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주거권 실현을 위해 전세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세제도로 인해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역전세 등의 폐해가 잇따르고 있는 만큼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선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전세제도 개혁 방안으로는 전세대출 원금과 이자 상환 의무 분리를 제안했다. 전세대출 원금에 대한 책임은 임대인이, 이자는 세입자가 책임지는 식이다. 이외에도 전세가율을 제한해 깡통전세와 역전세를 예방해야 한다거나 전세의 물권화를 통해 전세계약시 전세권 설정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문진석·전용기 의원과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 진보당 윤종오, 참여연대 등은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세제도 개혁 정책토론회’를 열고 전세제도의 운영 현황과 문제점, 개혁 방향 등에 대해 논의했다.
“전세대출 원금·이자 상환 의무 분리해야”
먼저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제도가 사적 영역에서 이뤄지는 사금융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짚었다. 임대차계약에서 발생하는 당사자간 갈등과 분쟁은 임대인과 임차인, 금융 관점에서 차주와 대주 관계에서 권력과 정보의 불균형이 핵심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임 교수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문제는 모두 임대인과 임차인간 불균형,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전세 관련 제도가 표면적으로는 임대차계약에서 상대적 약자인 임대인을 지원하거나 보호하려는 취지와 목적을 지는 것으로 표방되지만, 부담능력을 넘는 전세 수요 확대, 대출기관과 보증기관의 도덕적 해이, 무자본 내지 소자본 갭투기 성행 등 전세 관련 문제를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또 전세보증금의 약 17% 이상이 전세대출을 통해 조달되는 등 주택의 금융화가 심각하다는 점도 짚었다. 임 교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대위변제액이 2023년 4.5조원에 달한다”며 전세 대출과 보증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임차인이 대출을 받아 이자를 상환하고 이를 임대인이 투자자금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세제도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임 교수는 “(전세제도가)명목상 세입자에게 ‘저렴한 주거방안’처럼 보이나 사실은 전세 수요가 높아질수록 전세가가 상승하고, 그에 따라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부작용이 있다”면서 “정작 집값이 하락했을 때 발생하는 보증금 미반환의 리스크는 오로지 세입자에게 전가된다”고도 했다.
이처럼 전세제도로 불거지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개혁 방안으로는 전세대출에 대한 원금과 이자 상환 의무를 분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세대출 원금에 대한 책임은 임대인이, 이자 책임은 세입자가 지도록 하는 식이다.
임 교수는 “전세자금대출상품의 원금상환과 이자지급 의무를 분리하는 새로운 상품 구조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원금상환 의무와 이자지급 의무를 각각 임대인과 임차인에 분리되는 성격의 대출”이라며 “이 경우 만약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아 임차인이 전세보증금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임대주택을 매각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는 것”고 강조했다.
전세를 물권화해 전세계약시 전세권 설정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전세권 설정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으나, 전세권 설정과 같은 물권적 효력을 주택임대보호법과 같은 특별법에서 인정하면 된다는 게 임 교수의 설명이다.
임 교수는 “전세권을 설정하면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을 때 전세권에 기해 임차인은 법원에 임의경매를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근 변호사, 전세가 제한·공공주택 전세 확충 등 제안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태근 법무법인 융평 변호사는 “수도권 인구 밀집, 금리 급락·급등에 따른 주택 가격 불안정 등으로 세입자들의 주거 불안은 심화되었다”며 지역·자산에 따른 양극화가 전세사기 문제에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세가 본질적으로 임대인에 대한 무이자 대출인 만큼 주택 가격이 상승했을 때 임대인의 LTV(주택담보대출비율), DSR(총부채원리금 상환비율)과 같은 금융규제를 회피하는 역할을 하고, 주택 가격의 버블을 확대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한국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태근 변호사는 “전세제도를 직접 제한할 경우 도시 중심의 주택 월세 폭등 등 청년 세입자의 주거비가 급등할 수 있다”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전세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전세금을 주택의 공시가격(시세의 60~70%) 이하로 제한 ▲20년 장기전세주택 등 공공주택 전세 확충 ▲민간임대사업자의 보증보험가입 의무 위반 시 형사처벌 조항 규정 ▲임대사업자가 아니더라도 5억원 이하 전세계약에 대한 보증보험 가입 의무화 ▲세입자의 전세보증금보증보험 가입 의무화 등을 제안했다.
더불어 전세사기에 대한 형사처벌 및 범죄수익 몰수·추징 강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지역균형 회복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세입자를 위한 전세제도 개혁방안은 토지에 바탕을 둔 주거의 문제이면서 금융의 문제다. 한국의 수도권 중심으로 인한 주택 투기수요는 여전하다. 금리 인하시 전세급등으로 인한 주택 가격 급등 부작용 발생 우려가 매우 높다”면서 “정부가 전세대출을 통해 임대주택 공급을 장려하고 있고, 세입자 또한 저리 전세대출을 통해 월세보다 만족도가 높은 상황이다. 현행 전세제도의 개혁은 순차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고종완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전세는 월세에 비해 주거비 부담이 낮고 주거사다리 기능을 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동시에 임대인-임차인간 불균형 관계에서 오는 단점이 공존한다”며 “인위적으로 전세를 폐지하고 월세화하는 방안은 주거안정과 복지 추구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전세대출한도 제한’과 ‘3단계 스트레스 DSR 강화’ 대책에 대해 “고가 전세에만 적용, 다주택자 세금 및 금융규제 강화 등 금융 측면에서의 개혁이 필요하다”며 “모든 전세계약에 대한 반환보증 의무화, 안심전세 체크리스트 등 공인중개사 설명의무 강화, 전세 애스크로 제도 도입 검토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대표해 참석한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전국 피해자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세입자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보증금 미반환으로 인한 손실이 커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세가율과 보증한도를 시세의 60~70%로 제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임대인이 보증금반환보증을 의무로 가입하도록 하고 다양한 전세사기 유형을 포괄할 수 있는 전세사기처벌법 제정, 주택가격 안정화를 통한 주거비 부담 완화 등이 기반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