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배부르고 춥지 않은 사회를 위하여

영화와 연극이 그리고 있는 ‘노동지도’에 관하여

영화 '문경' ⓒ영화 '문경' 스틸컷 이미지

노동은 영화에서든 연극에서든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영화나 공연이 노동을 소재로 하지 않더라도, 우리 삶에서 그리고 우리 삶을 담은 작품 속에서 노동을 빼 놓을 수 없다. 최근 관객을 만난(혹은 만나는 중인) 공연과 영화에서도 노동의 향기가 진동을 한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 김현탁 연출가가 연출을 맡은 연극 '알바의집, 배로나르다', 윤미현 작가의 '텃밭킬러', 영화 '문경' 등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은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의 노동 지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문경'에선 주인공 문경이 직장 업무와 인간 관계에서 번아웃을 느낀다. 문경의 후배 초월은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성공시킨 장본인임에도 정규직 전환이 안 돼 결국 회사를 떠난다. 동료는 초월이가 회사를 곧 떠나게 될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청첩장도 주지 않는다. '한국이 싫어서' 속 주인공 계나는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라고 느끼다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결심한다.

'텃밭킬러'에 나오는 청년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할머니에게 기생하며 산다. 또, 청년과 함께 사는 아가씨는 치킨집에서 일하지만 장사가 잘 안돼서 치킨을 월급으로 받는다. '알바의집, 배로나르다'에선 대한민국의 웬만한 알바들은 거의 다 나온다.

영화와 연극 속 주인공들의 직업은 모두 다르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된 정서는 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언제든 다른 대체제로 갈아 끼워질 수 있는 부품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정서는 젊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무기력이다.

실제 취업 의지가 없는 20대 '니트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일에 대해 무기력을 느끼고, 아예 포기해 버리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좋은 정규직 자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힘들게 대학을 나와도 취업에 손을 놓고 무기력에 빠지는 이유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의 결말은 모두 다르다. 어떤 작품은 암울하고, 어떤 작품은 희망적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노동 지도가 비뚤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제대로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없다. 또 존엄성이 내던져 있다. 결국 문경이는 문경으로, 계나는 뉴질랜드로 간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에 나오는 계나와 대학동기 경윤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계나는 배부르고 춥지만 않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고, 경윤은 집에 해가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거창한 바람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바람이다. 우리 사회가 그런 기본적인 권리와 일할 권리를 주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볼 일이다. 아직도 험상궂은 노동의 얼굴을 담은 작품이 쏟아진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건강한 노동지도를 장착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으니 말이다. '

영화 '한국이 싫어서'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

연극 '알바의집, 배로나르다' ⓒ성북동

윤미현 희곡집1에는 '텃밭킬러', '평상', '경복궁에서 만난 빨간 여자' 등이 수록되었다. ⓒ연극과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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