠 하니까 그랬겠지. 그 결과 만취 대통령, 칭얼이 재벌 총수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손해라는 사실을 모르니 더 통제가 안 되고. 대체 나라꼴이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과거 즐겨보던 프로그램 중 개그 콘서트 ‘달인’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달인을 소개하는 장면부터 빵 터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16년 동안 한자를 연구하신 한자의 달인 ‘토익’ 김병만 선생”, “16년 동안 뇌를 연구하시어 세계 최고의 기억력을 자랑하시는 기억력의 달인 ‘아차’ 김병만 선생”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 앞에 이런 호를 붙이면 무엇이 가장 적당할까? 당연히 ‘만취’ 윤석열 선생이다. 정용진 회장 앞에 어울리는 호는 ‘멸공’일 테고, 만취 윤석열 선생과 멸공 정용진 선생이 정계와 재계를 이끄는 환장 콜라보의 나라. 어이쿠, 나라의 미래가 너무 유치해서 당최 몸 둘 바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