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의당 ‘구원투수’ 권영국 “6411 정신으로, 아래로 현장으로”

정의당의 새 당사는 서울 지하철 대림역에 내려서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이른바 구로디지털단지의 흔한 아파트형 업무동 10층의 한 칸을 쓰고 있다. 주변과 너무 자연스러운 전직 ‘거리의 변호사’ 권영국 정의당 대표를 21일 당사에서 만났다.


2019년에 늦깎이로 입당한 권영국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비례후보로 출마한 뒤 원외정당이라는 악조건에서 대표로 나섰다. 후보자가 없어 등록을 한 차례 연장한 끝에 권영국 대표 체제가 출범했다. 그는 “총선에서 굉장히 많은 이들이 살길을 찾아 정의당을 떠났다”며 “세월호 선장처럼 배가 침몰한다고 무조건 나만 떠나는 게 맞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은 많은 인사와 당원들이 탈당했다. 이어 지역구와 비례 모두에서 당선과는 거리가 먼 성적을 거둔 정의당은 원외정당이 됐다. 정의당의 총선 참패에 권 대표는 “제도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21대 국회에서 대중들, 유권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면서 “대중의 삶의 문제와 거리가 멀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아래로, 현장으로, 민중 속으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번에도 등장한 위성정당에 대해 “대의민주주의와 정당민주주의라는 헌법정신을 위반한 것”이라고 날을 세운 권 대표는 “위성정당에 반대한 노동 및 시민사회 단체들과 협력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권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21일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8.21 ⓒ민중의소리


-구로에 당사를 낸 이유가 있으신가.
=비용 절감도 고민했고, 대표로 나오면서 노동 중심을 바로 세우겠다는 약속했는데 취지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다. 과거 구로공단인데, 요즘 G밸리라고 부른다. 대부분 아파트형 공장으로 1만 3천여 업체에 15만 명이 일한다. IT업종이 많아 젊은 노동자도 많다. 노동법 대상에서 제외되고, 노조도 없는 노동자들이 많은 곳이다.
(정의당은 26일 새 당사 개소식을 연다.)

-‘거리의 변호사’였던 대표님과도 어울린다.
=노회찬 의원이 투명인간으로 부른 노동자들이 새벽에 타는 버스 6411번을 이야기했다. 이 옆이 예전엔 6411번 종점이었는데 노선이 연장돼 양천구로 옮겼다고 한다. 이사 와서 지나가는 6411번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대표로 당선되면서 노동과 현장을 특별히 강조하셨다.
=제도적인 문제도 있긴 하지만 정의당이 대중들, 유권자들로부터 엄청나게 신뢰를 잃었다. 지나치게 중앙당, 여의도, 국회의원 중심으로 활동했다. 총선 때 돌면서도 현장과 지역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당이 사회적으로 부각되는 의제나 이슈에는 주장을 많이 했지만, 일상적인 삶의 문제에서 멀어졌다.

-노동 현장을 많이 가는 것에서 나아가 지지층을 결집할 방안은 무엇인가.
=우선 노동자 민중 안의 불신과 부정적 인식을 바꿔내는 것이 필요하다. 사라져야 할 정당이라는 댓글도 많았다. 찾아간다고 지지 세력이 되지는 않는다. 사업이나 계기를 통해 조직적으로 연결하고 관계를 만드는 것이 다음 단계다. 비례대표제의 헌법적인 취지를 위성정당이 망가뜨렸는데, 이에 반대하는 시민사회, 노동조합, 노동단체들과 대화를 모색하는 상황이다.

-원외정당이 되고 당 안팎에서 부채 문제 걱정이 많다. 개선이 되고 있나.
=30억 정도 부채가 있다. 21대 총선에서 준연동형비례제의 당 득표율을 올리기 위해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4천만원씩 지원금을 줬다. 원내에 있을 때 변제를 많이 했어야 되는데 녹록지 않았던 것 같다. 원외정당이 되고 국고보조금이 없어지니 위기 상황이 됐다. 전직 의원과 대표단,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 그래도 쉽지 않다.

