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퓨전 요리, 재미있는 유래

시저 샐러드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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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퓨전 요리는 오랜 역사를 통해 발전해왔다. 조선 후기에는 중국에서 전래된 호떡이 한국식으로 변형되며 서민의 사랑을 받았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노리마키가 김밥으로 재탄생해 간편한 한 끼 식사로 자리 잡았다. 해방 이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햄과 소시지로 만든 부대찌개는 서양 재료와 한국 전통 요리가 결합된 대표적인 퓨전 요리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이 즐기는 국민 음식이 됐다. 1970년대에는 서양식 토스트가 길거리 음식으로 변형돼 간편하고 맛있는 아침 식사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이 외래 문화를 수용해 독창적인 퓨전 요리가 발전시켰듯이 미국과 영국에서도 독특한 퓨전 요리가 등장했다. 미국과 영국의 대표적인 퓨전 요리가 어떻게 다른 문화와의 융합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그 뿌리를 살펴본 알자지라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The unlikely origins of some of the world’s favourite foods


파스타가 중국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마르코 폴로가 1271년부터 1295년까지의 여행 경험을 기록한 동방견문록에서 중국 국수를 먹었다고 언급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미 여러 음식 역사가가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탈리아의 TV 셰프이자 음식 역사학자인 안나 마리아 펠레그리노는 파스타와 국수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펠레그리노는 2020년 한 싱가포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파스타와 국수는 조리 방식, 사용하는 냄비, 곡물, 준비 과정, 재료와 토핑까지 모든 면에서 각 문명에 특화된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음식 역사가에 따르면 파스타의 주재료인 밀은 마르코 폴로 시대의 중국에서는 재배될 수 없었다고 한다.

세계에는 예상하지 못한 기원을 가진 음식이 많이 있다. 이런 음식을 흔히 퓨전 요리라고 부른다. 퓨전 요리는 다양한 지역의 재료와 조리법이 때로는 필요에 의해, 때로는 창의성에 의해 결합된 결과물이다.

퓨전 요리의 기원을 정확히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시작은 아마도 1세기경 시작된 향신료 무역과 함께였을 것이다. 해상 실크로드로 불리는 무역 경로는 중동에서 지중해, 그 너머까지 약 15,000km를 연결하며 물품 교환을 가능하게 했다. 기원전 1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육상 실크로드 역시 아시아, 중동, 유럽이 향신료, 곡물, 조리법을 더 활발히 교류할 수 있게 했다.

퓨전 요리의 탄생

퓨전 요리는 사람의 이동과 함께 탄생했다. 이주민은 자신의 문화유산과 조리법, 레시피를 새로운 땅으로 가져갔고, 새로운 환경에서 만난 재료와 결합시켰다. 예를 들어,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이 가져온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는 아프리카의 재료와 요리 스타일을 아메리카에 전파했고, 이는 크리올과 케이준 요리로 이어졌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이탈리아, 중국,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은 각자의 요리 전통을 결합하여 피자, 차오멘, 타코와 같은 요리를 서양 음식 문화의 대표적인 요리로 자리 잡게 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요리가 재창조되는 과정도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어, 멕시코가 아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탄생한 한국 타코나 인도가 아닌 캐나다에서 유래된 버터 치킨 피자처럼 명확히 두 가지 나라의 음식을 결합한 퓨전 요리가 있다.

반면 1950년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탄생한 치킨 티카 마살라처럼, 본래 다른 나라에서 유래한 음식이 현지의 재료와 조리법에 맞게 변화한 사례도 있다. (치킨 티카 마살라의 진한 토마토 베이스 국물은 영국 요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레이비와 비슷하다).

결국 퓨전 요리는 두 가지 이상의 음식 문화가 만나 새로운 형태로 발전한 결과물이다. 이처럼 요리는 지역과 문화,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고 재창조되는 과정을 통해 더욱 풍부하고 다양해진다. 이러한 음식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문화와 역사가 어떻게 음식을 통해 연결되고 융합되는지를 엿볼 수 있다.

뉴욕 피자

다양한 퓨전 요리 중 뉴욕 피자는 그 기원이 특히 흥미롭다. 1905년 나폴리에서 이민 간 젠나로 롬바르디가 맨해튼의 리틀 이탈리아 지역에 미국 최초의 피자 가게를 열었다. 이탈리아 전통 피자는 나무를 때는 화덕에서 구워지지만 롬바르디는 뉴욕 환경에 맞춰 석탄 화덕을 사용해야만 했다. 이에 따라 피자의 맛과 식감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피자 역사가인 스콧 위너는 ‘시리어스 이츠’(Serious Eats)라는 인기 블로그에서 이런 변화가 비용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석탄은 당시 뉴욕에서 지배적인 연료였고, 나무보다 공간을 덜 차지했으며 더 효율적으로 연소됐다. 롬바르디를 비롯한 초기 이민자는 이런 이유로 석탄으로 화덕을 가열했고, 그 결과 탄생한 피자는 바삭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뉴욕 피자의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바쁜 뉴요커가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을 선호했기 때문에 피자를 한 조각씩 판매하는 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이를 처음 시작한 건 이탈리아계 이민자로 식자재 공급 사업을 운영하던 프랭크 마에스트로였다고 한다. 1934년, 마에스트로는 자신의 화덕에 가스 라인을 설치하고 이를 사용해 피자를 구워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화덕의 최고 온도는 약 220도나 낮아졌고, 피자는 더 오래 구워지면서도 건조해져, 쉽게 재가열할 수 있는 형태로 변했다. 뉴욕 스타일 피자의 ‘한 조각 판매’가 가능해진 배경에는 이런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시저 샐러드

또 다른 흥미로운 퓨전 요리에 시저 샐러드가 있다. 이름 때문에 이 샐러드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래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멕시코에서 탄생했다.

