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가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를 야기한 22개 전조 장면을 꼽아 정리한 이미지 자료가 온라인상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무분별하게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은 일부 가해자의 일탈이 아닌 구조적 성차별과 이를 방치하고 조장해 온 사회라는 사실이 깊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차별을 공고히 해온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 등에 책임을 물으며 “22만명 발생 전조였던 22개 장면이야말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던 대통령 2. 다섯 달 넘게 여성가족부 장관 임명 안 하는 대통령
- 첫 번째로 꼽은 건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 “젊은 사람들은 여성을 약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해 비판을 받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대통령의 부적절한 젠더 인식은 곧 정부의 정책 기조로 자리 잡았다. 거센 반발에 부닥친 여가부 폐지는 실현되지 않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사표를 수리한 김현숙 전 장관의 후임을 지금껏 임명하지 않으면서 7개월 가까이 업무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3. 일상의 성폭력 대응, 강간죄 개정 반대하던 국민의힘, 개혁신당 4.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요구에 응답 없던 국회
-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범죄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은 국회의 책임도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상대방의 동의가 없거나,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진 성관계를 성폭력 범죄로 처벌하는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반대한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을 지목했다. 지난 총선 당시 ‘비동의 강간죄’ 입법 여부에 대한 각 정당의 공약이 관심을 모았는데, 국민의힘은 “억울한 사람이 양산될 수 있다(한동훈)”는 이유에서, 개혁신당은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성범죄로 수사받고 인생이 송두리째 위협받는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될 것(천하람)”이라는 이유에서 반대했다.
해마다 수백건이 발생하는 ‘친족 간 성범죄’가 제대로 처벌될 수 있도록 공소시효를 폐지해 달라는 피해자들의 오랜 요구를 묵살한 것도 국회였다. 친족 간 성범죄의 특성상 가해자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오랜 시간 망설이다 가해자를 처벌하려 해도, 이미 공소시효(10년)가 끝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국회에서도 친족 성폭력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긴 했지만, 임기 내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5. 여성폭력 대응 예산 삭감해 버리는 기획재정부, 여성가족부 6. 틈만 나면 청소년 성교육 담당하는 성문화 센터 예산 깎으려는 정부와 지자체
- 예산안이 발표될 때마다 논란이 반복되는 ‘여성폭력 대응 예산 삭감’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적했다. 최근 공개된 여가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디지털성범죄 피해 대응 예산은 올해(12억2800만원)보다 31.5% 줄어든 8억4100만원으로 편성됐다.
심지어 딥페이크·불법촬영물 삭제 지원 업무 등을 맡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센터의 예산은 올해(34억7500만원)보다 2억여원가량 준 32억6900만원으로 편성됐다. 당초 디성센터는 불법 영상물 모니터링 시스템 고도화 및 인력 충원을 위해 예산을 30억원 늘려달라 요청했지만, 오히려 예산은 삭감됐다.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 대다수가 10대지만, 관련 교육 예산도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지적대로, 각 지자체에서는 성문화센터 운영 예산을 삭감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여가부는 올해 성 인권 예산을 전액 삭감한 데 이어, 내년에도 해당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7. 협소한 기준으로 ‘성적’ 이미지 선별하여 삭제 지원하는 정부 기관 8. 우울증 갤러리 등 성착취 온라인 커뮤니티 봐주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 정부 기관 등의 소극적인 대응도 빠질 수 없다. 여가부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공분을 산 뒤, 피해 영상물 삭제 지원을 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그간의 피해 사례를 보면, 정부 기관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에서 범죄 구성 요건으로 제시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해야 한다는 내용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 가슴이나 성기 부위 노출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삭제 지원 대상에서 탈락시키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착취, 자살방조 등 각종 범죄가 벌어져 큰 충격을 안겼던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접속 차단이 아닌 ‘자율 규제’만 권고했을 뿐이었다.
9. 단톡방 성희롱 방관하는 법 10. 여성을 점수 매기고 거래하며 모욕하는 성 산업 방치하고 성매매 여성만 처벌하는 법 11. ’성적 수치심 일으키는 신체’만 처벌하는 법
- 성범죄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는 허술한 법적 한계도 여전하다. 피해자가 들어가 있지 않은 단톡방에서 이뤄지는 ‘단톡방 성희롱’은 피해자에게 직접 도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성매매 알선 사이트에서 성매매 여성을 품평하는 후기나 성매매 여성의 사진이 버젓이 올라와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다.
또한, 현행 성폭력처벌법에서 불법촬영의 범죄 대상에 대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로만 규정하고, 법원이 이를 좁게 해석해 전신, 얼굴 등을 찍은 불법 촬영물은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신체 부위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결을 내리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12. 가해자가 ‘아는 사람’ ‘친밀한 사람’이라며 불송치, 불기소 쉽게 하던 수사기관 13. N번방때부터 해외 서버라 수사 못하고, 이 정도로 처벌 안 된다고 하던 수사기관 14. 유포는 적게 됐다며 불법촬영 감경하던 재판부 15. 국제 성착취 사이트 운영해도 솜방망이 처벌하고 감경한 재판부 16. 성착취물 텔레그램방 참여는 성착취물 소지가 아니라며 무죄 선고한 재판부
- 피해자가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신고하더라도, 수사기관의 소극적인 태도와 솜방망이 처벌은 반복됐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난 서울대·인하대 딥페이크 성범죄의 경우 역시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 결국 피해자들이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텔레그램 방에 들어가 범인을 잡기 위해 나서야 했다.
어렵게 가해자를 잡아 법정에 세우더라도, 제대로 된 처벌은 이뤄지지 못했다. 법원은 딥페이크 범죄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대체로 피고인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고인의 나이가 어리거나 초범이라는 점, 실제 성 착취 행위가 수반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경향이 반복되자,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공분이 확산된 지금도 일부 가해자는 정부의 강경 대응을 조롱하는 글을 게시하고 있다. 17. 단톡방에서 여성들 모욕하던 가해자 퇴출 안 시킨 학교, 언론사 18. 포괄적 성교육, 청소년 성평등 교육 막던 기독교 혐오 세력 19. 학교 내 성폭력 전수조사와 학생인권법 제정에 반대하던 교육 관료 20. 공공도서관 내 성평등·성교육 도서 열람 제한 및 폐기 민원 동조하는 차별 행정 21. ‘집게손’과 같이 여성혐오 논리에 편승해 여성노동자 사상 검증·해고한 게임 회사 등 22. 여성혐오 콘텐츠 방치하는 유튜브 및 SNS 플랫폼
- 이 외에도 디지털 성범죄에 관대한 문화, 성평등에 대한 끈질긴 방해와 백래시, 범죄를 방조하며 수익을 낸 거대 플랫폼도 성범죄를 양산한 토양으로 지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