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문경'을 연출한 신동일 감독은 영화 주인공 가은(스님)의 사연을 빌어, 희생자 대부분이 10대 청소년이었던 인천 호프집 화재 참사를 소환했다.
신 감독은 12일 CGV용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영화를 찍기 전에 이태원 참사를 보며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면서 "예술 하는 사람으로서 외면할 수 없었다. 영화를 찍기 전이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회적 참사에 대한 슬픔이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났으면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데 (영화 속에) 이태원 참사가 들어가기엔 시간이 필요했다"면서 "원래는 세월호 참사도 생각했는데 세월호 참사 역시 이 작품의 틀 안에선 벅차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든 이태원이든 우리가 공감하고 반성해야 할 게 없을까, 리서치를 하다가 오래된 사건이지만 인천 호프집 화재 참사를 생각했다"면서 "가은이 사회적 참사의 생존자로 밝혀졌을 때 관객이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의 비극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문경'은 직장 내에서 인간관계와 업무로 번아웃 증세를 겪는 '문경'이 계약직 후배 '초월'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초월의 고향 문경으로 휴가를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문경에서 '문경'은 첫 만행을 시작한 비구니 스님 '가은'과 다리 다친 강아지 '길순'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 반려견을 잃은 '유랑 할매'를 만나 유랑 할매 집에 머무르게 된다. 이곳에서 인물들은 각자 가진 사연을 공유하고, 자신의 고민과 상처 등을 보듬는다.
신 감독은 영화의 배경을 '문경'으로 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 고향이 문경"이라면서 "영화 후반부에 유랑 할미 집도 아버지가 태어나신 집"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저도 10살때까진 방학때마다 문경에 내려가서 (영화 속) 문경과 가은이가 자던 방에서 잔 적이 있다. 그때 유일하게 아버지가 사시던 집이 TV가 나오던 집이라서 그 방에서 스무 명이 넘는 애들이 TV를 본 추억이 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신 감독은 문경에서 영화를 찍을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문경에서 찍어보라고 하셔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면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2020년 가을에 문경에서 후배랑 2박 3일을 보내면서 처음으로 차박을 해봤는데 식사를 준비하고 비도 맞으면서 갑자기 느낌이 오더라"며 영화를 시작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이어 "다음날 계곡에 갔는데 계곡을 보는 순간 영화를 찍어야 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위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보잘 것 없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아버지가 왜 문경에서 영화를 찍으라고 하셨는지 알겠더라"고 말했다.
영화는 사회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민과 상처 등을 다루면서, 동시에 인간과 비인간인 개의 소통, 자연의 아름다움과 원대함도 담아낸다.
비구니 스님 가은을 연기한 조재경 배우는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관객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면서 "이 작품 자체가 '괜찮아도 돼'라고 말해주는 작품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 차태현의 엄마이자 성우인 최수민은 영화 '문경'에서 '유랑할매'로 열연했다. 배우로서 할 발 뗀 그는 "저는 신인이다. 얼마나 덜덜 떨면서 영화를 찍었는지 모른다"며 소감을 전했다.
그는 "제 아들 (차)태현이가 출연하는 영화 시사회에 갔을 때 '우리 아들 너무 잘해' 그랬었는데, 이번엔 우리 아들이 제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고 '엄마 너무 잘해' 그럴까 싶어서 약간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를 찍을 땐, 맨 처음에는 잘못한 것만 생각나고 그랬는데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니까 그림 같은 영화"라면서 "위로 받을 수 있는 영화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문경' 역할을 맡은 배우 류아벨은 "문경이 그런 사람인 것 같다. 특별한 위로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 같다"면서 "문경이는 예쁜 말, 좋은 말을 잘 못하지만 누군가의 옆에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옆에 같이 살고 있다' 그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신 감독은 "영화 촬영은 엄청난 민폐를 끼치는 행위"라면서 "주민의 수면을 방해하고 원성을 듣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하는데 저희 아버지가 사셨던 110년된 고택에서 며칠간 촬영을 했는데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반가워하시면서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간혹 옥수수나 음료수도 갖다 주셔서 행복하게 촬영을 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오는 8월 28일 개봉한다. 배우 류아벨, 조재경, 최수민, 채서안, 김주아 등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