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속기사’ 99세 할머니에게 살인방조 유죄 확정한 독일의 나치 청산

독일 법원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슈투트호프 강제 수용소에서 친위대(SS) 사령관의 비서로 일하며 1만 명 이상의 살인에 가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99세 여성의 항소를 기각하고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라이프치히 연방법원은 20일 푸르흐너가 현재 폴란드 그단스크로 알려진 단치히 근처에 있던 슈투트호프 강제수용소의 운영에 일조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르막트 푸르흐너에게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이첼호 지방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

2022년 이첼호 법원은 푸르흐너가 1943년 6월 1일부터 1945년 4월 1일까지 18~19세 당시 슈투트호프 강제수용소에서 사무실 속기사로 일하면서 1만505명의 수감자가 가스실과 열악한 환경, 아우슈비츠 사망 수용소로의 이송, 전쟁 말기 사망 행진으로 잔혹하게 살해되는데 고의적으로 가담했다고 판결했다. 이에 지난달 그녀의 변호인단은 푸르흐너가 당시 수용소에서 벌어진 범죄를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항소했다.

여전히 진행 중인 과거 청산 

검찰은 푸르흐너의 재판이 나치 과거를 청산하는 마지막 사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으나 나치 전범 수사를 전담하는 루트비히스부르크의 연방검찰청은 독일 여러 지역에서 세 건의 추가 사건이 검찰이나 법원에서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혐의자는 모두 고령이기 때문에 재판에 출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푸르흐너 사건은 최근 몇 년간 진행된 여러 사례 중 하나로, 2011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자동차 공장 노동자였던 존 데미안유크가 소비보르 사망 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해 살인 방조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선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과거 독일 법원은 경비원이 특정 살인에 참여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만 기소가 가능했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데미안유크는 혐의를 부인했으나, 항소 심리가 열리기 전 사망했다). 그러나 검찰은 뮌헨에서 열린 데미안유크의 재판에서 수용소 운영에 일조한 사실만으로도 살인방조죄로 기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이후 연방 법원은 2015년 아우슈비츠 경비원이었던 오스카 그뢰닝의 유죄 판결을 같은 논리로 확정했다.

푸르흐너는 슈투트호프 수용소에서 속기사로 일할 당시 18~19세였기 때문에 소년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고 법원은 그녀의 정신적 성숙도를 명확하게 입증할 수 없었다. 초기에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단치히에서 강제 이송해 집결시켰던 슈투트호프 수용소는 나중에 ‘노동 교육 수용소’로 사용됐고, 주로 폴란드인과 소련인이 강제 노동을 하다 사망하곤 했다.

1944년 중반부터는 발트해 지역의 게토와 아우슈비츠에서 온 수천 명의 유대인이 이 수용소에 수용됐고, 수천 명의 폴란드인도 바르샤바 봉기 진압 과정에서 끌려왔다. 이 외에도 정치범, 범죄 혐의자, 동성애자로 의심받은 사람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들이 수용된 바 있다.

슈투트호프 강제 수용소에서는 6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