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고 최종 책임자로 거론되다가 ‘윗선’에 의해 구명됐다는 의혹을 받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광범위한 인맥이 통화기록을 통해 확인됐다.
‘민중의소리’가 30일 임 전 사단장의 작년 7월 28일~8월 9일 통화기록을 분석한 결과, 임 전 사단장은 외사촌 동생인 박철완 광주고검 부장검사뿐 아니라 전 정부 고위직 인사와 현직 5선 국회의원 등 다양한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임 전 사단장이 작년 8월 1일 오전 8시 55분께 14분 넘게 통화를 한 사람은 5선 A의원이다. A의원은 임 전 사단장과 고등학교 동문이다. 그는 ‘민중의소리’와 통화에서 “임성근은 고등학교 후배인데, 사의를 표명했다고 했다. 내가 학교 선배니깐 그만둔다고 인사차 전화를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A의원은 “‘잘했다. 군인은 책임과 권한에 대해서는 영역이 없는 것이니 깨끗하게 이유 없이 물러나는 게 맞다’, ‘새로운 삶을 사는 게 맞다’,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A의원은 자신과의 대화 내용과 달리 임 전 사단장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사법적 책임을 회피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활동을 해온 데 대해서는 “군인이 억울한 일이 어딨냐”며 “임성근은 사의를 표명을 했는데, 누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럴 애가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수사단(단장 박정훈 대령)의 1차 수사 말미인 작년 7월 29일 저녁 문재인 정부 국방부 고위직 출신 인사 B씨와도 4분 이상 긴 통화를 나눈 기록도 확인됐다. B씨 역시 임 전 사단장의 거취와 관련해 결단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B씨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사령부 참모장을 할 때 몇 차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B씨는 “그때 내가 낙엽에 관한 시를 읽어줬던 것 같다.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떨어질 때를 알고 자기 몸을 불사르기 때문이다’는 내용의 시를 읽어줬다”며 “너는 장군을 하루만 하든 10년을 하든 장군은 장군인데, 10년 달고도 똥별 소리 듣는 놈들이 있고, 몇 개월 달고 평생 장군 소리 듣는 사람이 있다. 잘 판단하라는 식으로 얘기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입신양명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공적지위를 유지하려고 하는 건데, 이게 본인이 하고 싶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상황이 그렇게 몰아가지는 경우도 있다”며 “조짐이 별로 안 좋은 느낌이 들어서 직접 통화를 해봤다”고 했다. 이어 “글쎄 (임 전 사단장이) 내 말에 별로 귀를 안 기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외사촌 후배인 박철완 검사와는 해당 기간에 무려 20여 회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임 전 사단장은 박 검사에게 당시 자신이 처한 상황과 관련한 각종 조언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두 사람의 연락은 임 전 사단장을 혐의 대상에 포함한 해병대 수사단 기록이 경찰에 이첩되기 전날인 작년 8월 1일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지난달 19일 대통령 탄핵 청문회장에서는 박 검사에게 문자로 새 휴대전화 공개 문제와 관련한 법률 자문을 구하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박 검사는 당시 ‘동아일보’에 “형(임성근)은 두 번 사직하려고 했는데 (누군가) 만류했다. 나도, 형도 만류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임 전 사단장은 수도권에서 활동하면서 정관계 인사들과 두루 친분이 있는 해병대 전우회 인사 C씨와도 세 차례 긴 통화를 나누기도 했다. C씨는 “오랜 기간 (임 전 사단장과) 알고 지냈고, 종종 고민 상담도 해주고 그랬다”고 말했다.
이들 모두 임 전 사단장 구명로비 의혹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인물들은 아니다. 다만 임 전 사단장이 진영을 불문하고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의 임 전 사단장 구명로비 통화 녹음을 폭로한 공익제보자 김규현 변호사는 최근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서 “임 전 사단장이 로비를 했다면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했을 것”이라며 “본인이 진급할 때도 많은 루트로 로비를 해서 국방부나 청와대 근무하던 사람들이 ‘도대체 임성근이 누구길래 도처에서 전화가 오는 거냐’ 이런 얘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진급 때도 그랬는데, 본인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는 더 하지 않았겠나”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