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붕괴 없다”는 정부, “더 못 버틴다”는 의료진

한계에 다다른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한계가 오고 있다”

2024년 8월 30일, 방사선 치료를 받던 한 환자가 쇼크가 와서 급하게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진료센터로 옮겨지고 있다. ⓒ민중의소리

“진짜 번아웃이 심하다. ... (전공의들이 사직하던) 올해 3월 당시에는 곧 끝나겠지 생각으로 버텼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되니까 한계가 오고 있다. 한계다.”

30일,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A 씨가 ‘민중의소리’와 전화인터뷰를 하며 한 말이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전화를 받은 그의 목소리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루 동안 “많이 보면 (환자를) 80명에서 100명 가까이 보게 된다”고 했다. 전공의들이 없는 병원에서 홀로 실시간으로 밀려드는 응급환자를 받느라 신체적으로 힘든 것도 큰 문제지만, 의료사고 우려에 더 큰 압박을 느끼는 듯했다.

대통령과 장관의 거짓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08.29. ⓒ뉴시스

여러 의료진과 전문의 A 씨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우리나라 응급의료는 붕괴 직전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응급실 붕괴는 사실이 아니”고 “응급실 병상 현황도 전공의 집단 이탈 전 대비 98%를 유지”하고 있으며 “응급의료센터 전공의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교묘하게 속이는 거짓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국정브리핑 후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비상진료 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현재 A 씨가 다니는 병원 응급실은 응급의학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의들이 땜빵 메꾸듯 투입되고 있었다. A 씨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응급의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의들이 들어오긴 했다. 전공의가 아니다. 인턴을 겨우 마치고 온 선생님도 있고, 그렇다. 응급의학 트레이닝(훈련)을 받거나 응급실에서의 일을 해본 분들이 아니다. 그러니까 일을 전적으로 맡길 수 없다. 그냥 문진 정도만 할 수 있고 ... 다른 곳도 상황은 비슷하다고 들었다. 정부에서는 군의관도 주고 충분히 지원해 줬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데, 인턴 겨우 마치고 온 분들이었다.”

또 응급실 의사가 응급처치 후 바통을 넘길 신경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소아과에 전공의가 없다보니, 응급실에서 중증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심근경색 환자가 응급실에 왔다. 그러면 심장혈관에 혈전이 생겨서 막혀 있는 것을 빨리 뚫어줘야 한다. 그 시술을 할 수 있는 심장내과 의사가 그걸 해 줘야 환자가 살 수 있다. 그 의사가 없으면, 환자가 응급실에 온다고 해도 사망한다. 그런데 그런 배후과들에 전공의가 없다 보니 입원환자 수도 줄고, 시술도 줄어드는 상황이 됐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 역시 “응급실 병상이 풀가동 된다 하더라도, 배후 진료가 잘 되고 있을지 의문”이라며, 실제 심근경색 의심 환자를 진료할 배후진료과 의사가 없어서 거부당한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응급실 전문의들 “두렵다”


녹초가 된 A 씨를 비롯해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A 씨도 “두렵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증환자도 간혹 뺑뺑이를 돈다. (응급실을 거쳐 연결되어야 할) 배후과에 의사가 없고, 나는 다른 중증환자를 보고 있고, 그 환자까지 받을 수 없으면... 그런데 추석이 되면 어쨌든, 많은 의료기관이 문을 닫을 것이고, 응급실 뺑뺑이도 심해질 거고, 응급실에 오는 환자 수도 기존보다 2배 이상 늘 것이다. 그러면 혼자 근무하는 지역의료센터나 기관에서는 의료사고 위험이 더 커진다. 많은 위험이 생기지 않을까.”

이날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도 “추석 때 난리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전공의들 사직 전에도 응급실은 난리였다”면서 “그런데 전공의들 사직 후 더 난리가 났다. 거기에 추석까지 겹치면, 더 난리가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교수들은 전공이 없는 추석을 한 번도 경험 안 해 봤기에 두려워한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라고 덧붙였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도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홀로 근무할 때 한꺼번에 몰려드는 중증환자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들을) 어떻게 다 살리긴 했는데, 운이 좋았다”면서 “아주 위험한 의료행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A 씨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의학적 판단을 검토하는 단계가 사라진 점도 의료사고 발생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기존에는 (전공의) 인력이 있으니까 더블로 진료를 검토하면서 실수를 줄였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혼자 초진을 보고, 지시도 하고, 필요한 수기 작성도 하고, CT도 보고, MRI도 봐야 하고, 환자에게 가서 설명도 하고, 모든 걸 혼자 다 해야 한다. 인력이 있을 때는 나눠서 하던 일도 혼자 하다 보니 시간에 쫓기고, 그렇게 일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모두가 그만두기 직전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지난 30일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현재 전공의가 떠난 응급실 상황을 언급하며 "추석 때 난리가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스1

현재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체력과 정신은 한계에 도달했다.

이형민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당장 나조차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겠다”면서 “이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000명에 가까운 응급의학 전문의의 99%가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고 있고, 실제 사직서를 품고 있는 사람도 있고, 이미 사직서를 낸 사람도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얼마나 더 사람이 죽어야 (정부는) 위기라고 생각할까? 제대로 치료하면 살릴 수 있는데, (그럴 수 없어) 살릴 수 없을 때 힘들다. 환자를 받아야 하는데 못 받을 때도 힘들다. 지금까지는 참아왔다. 앞으로 나아질 거란 기대가 있었기에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기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정신적인 번아웃이 더 심각하다.”

남궁인 전문의도 매불쇼에서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오른손이 안 움직이고, 오른 눈이 안 보이다가 왼쪽 눈까지 부었다. 밤을 너무 많이 샜더니 심장이 뛰어서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건강이냐 직장생활이냐를 두고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정말 응급의학과 전문의들 99%가 사직을 생각하고 있을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A 씨 역시 “맞다”고 답했다.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않는 것은 “어쨌든 응급실이란 곳은 마지막까지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응급실 문을 닫으면 정말 큰 재난 아닌가. 그래서 말은 못 하지만, 사직하고 싶다는 얘기가 익명의 게시판에 많이 올라온다. 진짜 번아웃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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