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보수주의와 에이즈 공포가 휩쓴 1980년대 미국의 소수자들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Angels In America) - 파트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공연 사진, 프라이어역 유승호 ⓒ (주)글림컴퍼니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소수자 5명의 이야기가 무대에 올랐다. 바로 토니 커쉬너(Tony Kushner)의 작품 ‘엔젤스 인 아메리카’가 그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93년 브로드웨이 초연 시 퓰리처상, 토니상, 드라마 데스크상 등을 휩쓸었다.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둔 세기말의 혼돈 속에서 미국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을 유려한 텍스트와 장치들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앤젤스 인 아메리카’의 원작자인 토니 커쉬너는 현대 미국 연극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성소주자이자 유대인인 토니 커쉬너는 자신과 같이 차별과 편견의 표적이 되었던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아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이 되는 198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알아 놓으면 도움이 된다.

1981년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로널드 레이건은 ‘레이거노믹스 정책(시장 중심적 경제 정책 혹은 이와 유사한 정책)’을 내세운다. 경제 재활성화를 통해 ‘힘에 의한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하겠다는 국가 정책이었다. 또 1981년에는 미국에서 최초의 에이즈 환자가 나왔으며, 이후 에이즈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감정을 키우는 데 일조하게 된다. 토니 커쉬너는 이 시기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 사회 비주류에 속한 사람들, 진짜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주류에 속한 사람들, 진짜 미국의 모습


무대는 한 유대인 여성의 장례식으로 시작된다. 이 여성은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 이주해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루이스는 연인 프라이어와 함께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날 프라이어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을 루이스에게 알린다. 무대의 한편에서는 법조인 로이와 미국 연방 제2 항소 법원에서 근무하는 법무관 조셉이 만나고 있다. 로이는 조셉에게 워싱턴 D.C.의 일자리를 제안한다.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공연 사진, 프라이어역 손호준, 루이스역 정경훈 ⓒ (주)글림컴퍼니

극우 보수주의자이며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로이는 실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의 연방 검사로 일명 악마의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1950년 매카시즘(미국 전역을 휩쓴 공산주의 색출 열풍)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입지를 다진 인물이다. 극 속 로이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집요하게 조셉을 워싱턴으로 보내려 한다.

조셉의 아내 하퍼는 불안으로 인해 늘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하고 있었다. 모르몬교(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인 인 조셉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 때문에 갈등과 혼란 속에서 살아간다. 출세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는 조셉과, 조셉의 사랑에 목마른 하퍼의 관계는 위태롭기만 하다. 전통 있는 가문의 자손이지만 집안에서 버려진 프라이어는 전직 드랙퀸이다. 지금은 에이즈로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낸다. 루이스는 그런 연인을 사랑하지만 두려운 현실에서 도망치고 있다.

‘위대한 미국’이 만들어낸 허상


회전 무대는 조셉과 하퍼, 루이스와 프라이머, 로이의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물 흐르듯 연결되는 이들의 공간은 인물들의 갈등과 이야기의 유기적인 연관성을 보여준다. 로이의 사무실에서 술집으로, 센트럴 파크 공원이 되었다가 뉴욕의 음습한 밤거리로 변신하기도 한다. 3막으로 구성된 180분의 무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관람을 해야 할 요소다. 하지만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변신하는 무대는 지루함을 덜어내고 관객이 극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종교, 인종, 성향, 정치 등 무대 위로 쏟아져 나오는 미국 사회 문제는 소화되지 못하고 분출된 토사물 같다. 정갈하고 세련된 텍스트는 이런 문제를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위대한 미국’의 꿈이 만들어낸 현실은 차별과 편견으로 가득하다. 5명의 사회적 소수자들은 보여주는 180분의 이야기를 끝까지 직시하게 되는 것은 무대 못지않게 불편한 오늘을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연극과 뮤지컬뿐만 아니라 영화·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스타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점이다. 프라이어 월터 역에는 유승호와 손호준이 캐스팅됐다. 하퍼 피트 역에는 고준희와 정혜인이, 로이 콘 역에는 이효정과 김주호가 무대에 무게감을 더한다. 조셉 피트 역에는 이유진과 양지원이, 루이스 아이언슨 역은 이태빈과 정경훈이 무대에 오른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9월 2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에서 공연된다.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Angels In America) - 파트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

공연 날짜 : 2024년 8월 6일(화) ~ 9월 28일(토)
공연 장소 :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
공연 시간 : 화, 목, 금 19시 30분/수 14시, 19시 30분/토 13시, 18시 30분/일, 공휴일 14시/월 공연 없음
러닝 타임 : 200분 (인터미션 2회 포함)
관람 연령 : 17세 이상 (2008년 12월 31일 포함 이전 출생자)
원작 : 토니 커쉬너(Tony Kushner)
창작진 : 연출 신유청/번역 황석희/작곡ㆍ음악감독 지미세르/Theatre Right Joseph Cho
안무 이소영/액팅코치 성열석/무대디자이너 이엄지/조명디자이너 강지혜/음향디자이너 한문규/소품디자이너 조윤형/의상디자이너 홍문기/분장디자이너 정지윤
출연진 : 유승호, 손호준, 고준희, 정혜인, 이태빈, 정경훈, 이유진, 양지원, 이효정, 김주호, 전국향, 방주란, 태항호, 민진웅, 권은혜
공연 예매 : 인터파크 티켓, LG아트센터 서울
공연 문의 : ㈜앰비즈 02-6498-0403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