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당초 예정했던 40%까지 낮추지 않고 현재의 42%로 유지하는 내용의 국민연금 개편안을 내놨다. 지난 21대 국회 막바지에 사실상 합의에 이른 보험료율 13%와 소득대체율 44%와 비교하면 소득대체율을 2%포인트 낮췄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소득대체율과 관련해 "당초(40%)대로 인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21대 국회 논의 내용을 감안해서 42%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정부안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당시 정부는 국회에서 이뤄진 여야 협상을 무시하고 다음 국회에 넘기자는 입장이었고, 이제 정부안을 내놓은 셈이다. 정부가 개편안을 내놓았으니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21대 국회는 사상 처음으로 시민대표단을 구성해 숙의토론 방식으로 의견을 수렴했고, 당시 시민대표단은 충분한 학습과 숙의를 거쳐 소득보장에 방점을 찍은 개편안을 지지한 바 있다. 시민대표단의 의견처럼 국민연금제도의 본질은 국민의 노후생활 지원이다. 물론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보험료율을 올릴 필요는 있고 이를 백안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연금의 지속가능성과 국민의 노후생활 지원을 모두 연금 개편의 목표로 한다면 결국 절충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절충에서 정치인과 관료, 전문가들의 의견만큼이나 국민의 생각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개편안은 한쪽으로 치우쳐있다. 모수 변경 그 자체야 하나의 안으로 보고 국회에서 의논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레 꺼낸 세대별 차등보험료와 자동안정장치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세대별로 보험료 인상 속도를 다르게 적용하겠다는 것인데 그런다고 '보험료를 올리는'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대단한 '지속가능성'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세대간 형평이 아니라 세대간 갈등만 키우는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자동안정장치는 더 문제다. 결국 그때그때 '자동으로' 연금액을 깎겠다는 건데 연금제도의 신뢰성만 더 깎아 먹게 될 것이 뻔하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에 세제혜택을 줘 활성화하겠다는 건 거꾸로 가는 발상이다.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은 국민연금에 비해 가입한 사람이나 급여를 받고 있는 사람이 훨씬 적고 당연히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재벌대기업이 장악한 사적 연금에 줄 세제혜택이 있다면 그 세금을 국민연금에 대한 지원으로 돌리는 게 마땅하다. 목적세를 신설해 국민연금안정화기금을 조성하자는 제안도 이미 나와있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고 하지만 한국 노인의 빈곤율은 40.4%로 OECD 평균의 3배에 이른다. 노인의 절반이 가난한데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서 세대간 갈등이나 형평성을 논할 수 없다. 우리사회의 청년들이 그렇게 이기적일 리도 없거니와 그런 사회는 청년들에게도 결코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미래세대를 볼모로 국민연금제도의 본질을 훼손하고 사적 연금 시장을 키우려 한다면 미래세대를 포함한 모두의 저항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