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인사가 비판을 받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만 해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김문수 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등 하나같이 부적절하고 부적격한 인사였다. 그러나 이들은 대통령 직속이거나 내각 소속이거나 최소한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이니 백 보를 양보해 참을 수도 있다.
하지만 UN의 파리원칙 등에 기초해 설립된 입법, 행정, 사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에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겠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 일각의 지적처럼 "인권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이 위원장에 지명된 적은 있어도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인물을 지명한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힘을 빼기 위해 노력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인권위는 이미 이 정부 들어 임명된 김용원, 이충상 상임위원의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두 사람은 인권에 대한 초보적 이해도 없이 자신을 비판하는 인권위 내외의 목소리에 대해 '좌파'라고 비난하면서 인권위를 망치는 데만 열중해 왔다. 여기에 안 전 재판관이 인권위원장이 된다면 인권위는 더 이상 시민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독립적 기관으로 유지되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안 전 재판관은 차별금지법, 양심적 병역거부, 낙태죄, 사형제 등 우리 사회의 주요 인권 쟁점에서 국제사회와 인권위가 견지해왔던 입장에 정면으로 반대해 온 인사다. 그의 입장은 대체로 보수 기독교적 입장에서 출발해 밑도 끝도 없는 '반공'으로 끝났다. 안 전 재판관은 차별금지법 도입이 "기독교의 위축과 억압으로 이어질 것"이라든가 "성적 소수자에게 실질적 특혜를 제공하고 그 이외의 사람은 광범위한 역차별을 받을 것"이라는 편향적 판단에서부터 "공산주의 혁명으로 가는 '긴 행진'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내놓은 바 있다.
2010년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전횡에 항의해 사임한 문경란 상임위원의 지적을 되새겨본다. 문 상임위원은 사임의 변에서 "위원회의 독립성이야말로 인권지킴이의 소임을 다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자 생명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문 위원은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추천한 인사였다. 문 위원이 지적한 현병철 체제의 인권위도 지금과 같은 난맥과 파행, 뒷걸음질은 아니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명박 정부 시절을 그리워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