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51일 만에 나온 정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에 유가족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정부 발표에는 정부가 밝혀야 할 참사의 진상과 이를 통해 마련해야 할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은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는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나온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규탄하며 “정부는 도대체 뭘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가족협의회 김태윤 공동대표는 “(참사로 희생된) 우리 가족들이 어떠한 형태로, 어떠한 위험한 일을 했는지”를 알고 싶다고 했다.
김 공동대표는 “불안정한 유령 업체로 인력이 공급됐다고 하고, 제조업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직접 공정에 허용되지 않는 불법파견을 자행했다고 하는데, 정부가 발표한 진상은 겨우 산업안전법 위반과 관련된 내용을 몇십 건 적발했다는 내용뿐”이라며 “우리는 노동부 신뢰 못 한다. 유가족들이 추천한 전문가들을 포함한 민관합동 기구를 통해 제대로 조사해야지 우리 가족들의 억울함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유가족들을 두 번 세 번 죽이지 말라”라고 호소했다.
단 한 장의 보도자료에 그친 ‘아리셀 특별감독 결과’ 유가족 요구 무시한 정부 후속 대책도 논란
정부는 전날 브리핑을 통해 아리셀에 대한 특별감독 결과와 외국인 근로자 및 소규모 안전 강화 대책 등을 발표했다. 정부가 지난달 3일부터 16일까지 실시한 특별감독 결과는 단 한 장의 보도자료로 집약됐다. 비상구 부적정 설치, 가스 검지 및 경보 장치 미설치, 폭발 위험이 있는 장소 미설정, 근로자 안전보건교육 및 건강검진 미실시 등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는 간략한 내용이 전부였다.
정부의 사후 대책 역시 허무한 수준이었다. 정부는 이번 참사의 원인을 소규모 사업장의 취약한 안전관리 역량, 한국 문화에 생소하고 서툰 외국인에 대한 안전교육 부족 등의 문제로 진단하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안전교육 강화 및 화재·폭발 예방설비 지원 확대 등을 주요한 대책으로 발표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력 외에도 모든 외국인 노동자에게 전문적인 기초 안전보건교육을 받도록 하고, 격벽 설치 및 비상 대피로 등의 디자인 개선 지원에 최대 1억원을 투입하겠다는 대책이다.
이러한 대책은 유가족의 요구와도 크게 차이가 있는 내용이었다. 유가족들은 지난달 형식적인 위험성 평가 개선, 전지산업 하도급 전면 금지, 무분별한 불법 인력 공급 업체 실태조사 등 18개 요구안을 발표했지만, 정부 발표에는 담기지 않았다. 아리셀을 고위험 사업장으로 지정해 놓고도 손을 놓았던 정부의 책임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으며, 참사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 불법파견 등을 근절할 고용구조 개선 대책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빠졌다. 정부가 유가족들과 충분한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결과였다.
박유리 대책위 활동가는 “근본적인 문제인 불법파견에 대한 얘기는 단 한 줄도 없다. 23명이 돌아가신 중대재해 참사인데, 전지산업 대책은 가이드 마련 달랑 하나였다”라며 “이것이 떠들썩하게 진행한 조사 결과라니,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박 활동가는 “정부는 50일간 유가족 지원과 사고 수습에 매진했다고 스스로 발표했는데, 만나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며 “아리셀 참사를 빨리 덮으려 하지 말라. 피해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피해 가족의 입장에서 지원하며 빠르게 해결의 과정을 만들어야 하는 게 노동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인 이미선 부위원장도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당일 대통령과 국무총리, 노동부 장관까지 모두 앞에서는 비장한 얼굴로 화면 내보내더니 지금까지 무엇을 한 것인가. 화면 뒤에서는 시끄러워지기 전에 적당히 정리하라고 서로 사인이라도 주고받은 것인가”라며 “이런 식으로 사망한 노동자를 두 번 죽이고 유가족 가슴에 피멍 들게 하지 말고 똑바로 진상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전 서울고용노동청 건물 정문을 자물쇠로 걸어 잠그고, 경찰이 방패를 들고 앞을 막아서자 유가족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우리가 싸우러 왔나”, “경찰이 피해자를 보호해야지 왜 엉뚱한 사람을 보호하느냐“라며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