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정부의 부실한 ‘기후위기’ 대응계획에 “헌법에 어긋나”

기후위기 대응 단체들 “환영”하면서도 “기뻐할 시간조차 없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2024.08.29. ⓒ뉴스1


29일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부실한 기후위기 대응 계획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단체들은 일제히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도 “기뻐할 시간조차 없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 국가’로 불리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가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혁신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티핑포인트’에 이르기 때문이다. 티핑포인트는 영구동토층에서 메탄이 나오는 등의 이유로 인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지구가 급속하게 뜨거워지는 시점을 의미한다.

4년 5개월 만의 판결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헌재 “미래에 과중한 부담 이전”


앞서 청소년기후행동은 지난 2020년 3월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지킬 수 없다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어 ‘시민 기후소송’과 ‘영유아 기후소송’ 등 유사한 취지의 소송이 2021년, 2022년, 2023년에 이어지면서 헌재가 이를 병합하여 심리하기에 이르렀다. 위헌 판결 청구의 대상이 된 법은 국가의 기후대응에 관한 법인 ‘탄소중립기본법’이다. 이 법에 따라 정부는 지구를 뜨겁게 하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하고 하위 정책이 만들어지고 시행된다.

헌재는 이날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2024.08.29. ⓒ뉴스1

쟁점은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에서 규정한 ‘2030년까지 2018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 감축 이상’이라는 목표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데 충분한지 여부였다.

2015년 체결된 파리협정 등에 따르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의 폭을 1.5도에서 2도 수준으로 억제하지 않으면 극단적인 기후변화의 위험성이 커진다. 이에, 탄소중립기본법에서 규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인류가 그어놓은 마지노선인 1.5~2도 상승을 막기 목표에 부합하는지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청구인들은 해당 감축목표가 기후변화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대로 진행될 경우 미래세대에 과도하게 책임을 전가하여 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 5월 마지막 변론에서 ‘아기 기후소송’ 청구인단인 초등학생 한제아(12세) 양은 “기후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우리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우리는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비판했다. (▶한제아 양 발언 전문 보기)

헌재는 탄소중립기본법에서 2030년까지만 목표치를 제시한 점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탄소중립기본법에서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만 정하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에 관해서는 어떤 형태의 정략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으므로 이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규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청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탄소중립기본계획소송 관계자들이 기후헌법소원 최종 선고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량을 아예 설정하지 않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계획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 4건을 심리한 뒤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4.8.29. ⓒ뉴스1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단체들은 “우리에게는 기뻐할 시간조차 없다”고 경고했다.

기후솔루션은 청소년기후행동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4년 5개월 만의 결론이라며 “그사이 우리는 세계 평균 온도가 최고점을 경신했다는 뉴스를 숱하게 보았고, 올여름에는 심한 무더위를 몸으로 체감했다. 과학과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세계 온실가스 연 배출량은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최근까지 쉼 없이 늘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안주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헌재의 위헌 판결은 탈선한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바로잡을 시작에 불과하다”라고 촉구했다.

에너지정의행동은 “그동안 정부가 진행해 온 기후대응 정책은 경제성장 명목으로 온실가스를 늘리고, 기후 재난 당사자들을 배제하고, 지역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면서 “오늘 판결에 따라 이제 정부와 국회는 헌재에서 정한 기한 내에 탄소중립기본법의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대한민국의 온실가스감축목표를 강화해야 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기후위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정의로운 전환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정부와 법률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국제사회와 기후과학계가 제시하는 ‘지구 평균 기온 1.5도 상승 제한 목표’ 달성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시민의 기본적 권리인 환경권을 도외시한 정부의 소극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중차대한 환경적 위험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에 “헌재 결정에 따라 조속한 시일 내에 탄소중립기본법에 장기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라”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 같은 헌재의 결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네덜란드 대법원에서 확정된 ‘위르헨다 판결’,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연방기후보호법 헌법불합치 결정 등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하다는 취지의 판단이 다수 나온 바 있다. 미국 몬태나주에서 진행된 기후소송도 지난해 8월 원고가 승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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