구로에 새 당사 내고 새 출발하는 정의당 권영국 대표
부채 문제는 “아직 쉽지 않아”


권영국 정의당 신임 대표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7·8기 지도부 이취임식에서 당 깃발을 흔들고 있다. 2024.5.28 ⓒ뉴스1


-진보정치와 관련해 묻겠다. 독자냐 연합이냐는 오래된 쟁점이다. 정의당은 국회 내에선 민주당과 협력도 했지만 총선에선 같이 하지 않았다. 대중들은 어떤 때 연합하고 어떤 때는 아닌지 궁금할 것 같다.
=민주당과 법안을 공동으로 발의를 한다든가 서로 협력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당은 사회경제적 평등을 중시하는 정당이다. 시장 중심적이고 성장 중심적인 정당과는 대립적인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원전 문제 갈지자 행보, 부자 감세 등에서 민주당의 기본가치는 보수다. 그래서 민주당과는 사안별 연대 관계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 국민의힘이야 연대의 대상도 아니고,

-다른 정당과의 관계는 어떻게 보시나.
=진보적 가치가 분명하고 지향에서 합의할 부분이 있는 녹색당, 노동당 등과는 대화 채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다. 낮은 단계에서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협의하는데, 7월에 아리셀 참사와 관련한 3당 공동성명을 낸 바 있다.

-프랑스 총선 결과도 언급하면서 진보정당이 폭넓게 손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던데
=민주당의 우산 속에 있다고 보는 정당에 대해서는 민주당과의 관계와 차별성이 없다고 본다. 유연성을 가져야 하지만 원칙을 깨면서 정치를 할 수는 없다. 헌법을 보면 대의민주주의를 중요시하고 정당민주주의도 규정이 돼 있다. 연동형비례제는 국민을 닮은 국회를 만들려는 헌법정신에 기초한 것이다. 위성정당은 헌법적 기준을 깨고 국민의 의사를 도둑질한 셈이다. 지금 배가 고프다고 독약을 먹을 수 있나. 정치가 4년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기존엔 진보적 주장을 하는 이들에 대해 유연하게 연대하고 협력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위성정당은 헌법정신 위반한 것
원칙 깨면서 정치할 수 없다”


-연동형비례제는 두 차례나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병립형과 결과가 크게 다르지도 않고, 제도에 비판적인 여론도 크다. 정치개혁 방향을 새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은데.
=결과적으로 독일이나 유럽 나라와 달리 비례를 늘리지도, 지역구를 줄이지도 못하니 지역구 득표가 많으면 비례에서 손해를 보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위성정당 방지 제도를 만들어야 했는데 거대양당은 시급한 과제로 보지 않았다.
나도 현행 제도에 회의적이다. 다음에도 국힘당이 위성정당을 만들 때 민주당이 가만히 있겠나. 시정될 가능성이 별로 없고 여론도 부정적이다. 지금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논의를 곧 시작해야 된다는 당내 공감대는 있다.

-정치 현안으로 최근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에 이어 윤 대통령이 국민들이 북한에 항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의 총력안보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때 관제데모에 엄청나게 끌려 다녔다. 시대에 뒤떨어진, 국민을 동원 대상으로 보는 불순한 발상이다. 정권이 정치적 위기를 느끼고 안보 문제를 불러내고 있다. 집권 첫해에는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대우조선해양, 화물연대, 건설노조 등 노조를 폭력조직, 범죄집단으로 몰아 지지율을 올리다 효과가 안 나니까 남북 대결을 이용하고 있다.
역사관 문제도 단순히 몰역사적이다, 역사 인식이 없다는 걸 넘어 일제 강점기를 합리화해야 생존하고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세력들이 정권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

-올해 폭염에 기후약자, 특히 노동자의 피해가 극심하다. 정의당은 기후위기를 강조해왔고, 총선 때도 녹색당과 연합했다. 정부는 탄소 배출 축소는 관심이 없고, 기후대응 해법이 원전과 댐 건설이다. 어떻게 보시나.
=대통령부터 정부 전체가 생태계가 망가지든 말든 관심 없고, 먼 미래의 일로 여기는 것 같다. 석탄발전소를 빨리 폐쇄하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이나 산업 전환을 민간자본 위주로 하면 양극화, 불평등 강화로 간다. 우리나라는 발전소가 전부 공기업인데 세계에 이런 좋은 조건이 없다. 석탄발전소를 줄이면서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고, 일자리 문제도 해결하는 정책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펼 수 있다.

