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급증에 ‘대출한도 줄인다’는 정부... 전문가들 “엇박자 정책에 실효성 의문”

내달 1일부터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스트레스 금리만큼 대출한도 축소

자료사진 (해당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뉴시스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정부가 ‘대출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다음 달 1일부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RS) 금리를 적용하는 한편,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더 높은 스트레스 DRS 금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최근까지도 집값 상승세를 지속하는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주담대 대출한도를 더 조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서울 집값 상승세를 막을 수 있지는 의문이다. 정부의 대출 규제만으로 서울 집값을 잡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금리인상이나 정비사업 규제완화 철회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다음 달부터 스트레스 DSR 2단계를 시행한다. 수도권 은행 주담대에 적용하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가산금리를 예정된 0.75%포인트(p)보다 높은 1.2%p로 상향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스트레스 DSR 제도는 변동금리 대출 등을 이용하는 차주가 금리상승으로 원리금 상환부담이 상승할 가능성을 감안해 DSR 산정시 일정 수준의 스트레스 금리를 부과하는 제도다. 미래 금리 변동성 리스크를 반영해 스트레스 금리가 붙는 만큼 대출한도도 줄어드는 식이다.

이에 따라 수도권 주담대 차주들은 1.2%p 높은 스트레스 금리를 적용받게 되고, 지방보다 대출한도도 줄어들게 된다. 예컨대 현재 연소득 5천만원인 차주가 30년 만기 변동금리(대출이자 4.5%로 가정) 대출을 받으면 현재 한도는 3억2,900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2단계 스트레스 DRS가 적용되면 수도권 주담대 차주의 한도는 2억8,700만원으로 4,200만원 낮아진다. 비수도권 차주의 한도는 3억200만원으로 2,700만원 줄어든다.

은행권에서는 전세자금대출(전세대출)을 제한하고 나섰다. 신한은행은 지난 26일부터 ‘조건부 전세대출’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해당 조건은 임대인(매수자) 소유권 이전, 선순위채권 말소 또는 감액, 주택 처분 등이다. 전세대출이 갭투기(전세 끼고 매수) 등 투기성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9월부터 주택담보대출 한도 축소 자료사진 ⓒ뉴시스

정책자금대출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도 풀어주더니...
이젠 ‘대출 제한’으로 가계대출 줄인다는 윤석열 정부  


이처럼 정부는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과열됨에 따라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다고 판단해 대출을 조였는데, 그 실효성을 두고는 의문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출 규제에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집값 상승세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대출 규제 강화는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대출 한도가 정해지는 DSR 규제인데, 집값 상승세가 가파른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의 지역은 현금 부자가 즐비해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계대출을 줄이기 위해선 대출 규제가 필요한 건 맞다”면서도 “아이러니한 게 돈 있는 사람은 대출 규제와 관계없이 집을 살 수 있다. 강남 등 현재 상승세가 강한 지역은 대출 없이도 집을 살 수 있는 부자가 많아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동산 정책들이 대출 규제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는 정비사업 규제완화와 정책자금대출 확대 등 집값 부양 의도가 뚜렷한 부동산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얼마 전 8.8 부동산 대책에서 추진한 ‘재건축 재개발 규제완화’와 ‘신축 빌라 무제한 매입’ 등이 대표적이다. 한쪽에서는 대출 규제로 집값 상승을 막겠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를 통해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서울 주택시장이 과열 양상을 띠게 된 원인은 정부 정책에 있다. 각종 규제완화와 세제혜택을 통해 집값을 끌어올리려 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이젠 그걸 그대로 두고, 대출을 제한해 집값 상승을 막겠다고 한다. 정책이 중구난방이다. 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임 교수도 “정부는 그동안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정책자금대출을 풀어 가계 대출과 집값 상승을 유도했다”며 “이제 와 대출 규제를 한다고 해서 서울 집값이 안정화되길 바라는 건 무리”라고 지적했다.

실제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7월 말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 잔액은 559조7,501억원으로 전달(552조1,526억원)보다 7조5,975억원 증가했다. 그리고 이 중 4조5천억원(60%)가량이 국토부에서 취급한 구입자금대출(디딤돌 대출)과 전세자금대출(버팀목 대출) 등 정책금융 대출이었다.


“서울 집값 안정화 위해선 ‘금리인하’ 등 추가 초지 필요”


전문가들은 가계대출 급증에 따른 대출 규제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정책의 실효성을 위해선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대출규제와 함께 금리인상,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강화 등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은영 소장은 “서울 집값 안정화는 어중간한 수준의 대출규제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정부가 정말 과열된 서울 집값 잡으려고 한다면 금리인상이나 DSR·LTV 강화 등 추가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존 대출을 회수할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기존 대출자들에 강화된 규제를 적용해 무리한 대출이나 과도한 투자로 산 주택들이 다시 시장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광수 대표는 “대출을 조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존 대출을 회수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만기가 갱신되는 기존 대출에 한해서라도 강화된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로 인해 무리하게 사들였던 주택이 다시 시장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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