1913년, 이탈리아 형제인 시저와 알렉스 카르디니는 미국으로 이주했고, 시저는 1919년에 캘리포니아에 레스토랑을, 1920년에는 멕시코 국경 근처 티후아나에 또 다른 레스토랑을 열었다.

시저 샐러드의 탄생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24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주말에 시저 카르디니가 레스토랑에서 재료가 부족해지자 즉석에서 만들어낸 샐러드라는 이야기다.

1913년, 이탈리아 형제인 시저와 알렉스 카르디니는 미국으로 이주했고, 시저는 1919년에 캘리포니아에 레스토랑을, 1920년에는 멕시코 국경 근처 티후아나에 또 다른 레스토랑을 열었다. 1924년 시저는 남은 재료였던 로메인 상추에 반숙 달걀, 올리브 오일, 후추, 레몬주스, 마늘, 파마산 치즈를 섞어 드레싱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그의 동생 알렉스가 자신이 개발한 ‘에비에이터 샐러드’를 바탕으로 시저 샐러드를 만들었다고 한다. 알렉스는 1차 세계 대전 조종사였고, 이 샐러드는 그가 함께 복무했던 파일럿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요리였다. 그의 버전에는 앤초비 페이스트가 추가되었다.

시저 샐러드는 원래 로메인 상추 잎 전체를 사용해 손으로 먹었으며, 오늘날처럼 잘게 썰어 먹는 방식과는 달랐다. 이처럼 시저 샐러드는 이탈리아 출신의 이민자가 멕시코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만들어낸 창의적인 퓨전 요리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바비큐

퓨전 요리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바비큐에서 절정을 이룬다. 바비큐는 고기를 불에 직접 구워 먹는 요리 방식으로 문명 발생 이래 전 세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예를 들어, 한국의 고기구이 전통은 약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브라질의 슈하스코는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이주한 한국 이민자의 고기구이 전통은 일본에서도 받아들여져 20세기 초반에는 일본식 바비큐인 야키니쿠가 등장했다. 아르헨티나의 아사도는 18세기 팜파스 지역의 카우보이, 즉 가우초들에 의해 시작된 고기 굽기 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남아프리카의 브라이브레이스(네덜란드어로 ‘구운 고기’를 뜻한다)는 수천 년 전부터 고기를 구워 먹던 코이코이와 산 부족의 전통에서 유래했다.

미국식 바비큐의 기원은 북미 원주민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데, 노예로 끌려간 아프리카인이 덮개 없는 직화 조리법을 결합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남부식 바비큐를 탄생시켰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스페인 탐험가들이 카리브해의 타이노족이 단을 세워 고기를 굽던 방법을 1400년대에 미국으로 전했다고도 주장한다. 이처럼 바비큐는 여러 문화와 시대를 거쳐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해왔으며, 현재 우리가 즐기는 미국식 바비큐는 이러한 역사적 흐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조셉 R. 헤인스는 ‘월간 텍사스’에서 바비큐는 1619년 서아프리카에서 버지니아로 끌려간 아프리카 노예들이 탄생시켰다고 했다..

결국 아프리카계 후손의 노예들과 유럽계 후손,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 후손이 각자의 요리 전통을 결합해 오늘날 우리가 미국 남부식 바비큐라고 부르는 요리를 만들어냈다.

치킨 티카 마살라

치킨 티카 마살라는 영국에서 매우 인기 있는 요리지만, 실제로는 인도 요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 요리는 1950년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벵골 출신 이민자인 알리 아흐마드 아슬람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아슬람은 그 당시 ‘시쉬 마할’이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했는데 어느 날 손님이 요리된 치킨이 너무 건조하고 밋밋하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아슬람은 치킨에 토마토 수프, 요거트, 다양한 향신료를 더해 새로운 소스를 만들어 치킨 티카 마살라를 탄생시켰다.

이 요리는 본래의 인도 요리와는 다른, 영국의 입맛에 맞춰진 독특한 퓨전 요리라고 할 수 있다. 2001년 당시 영국 외무장관이었던 로빈 쿡은 ‘치킨 티카 마살라는 이제 진정한 영국의 국민 요리다. 이는 단순히 가장 인기가 많아서가 아니라, 영국이 외부의 영향을 받아들이고 적응시키는 방식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듯 치킨 티카 마살라는 단순한 음식 이상으로 영국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리가 됐다.

잉글리쉬 머핀

잉글리쉬 머핀은 전통적인 영국식 크럼펫의 얇은 버전으로 1874년에 영국 플리머스 출신의 사무엘 배스 토마스가 뉴욕으로 이주해 개발한 것이다. 잉글리쉬 머핀은 영국 크럼펫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사실상 ‘아메리칸 크럼펫’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토마스는 이 제품을 미국의 고급 호텔들에서 토스트에 대한 대안으로 마케팅하기 위해 ‘토스터 크럼펫’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전통적인 크럼펫은 한 면만 익히지만 토마스는 이 얇은 크럼펫을 양면에서 구워내어 독특한 모양의 안쪽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잉글리쉬 머핀은 바삭한 외피와 푹신한 속을 가진 매력적인 빵으로,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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