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트위터(현재는 X)에 이렇게 써놓았다. 어떤 예술가도 자신의 작품만큼 훌륭하지는 못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통찰이다. 사람들은 예술가가 고매한 인격과 섬세한 감수성을 가졌을 거라 믿는다. 마음을 흔들고 눈물을 뽑아내는 사람이니 생각이 깊고 순수한 사람이리라 예상한다.
하지만 예술가이거나 예술가를 자주 만난 사람이라면 코웃음 칠지 모른다. 예술가가 어떤 족속인줄 아느냐고 반문하며 쓴웃음 지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인간적으로 성숙한 예술가, 품격 있는 예술가, 사려 깊은 예술가가 아주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우리를 감동시키는 작품의 양만큼 매력 있고 성숙한 예술가가 넘치지는 않는다. 예술계에서 뒷담화가 계속 이어지고, 돈을 밝히는 예술가, 무례한 예술가, 이기적인 예술가, 성범죄에 연루된 예술가 얘기를 꾸준히 듣게 되는 이유다. 어쩌면 고 김민기를 존경하는 이유도 그처럼 겸손하고 배려심 넘치는 예술가가 적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예술가에 대해 환상이 있다. 작품과 예술가가 동일할 거라고 보는 환상이 첫 번째이고, 예술가는 대부분 천재일 거라 여기는 환상이 두 번째다. 작품과 예술가가 동일할 거라 믿는 환상은 인격을 도야하고 연마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는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작품이 연습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인격의 산물이라고 믿는 철학은 훌륭한 작품이 예술가 본인이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삶으로 체화한 결과라 여기는 태도로 이어진다. 작품이 예술가의 삶을 그대로 옮긴 거라고 믿는 관념도 꽤 강력하다. 그러다보니 작품에 감동을 받고 나면 작가에게 더 열광한다. 예술가를 만나려 할 뿐 아니라, 작품의 주인공과 등장인물, 화자 등에서 작가의 모습을 찾으려 한다. 이들은 작품 속에 어떤 식으로든 작가의 훌륭한 삶이나 남다른 삶의 비밀이 반영되었을 거라 믿는다. 예술가의 상처와 결핍, 욕망과 좌절, 인격과 철학이 작품 속에 투영된다고 믿는 이들은 예술가의 삶을 알려하고 삶과 작품을 연결해서 해석한다.
물론 예술가와 작품을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시리즈를 비롯한 일부 작품은 작가의 삶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작품이 작가의 삶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어떤 예술 작품은 자전적인 이야기지만, 더 많은 작품은 은유와 상징, 역전과 왜곡을 통해 탄생한다. 작가는 단지 은유와 상징, 역전과 왜곡의 창작에 능한 사람일 뿐일 수 있다. 인격이 개차반이어도 작품을 제대로 만드는 방식만큼은 잘 알고 있으며, 그 노력만큼은 엄격하게 수행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게다가 자신을 바꾸는 일은 세상을 바꾸는 일만큼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니 자신을 바꾸는 일보다 작품을 잘 만드는 편이 더 쉬운 이들이 많지 않을까. 그런데 요즘에는 예전처럼 예술가의 비행과 잘못을 낭만적으로 포용하고 용인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가 비행과 잘못을 저지를 경우 예술가는 공인이라는 인식으로 더 냉정한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예술가의 비행과 잘못이 낭만화 되는 세상(특히 남성 예술가에게만 관대한 세상)도 문제이지만, 예술가이기 때문에 더 냉정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현실 역시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분명 개인주의가 대세가 된 세상인데, 왜 예술가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 작품과 분리되어 존중받지 못할까. 예술가는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니 더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할까. 그만큼 예술가의 작품과 예술가는 분리 불가능한 일체여야 할까. 예술가는 반드시 자신의 작품만큼 아름다운 사람이어야 할까. 그래야 좋은 작품을 창조할 수 있을까.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만큼 삶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까.
예술가는 잘못을 저질러도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 누구나 자신의 삶과 인격을 다듬고 고쳐 나가야 하고, 우리는 모두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지만, 어떤 예술가도 자신의 작품만큼 훌륭한 삶을 살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예술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직시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차이와 간극을 만난다고 예술가에 대해 실망하거나 냉소할 필요는 없다. 내가 예술가를 만나보니 이렇더라며 뒷담화하는 일은 소셜미디어 시대에도 구태의연한 호사가의 모습일 뿐이다. 오히려 그 차이와 간극을 통해 인간과 예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술가의 실제 삶과 작품의 차이는 윤리적 판단으로 종지부를 찍는 마침표가 아니라 질문의 시작이 되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는 왜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연결하려 하는지. 어떤 태도가 더 사려 깊고 올바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