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쿠팡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연이어 심정지, 뇌출혈 등 과로사 증상으로 사망하자 택배노동자와 유족들이 쿠팡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는 9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는 쿠팡에 대한 국토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합동 청문회 실시하고 진상을 규명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쿠팡 시흥2캠프에서는 지난달 일주일 간격으로 노동자들이 심정지로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18일 새벽에는 해당 캠프에서 야간에 분류작업을 하던 김 모 씨(49)가 심정지로 쓰러져 구급차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당시 프레시백을 정리하는 일을 하던 김 씨는 같은 곳에서 일하던 부인에게 '프레시백이 너무 많이 빨리 나와 속도 맞추기가 힘들다'며 호소하고 10분 뒤에 쓰러졌다.
일주일 뒤인 지난달 26일 심야에도 같은 시흥2캠프에서 50대 남성 노동자가 심정지로 쓰러졌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에서 119 신고내역 및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산지청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당시 119 응급차가 출동해 심장충격기 제세동, 기도기 삽입 등 응급처치를 해 다행히 쓰러진 50대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쿠팡에서는 사망한 김 씨 이전에도 로켓배송을 위해 분류, 배송 업무를 하던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군포에서 쿠팡 로켓배송을 하던 택배노동자가 새벽에 배송 도중 숨졌다. 올해에는 지난 5월 28일 쿠팡 로켓배송을 위해 새벽 택배를 하던 고(故) 정슬기 씨가 자택에서 쓰러져 숨졌다. 지난 7월 18일에는 제주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분류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숨졌고, 같은 날 제주에서 새벽배송을 하던 쿠팡 택배노동자가 배송 중 뇌출혈로 숨졌다. 모두 심정지, 뇌출혈 등 과로사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사망했다.
노동자뿐 아니라 대리점 소장이 사망하는 사고도 벌어졌다. 'MBC' 보도에 따르면, 지난 8월 1일 청주에서는 배송과 함께 설치도 해주는 '로켓설치' 대리점의 소장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다. 사망한 대리점 소장은 밤 12시까지 주문받은 물건을 다음날까지 모두 설치해야 하는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설치·배송 물량은 늘어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기사를 모집하기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스트레스를 동료들에게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로사대책위는 "이러한 비극들에 공통으로 놓여있는 것은, 바로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일체의 고려 없이, 오직 배송 속도만을 위해 설계된 쿠팡의 업무시스템, 편리하지만 사람잡는 쿠팡의 로켓배송"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강요하기 위해, 쿠팡은 계약기간 중에도 언제든 해고를 하거나 구역을 빼앗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계약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실정법에 위반됨에도 국토부와 노동부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사건들은 쿠팡의 로켓 배송이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쿠팡의 무분별한 배송 속도 강요에 대한 공적 규제가 필요함을, 이를 위한 청문회가 필요함을 다시금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로켓설치'의 경우 택배사업자가 할 수 없는 설치 업무까지 하고 있어 관련 법인 '생활물류법'과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생활물류법은 제2조에서 '택배서비스사업'에 대해 '허가받은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을 위한 화물자동차를 이용해 집화, 분류 등의 과정을 거쳐 화물을 배송하는 사업'이라 규정하고 있다. 또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제21조는 '허가를 받은 자는 집화·배송 외의 운송을 하지 말 것'이라고 정하고 있다. 즉, 택배사업자와 택배용 화물차는 집화·배송 외의 일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것이다.
대책위는 "쿠팡CLS가 택배사업자로 등록해 '배' 번호판 차량(택배전용 화물차량)을 확보한 뒤, 택배 차량이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설치 업무까지 운영하고 있음이 확인됐다"면서 "과연 '법꾸라지' 쿠팡 답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문제 역시 국토위환노위 합동청문회를 통해 진상이 확인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더 늦기 전에 편리하지만 사람 잡는 쿠팡의 로켓배송에 대한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 정슬기 씨의 아버지 정금석 씨는 "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손자의 친구들이 '너의 아빠는 로켓배송의 연료가 되었다'고 한 말이 다시 생각난다"면서 "무도한 쿠팡의 참사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쿠팡 청문회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속히 청문회를 열어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온 국민들에게 알리고, 진상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민욱 전국택배노조 쿠팡본부 준비위원장은 "문제의 핵심은 쿠팡의 노동환경과 산재사고들이 전부 제대로 확인되지 못하고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라며 "지난달 26일의 사고에 경우, 과로사대책위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우연히 확인하고, 이를 장혜경 의원실을 통해 확인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강 준비위원장은 "쿠팡에 대한 국회 환노위 국토위 합동 청문회가 절실한 이유"라며 "대응이 늦어질수록 유족과 산재당사자들의 피해와 고통은 점점 커질 뿐이다. 국회에 9월 중으로 쿠팡에 대한 국토위 환노위 합동 청문회를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쿠팡은 잇따른 노동자들의 사망에 대해 로켓배송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쿠팡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사망한 노동자들이 고강도·장시간 노동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악의적인 허위 주장"아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사망한 '로켓설치' 대리점 소장에 대해서는 "고인의 사망과 설치기사 문제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인적 사유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라고 반박하면서 이를 보도한 MBC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신고 및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