-요즘 온열 사망 노동자들이 많은데 노조에서 예방할 방법을 차단하고 기업에 자율적으로 대비하라고 권고하는데 그친다.
=조선소는 물론 제주도의 중간 물류센터도 그렇고, 급식실에서 에어컨 설치하다 사망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그런데도 외부 기온이 33도면 실내에 에어컨 없을 때 어떻게 될까 고려를 안 한다. 뙤약볕 떨어질 때 콘크리트 위에 있는 사람의 체감온도를 고려하지 않는다. 1시간 작업에 10분, 15분 휴식시간 주라는 것도 의무도 아니고 그냥 권고다.
쿠팡대책위 공동대표로 활동해왔는데, 물류센터 내의 온도와 습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여러 차례 발표돼 상당히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 작업장이 아니라 창고로 분류한다. 그래서 기본적인 에어컨도 없다. 죽으라고 방치하는 것이다. 당연히 살인정권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노동 약자 지원을 자주 거론하지만 윤 대통령은 노란봉투법을 거부했다.
=대통령이 사기를 치고 있다. 노동약자라는 말을 거렁뱅이에 적선하는 것처럼 쓰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진짜 사장과 교섭할 수 있는 법을 만드는 것이고, 헌법상의 파업권을 행사했다고 범위를 넘는 손배 책임을 물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과도하고 무차별한 손배 책임을 민법 등의 원칙에 따라 정상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이걸 파업 만능이라고 비난한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21일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8.21 ⓒ민중의소리


“대중과 현장에서 멀어진 점 반성
다시 시작하는 정의당, 격려해주시기 바란다”


-개인적 질문 드린다. 어쩌면 제일 어려운 시절에 후보로, 대표로 불려 나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구원투수 같은 느낌이다. 비례대표로 출마할 때 많은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떠나갔다.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자기만 살려고 탈출해버린 세월호 선장을 많이 비난했잖은가. 내가 할 수 있는 책임은 다하자는 생각으로 비례대표로 나왔다. 대표로 나선 것도 결국 그 연장선이다. 노동 중심을 세우고, 현장성을 강화해 정의당이 노동자민중, 사회적 소수자들을 대변하겠다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당선 안 됐으니까 난 책임 없어, 그렇게 못 했다. 처음엔 고사했는데 1차 등록에 후보가 없었다. 당내에 위기감이 느껴졌다. 여러 곳에서 압력도 받았고 결국 거부하지 못했다. 입당이 얼마 안 돼 뭘 몰라서 맡은 것일 수도 있다.(하하하)

-한때 정의당을 지지했으나 지금 안 하든 못 하든, 지켜보고 있는 분들께 어떤 말씀을 전하고 싶으신가
=2022년 대선의 결과를 두고 정의당에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많다. 안타깝다. 다당제가 가능한 나라인데 선거 결과의 책임을 왜 소수정당에게 미루나. 거대양당이 결선투표제를 만들어야지. 이런 식이면 우리나라는 제3 정당이 존재하면 안 된다.
정의당은 노회찬 의원이 이야기했던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이들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나 전세사기 피해자, 영세상공인 등을 대변하는 정당이 필요하지 않은가.
21대 국회 과정에서 일부가 과잉 대표되기도 했고, 현장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했다. 진솔하게 평가하고, 반성하고 있다. 현장으로, 더 아래로, 민중 속으로 가서 길을 찾겠다. 예전 구로공단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노력을 봐주시고 격려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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