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최 이해가 안 되는 어른 세대(혹은 자녀 세대)의 풍경을 우리는 각자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영화 '장손'은 '가까이에서 보면 밉고 사랑스러운, 멀리서 보면 수려한 사계절'이라는 모습으로 가족의 풍경을 담아냈다.
제목부터 묵직해 보이는 '장손'은 선산 김씨 일가의 제삿날 풍경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3대가 모인 제삿날, 할머니는 꼬장꼬장한 철학으로 제사 음식 차리기를 지시한다. 할머니의 진두지휘 아래 여자들은 제사 음식을 차리고, 남자들은 방에서 쉬거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 누나의 남편은 아마 두부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임신한 누나는 힘들게 전을 부치고, 엄마는 시어머니(할머니)의 눈치를 보고, 아버지는 이미 취하신 것인지 원래 그러신 것인지 들떠 보인다. 그 순간 관객은 더이상 젊은 세대는 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풍경(혹은 현재 진행형 풍경)을 담아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궁금증에 대답이라도 해주듯 영화 '장손'은 동시대 안에 공존하는 삼 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세대, 아들 세대 등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다만 가족의 삶에 더 깊게 파고들어 부부의 모습, 남매의 모습, 할아버지(할머니)와 손주의 모습, 부자(모자)의 관계, 고모와 장손의 관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아버지와 고모의 관계 등을 보여준다.
단순하고도 복잡하게 얽힌 관계들 속에서 삼 대의 생각 차이는 물론이고 세대의 차이 역시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차이는 단순히 차이에 머물지 않고 이해로 나아간다. 이 영화가 가진 힘이다.
영화에 담긴 배경은 제삿날인 여름,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가을, 그리고 거짓과 진실이 드러나는 겨울이다. 영화는 흐르는 계절의 풍경을 담담히 담아내지만, 그 배경 속에서 일어나는 가족의 에피소드는 마냥 담담하진 않다. '풉' 웃음이 터질 정도로 유머러스하고, 때론 '억' 소리가 날 정도로 매섭고 격렬하다.
영화엔 세 가지 계절만 담겼다. 그렇다면 영화에 담기지 않은 봄, 장손과 나머지 가족은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관객은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그리고 상당히 긴 시간 할애된 영화의 마지막은 그 질문을 채워주는 대답으로도 작용한다. 그 여백 같은 풍경 뒤로 수많은 생각이 쏟아진다.
'장손'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BS 독립영화상, 오로라미디어상, CGK 촬영상 3개 부문을 휩쓸며 평단과 관객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오정민 감독의 작품으로, 배우 강승호·손숙·우상전·차미경·오만석·안민영·정재은·서현철·김시은·강태우 등이 출연한다. 영화는 오는 9월 11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