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은 별종이다. 1979년에 공식 데뷔한 뒤 45년이나 음악을 계속 하고 있어서 별종이고, 그동안 기타연주자-싱어송라이터-배우-영화음악가로 자신의 역할을 조금씩 바꾸었을 뿐 아니라, 록-팝-크로스오버로 장르 또한 이전해왔으니 별종이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곡 ‘치키치키 차카차카’와 영화 ‘서편제’의 영화음악, ‘나도야 간다’와 ‘못다 핀 꽃 한 송이’ 같은 히트곡이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별종이라는 단어보다 천재라는 말이 더 어울릴까. 한 장르를 잘하기도 어려운데 도전한 장르에서 모두 독보적인 결과물을 남긴 음악가에게 가장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찬사는 천재일 테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천재성만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변화로 채워졌다. 2000년대 이후 그의 음반 작업은 뜸해졌지만, 그의 손은 전혀 녹슬지 않았음을 이따금의 공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계속 연습하고 연마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무대였다. 김수철은 도전과 항심의 음악가다.
최근 김수철이 45주년 기념 앨범으로 발표한 [너는 어디에]를 들으면 45년간 들어왔던 김수철의 음악들이 스쳐간다. 애절한 사랑노래를 불러온 김수철, 유쾌하게 노래하는 김수철,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기타 연주자 김수철의 면면이 한 음반에 다 들어있다. 전통음악과 크로스오버 하는 김수철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적긴 해도, ‘너는 어디에’에서부터 ‘기타산조’로 이어지는 8곡의 노래들은 김수철이 불후의 명곡을 써낸 거장이나 신화로만 놀라운 음악인이 아님을 인정하게 만든다. 감각이 고루해졌거나 구태의연하게 느껴지는 곡은 한 곡도 없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해왔던 음악을 계속 이어가고 있음에도 곡을 잘 쓰고 연주를 잘했으며 깔끔하게 마감한 이의 솜씨는 제각각 다른 속도와 감각으로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Where Are You (너는 어디에)
김수철의 처연한 노래를 좋아했던 이라면 ‘너는 어디에’, ‘나무’, ‘나무사랑’을 들으며 가슴을 저밀 것이다. 김수철의 발랄한 노래와 연주를 사랑했던 이라면 ‘아자자’, ‘그만해’, ‘휙’, ‘야야아자자’에 빠져들 것이다. 크로스오버 음악가 김수철을 존중했던 이라면 ‘기타산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까. 김수철은 이 음반 역시 자신이 작사 작곡하고 편곡하고 연주했다. 몇몇 곡에서 최태완이 신시사이저 연주를 도왔을 따름이다. 김수철의 음악은 여전히 에너지 넘치지만, ‘너는 어디에’ 같은 곡에서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이의 회한이 밀려오고, ‘나무’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의 진실을 아는 이의 겸손과 감사로 직조한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다 지쳐 쓰러져도 / 우리 다시 일어나서 / 저 끝까지 나가보자”는 ‘아자자’의 노랫말에서는 다른 이들을 향한 응원이 기운차다.
자신만, 혼자만 노래한 곡들이 아니다. 주변을 살핀 노래다. 그리워하고 고마워하고 지지하며 마음을 전하는 노래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이제 그만 우리 정신 차려야지”라고 말할 때는 수긍하고 수용해야 한다. 선한 마음과 소박한 태도를 드러낸 이가 “험한 세상 살리는 건 사랑 사랑뿐이란다”하고 짧게 한 마디를 할 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단한 통찰이거나 조언이 아니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꼰대처럼 가르치려 하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팝과 록의 언어를 가진 노래들은 삶의 이력이 쌓인 음악가가 자신의 음악을 들어온 이들에게 건네는 이야기이고, 우리 사회에 내려놓는 메시지다.
나이가 많아야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김수철의 45주년 기념 음반이라는 사실은 이 노래의 이야기들을 김수철 자신의 시간과 연결해서 듣게 만든다. 꾸준히 도전하며 좋은 음악을 만들어온 음악가가 느낀 그리움과 답답함은 그가 살아온 시간을 설명해준다. 음악가로 살아온 태도를 보여준다. 과시하지 않는 목소리, 강요하지 않는 조언은 누구에게든 통하는 보편성이 있다. 이것이 김수철이 45년동안 음악을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가 연주한 곡들 가운데 ‘아자자’의 명쾌한 리프나 ‘그만해’의 록킹한 연주, ‘야야아자자’의 긴 기타 플레이는 45년의 시간쯤은 훌쩍 뛰어넘는다. 작은거인 시절부터 일렉트릭 기타를 긁고 끌고 밀며 만든 그의 음악 세계, 한국 록의 한 줄기는 오늘도 푸르고 울창하다. 거장이라고 칭송받기보다는 현역 음악가로 공존하고 싶은 마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곡들 앞에서 해맑아 초롱초롱 빛나는 김수철의 눈빛이 떠오른다. 어떤 음악가는 늙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