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부족해 야간, 휴일 응급 진료를 중단하거나 진료를 제한하는 병원이 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관리 가능하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악화되는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윤석열 대통령이 야간에 응급실에 방문했지만, “헌신하는 의료진에게 늘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는 립서비스만 했을 뿐 특단의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밤 경기도의 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해 의료진의 의견을 청취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의료공백 우려에 대한 질문에 “의료현장을 한번 가보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며 ‘문제 없다’는 취지로 말해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의 현실인식이 심각할 정도로 안이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기존 정부 입장 외에 이렇다 할 대책은커녕 ‘립서비스’만 하고 왔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응급의료가 필수 의료 중에 가장 핵심인데 국가에서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도와드리지 못한 것 같아 참 안타깝다”면서 “응급실 의료진에 대한 보상이 공정하지 못한 점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응급실을 지켰던 전공의들이 현장을 떠나 발생한 응급실 축소, 진료 중단 사태가 ‘공정하지 못한 보상’ 때문인가.
윤 대통령은 “응급실 수요가 많아지는 명절 연휴가 다가오고 있는데 가용한 자원을 가장 우선적으로 투입해서 의사선생님들이 번아웃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이날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250여명을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병원에 투입해 진료 차질을 최소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정부가 파견하는 인력 중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고작 8명에 불과하다. 현장 경험도 부족한데다 응급·중증환자 진료에 곧바로 투입할 수도 없는 인력을 지원하는 것이 정부 대책의 핵심인 것이다. 현장은 이미 ‘번아웃’ 상태에 접어들었다. ‘의사 돌려막기’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다면, 적어도 ‘문닫는’ 응급실 상황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들고 갔어야 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여야와 의료계, 정부가 참여하는 ‘여야의정 비상협의체’를 구성해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내자고 제안했다. 이재명 대표도 고려대 안암병원 응급센터를 방문해 같은 입장을 확인했다.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응급실 붕괴’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도 정책은 옳다’고 버티기엔 국민들 사이에 커지는 ‘의료 대란’의 공포가 심각한 수준이다. 응급실을 찾아 ‘립서비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대통령과 정부가 결단하고 하루라도 빨리 대화에 나서 현실에 벌어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