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 기반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건 중국이 아닌 미국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024년 7월 23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베이징 선언'이 서명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2차 대전 이후 승전국들은 유엔(UN),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여러 국제 기구가 설립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를 구축했다.  '규칙 기반 세계 질서'(rules-based world order)라는 개념은 외교 및 국제 정치의 영역에서 제안되고 발전된 개념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국가들이 만들어낸 이 세계 질서를 일컫는다.  특히 미국은 자기가 규칙 기반 세계 질서를 통해 국제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세력임을 내세우고, 규칙 기반 세계 질서를 위협한다고 적대국을 비난해 왔다. 이에 반박하는 미들이스트아이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The US, not China, is threatening the rules-based world order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경쟁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통념은 널리 퍼져 있다. 이 구도에서 서방의 주류 담론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들이 창설하고 주도해온 소위 '규칙 기반 세계 질서'를 수호하고 집행하는 국가이라고 주장한다. .

서방의 규칙 기반 질서는 유엔 창설 이후 약 80년간 다양한 협약을 통해 성문화된 국제법과 일치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최선의 경우 이 질서는 미국과 서방이 선택적으로 반영한 국제법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최악의 경우 국제법은 서방의 특정 이익에 맞게 왜곡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그 목적은 서방의 지정학적 이익을 충족시키고 그들의 패권을 정당화하는 데 있다. 서구 열강은 이러한 '규칙'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면 인류 전체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믿지만, 이는 오만에 눈이 먼 판단이다. 서방의 믿음은 잘못됐다.

한편 서방 주류 담론은 중국이 규칙 기반 질서에 대한 주요 위협이라며 중국이 이 질서를 도전하고 수정할 의지와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그 동맹국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서구 지도자들의 분석과 의사결정이 얼마나 심각한 인지 부조화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 외교의 실패

서구가 공산 중국에 그런 전복적 의도를 부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중국은 미국과 다르다. 중국은 1979년 베트남에 파병한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해외에 군대를 파견한 적이 없으며, 다른 나라에 쿠데타를 조직하거나 내정에 간섭한 적도 없다.

또한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법적으로 승인된 제재를 제외하고 어떤 국가에 대해서도 일방적인 제재를 가한 적이 없다. 해외에 보유한 군사 기지는 단 하나, 지부티의 해군 기지뿐이며, 그곳에서 주로 남중국해를 순찰한다. 이 지역은 중국의 가장 중요한 공급 라인이다.

중국의 주요 영유권 주장은 태평양 연안에 가까운 섬인 대만에 대한 것이다. 미국은 1972년 이후 세 차례의 미중 공동성명을 통해 대만을 중국 본토의 일부로 명확히 인정했다. 게다가 미국은 대만을 유엔에서 축출하고 그 자리를 중국에 넘겨주기도 했다.

만약 이러한 극도로 절제된 책임 있는 행동이 중국을 규칙 기반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게 만든다면, 미국과 그 가까운 동맹국들, 특히 이스라엘의 행동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규칙 기반 세계 질서를 누가 위협하는지를 평가하는 또 다른 기준은 지구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지역인 중동에서의 행동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는 데 독점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와 거리가 멀다.

미국 외교는 1973년 욤키푸르 전쟁 이후의 셔틀 외교와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 간의 평화 협정 등에서 중요한 성공을 거뒀지만, 지난 30년 동안은 거의 예외 없이 실패해왔다.

중국과 중동

미국의 실패는 2000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정의 붕괴,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함께 시작된 중동 전역의 '테러와의 전쟁', 2003년 이라크 재침공, 2021년의 굴욕적인 아프가니스탄 철수, 그리고 2011년 이후 이라크를 친이란 민병대에 넘겨준 일 등을 포함한다.

또한 미국의 실패는 2011년 시리아에서의 '아사드 퇴진' 정책과 시리아의 아랍 연맹 재가입, 아랍 및 서구 대사관의 재개관, 2015년 이란과의 핵협정 체결 및 3년 후 트럼프 행정부의 치욕적인 탈퇴를 포함한다.

미국의 실패는 이스라엘의 이익만을 대변한 편파적인 아브라함 협정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이로 인해 국제사법재판소(ICJ)와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제기된 대학살 및 인도에 반한 범죄 혐의까지 포함된다.

중동에서 후발주자인 중국의 접근 방식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중동에 군사 기지가 없으며, 유엔이 위임한 평화유지 임무에 참여해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의 주요 국경을 순찰하고 감시하는 몇 백 명의 병사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의 병사도 파견한 적이 없다.

수십 년 동안 중국의 중동에서의 주요 관심사는 이 지역 국가들과의 경제 및 무역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었으며, 이 두 분야에서 모두 성공을 거뒀다. 중국은 이집트, 이란, 걸프협력회의(GCC) 모든 회원국들과 전략적 경제 협정을 맺고 있으며, 이스라엘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 중국의 외교적 노력은 두 가지 주요 성공을 거뒀다. 2023년에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화해를 중재하며, 이란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정치적 노선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또한 올해 초에는 팔레스타인 내 파타와 하마스를 비롯한 여러 파벌 간의 화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며 또 하나의 중요한 합의를 도출했다.

이 외교적 성과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팔레스타인의 오랜 분열은 성공적인 평화 프로세스에 큰 장애물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분열을 이용해 협상할 상대가 없다는 주장을 펼쳐왔고,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 점령지를 계속해서 합병해왔다. 만약 팔레스타인 파벌들이 베이징에서 이루어진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한다면, 이는 더 신뢰할 수 있는 평화 프로세스를 향한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막대한 무기를 제공하며 이스라엘의 공격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유엔에서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옹호하며, 가자지구에서의 휴전을 중재하고 이스라엘 인질을 석방하려 했으나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반면, 중국은 더 신뢰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초석을 놓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정을 촉진하려는 미국의 오랜 실패만 감안해도 중국은 중재자로서 더 큰 성공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중국이 미국과 달리 진정한 중재자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성공은 규칙 기반 질서를 크게 강화할 수 있지만, 그 질서는 국제법과 국제 인도법을 존중하는 진정한 질서여야 한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주장하는 규칙 기반 질서는 서구의 위선과 이중 잣대를 감추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중국은 서구의 규칙 기반 세계 질서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구 외의 국가들과 함께 국제법을 존중하고, 이중 잣대 없이 모든 국가에 일관되게 적용되기를 요구하며, 진정한 규칙 기반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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