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원들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OUT 말하기 대회를 하고 있다. 2024.08.30 ⓒ뉴시스
“내가 죽으면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보겠구나. 내가 지금 아픈 건 상관없지만, 최소한 저승에 가서는 다른 사람들이 내 영상 보는 걸 보면서 안 아팠으면 좋겠다. 죽어서까지 안 힘들었으면 좋겠다.”
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여가위)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현안질의’에서 한 피해자의 절망적인 심경이 전해졌다. 이 절규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피해자의 지인이 “목소리 낼 곳이 없다”며 국회에서 꼭 얘기해달라는 당부와 함께 전해온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의원은 현안질의에 참석한 정부 부처 관계자들에게 “무거운 마음으로 책임감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현안질의에는 여성가족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법무부, 경찰청 등 관련 부처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충격적인 실태가 드러나면서 각 부처는 ‘강력 대응’을 공언하며 대책을 발표했다.
여가부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를 통한 성적 허위영상물 등 유포 현황 모니터링 및 삭제 지원을, 교육부는 교육 분야 신고센터 기능 강화 및 학생·교직원 피해 현황 정기 조사를, 과기부는 국제협력 강화를, 법무부는 디지털 성범죄 처벌 확대 및 강화를 위한 법 개정 추진을, 경찰청은 집중 수사를 각각 대표적인 대책으로 국회에 보고했다. 하지만 정작 현안질의에서 확인된 건 수사기관의 미온적인 태도와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었다.
일선 경찰은 피해자에게 ‘증거 직접 가져오라’ 책임 떠넘겨, ‘디지털 성범죄 수사 매뉴얼 있나’ 기본적 질문에도 답 못한 경찰 간부
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김병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국장에게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된 수사, 피해자 보호, 이후 처리 절차 매뉴얼이 있느냐”고 물었다.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확인해 신고하더라도, 수사기관이 제대로 된 안내도 하지 않은 채 피해자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증언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장 의원은 “피해자분이 증거를 가지고 경찰에 찾아가 신고를 하려고 했더니, 경찰이 ‘자기도 뉴스는 봤는데 접수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컴퓨터로 찾아봤다고 하더라. 답답한 피해자가 ‘본청에서도 접수를 받는데 거기로 가야 하냐’고 물으니, ‘저보다 잘 아신다. 거기로 가셔라’라고 답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었다. 장 의원은 “겹지인 방에서 자신의 사진이 유포된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했더니, 증거를 직접 가져오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포렌식 요청에도 ‘사이버 범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기에 직접 증거를 찾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데, 저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피해자한테 피해 사진을 요구하고, 본인 몸이 맞느냐는 등의 질문을 해서 수치심을 느끼는 일이 당장 지난주에도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경찰은 수사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는데, 일선에서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대혼란에만 빠져 있는게 아닌지 걱정이 된다”며 “관련된 매뉴얼이 있으면 보고해달라”고 요구했다.
김 국장은 “일반적인 수사 매뉴얼은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장 의원의 질문 차례가 돌아오자 “아까 답변을 못 한 부분이 사이버 성폭력 수사 매뉴얼이 있다. 2022년 개정한 게 있고, 필요하다면 보고드리겠다”며 뒤늦게 답변을 바로 잡았다.
여전히 소극적인 경찰의 수사 의지, “가해자들이 안심할 듯” 비판도
김병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국장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4.9.4 ⓒ뉴스1
같은 당 서영교 의원은 언론에서 널리 보도된 일명 ‘여군 능욕방’ 사례를 언급하며 “언론에 (텔레그램 방에 대한) 사진이 나왔으니 추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해주겠느냐”고 물었다.
김 국장은 “저 부분은 저희들도 체크를 해봤는데, 피해자나 이런 분들이 제보나 신고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없다”고 답했다.
서 의원은 “그러면 언론 보도를 한 분을 찾아가야 하지 않느냐. 어떻게 이걸 보게 됐는지, 남은 흔적들은 없는지 확인해야지, 피해자가 연락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질타했다.
그러자, 김 국장은 “국방부 부분은 제보자는 만났지만, 단서가 없다고 해서 저희가 수사 착수를 못 하고 있다”고 부연했고, 서 의원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장철민 의원도 경찰의 태도를 질타했다. 장 의원은 “딥페이크 범죄를 위축시키기 위한 핵심은 가해자들이 불안해해야 하는 것이다. 경찰에 의해, 우리 국가기관에 의해 내 범죄 행위가 반드시 드러날 것이라고 불안해져야 하지 않나”라며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경찰의 태도나 오늘 이 회의 중에도 가해자들이 안심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장 의원은 “수사국장이 군 관련 딥페이크 텔레그램 방을 수사 못하다고 하셨는데, 그 대화방에서 가해 행위를 했던 모든 분들께서 국장님의 말씀을 듣고 다 안심했을 것”이라며 “경찰청 수사국장이 우리의 가해행위를 안심해도 된다고 확인해 줬다고 하지 않겠나. 정말 적극적으로 수사하다면, 이 범죄자들을 완전히 다 소탕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으면 그런 얘기 못 한다”라고 직격했다.
장철민 의원실이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텔레그램이 수사 협조에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사 협조 요청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 의원이 경찰청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구글, 메타, 엑스 등 해외 IT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한 수사 협조 요청 건수는 연평균 9천865건에 달했고 회신율도 83.4%로 높았다. 하지만 텔레그램에 대한 수사 협조는 연간 고작 20여건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된다.
피해 구제 대책도 제대로 고민 않는 정부
피해자들이 가장 바라는 건 피해 영상물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삭제하는 것이다. 텔레그램은 그간 우리 정부 기관의 딥페이크 성범죄물 삭제 요청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다. 다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만 전날 회신을 해, 방심위가 삭제 요청한 25건의 영상을 모두 삭제하고 자사와 소통할 전용 이메일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텔레그램 등 해외 플랫폼이 지금처럼 영상 삭제를 거부할 경우, 우리 정부의 대책은 있을까. 민주당 김한규 의원은 여가부 장관 대행인 신영숙 차관에게 “디성센터에서 피해자 1명당 삭제 요청 공문을 보내는 게 1500건이나 된다. 정말 많은 해외 사이트가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이 해외 사이트들이 우리나라의 삭제 요청에 신속히 응하지 않고, 아예 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신 차관은 “피해자 보호가 좀 미흡하다”고만 답했다.
이에 김 의원이 “피해자들은 현재 어떻게 하고 있나. 만약 제 딥페이크 영상이 해외 사이트에 올라가서 디성센터에 삭제를 요청했는데도, 삭제를 안 해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정부는 그런 피해자를 위해 어떻게 해야 되나”라며 “실상은 디지털 장의사를 찾아간다. 그분들이 우리 대신 삭제를 해주고, 최악의 상황은 해킹을 통해 삭제를 한다. 해외 사이트에서 삭제하는 데 건당 10만원, 경우에 따라서는 200만원씩 요청하는 데도 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참담한 현실을 전했다.
그럼에도, 신 차관은 “삭제를 명령할 방법은 없어서 해외 공조를 강화하겠다”며 허무한 답변만 내놨다.
신영숙 여성가족부 장관 직무대행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질의를 듣고 있다. 2024.9.4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