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AI디지털교과서의 실체(2) 가성비 최악의 교과서

돈 쓸 곳이 그렇게 없습니까?

“모든 학생들에게 태블릿PC를 1대씩 제공할테니, 전체 학생 명단을 제출하세요.”

몇 해 전 초등학교 정보 담당 교사였던 나는 뜬금없이 교육청에 학생 명단을 제출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유인즉슨, 모든 학생들에게 태블릿PC를 1대씩 배부하기 위해 명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공문을 보고 나는 두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하나는 ‘왜 묻지도 않고 사줄까’였고, 다른 하나는 ‘프린터 먼저 사주면 안 될까’였다. 전자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정작 교사나 학생에게 묻지도 않은 교육청에 대한 반발심이었고, 후자는 예산 사용에 대한 우선순위가 잘못되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사실 학생 모두에게 태블릿PC를 배부하여 학습을 지원한다는 취지 자체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 당시 우리 학교에는 학습 목적으로 활용할 태블릿PC가 부족하지도 않았었고, 태블릿PC 말고도 돈을 써야 할 곳이 넘쳐났다는 점이었다. 당시 근무하던 학교에는 양면인쇄나 컬러프린트가 가능한 프린터가 교무실과 행정실 밖에 없었는데, 각 교실에서 교육자료를 인쇄하기 위해 교무실과 행정실까지 동분서주했어야 했다. 프린터 같은 기본적인 교육 기자재조차 갖춰지지 않은 학교에서, 전체 학생들에게 태블릿PC를 배부한다고 갑자기 교육 여건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태블릿PC는 교육청의 대대적인 예산 지원을 통해 속전속결로 전체 학생들에게 배부되었다. 그리고 양면‧컬러프린트가 가능한 프린터는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뒤, 학교 자체 재정을 아끼고 아껴 예산을 마련한 끝에, 딱 1대 추가로 구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배부된 1인 1태블릿PC는 저학년 교실에서는 애물단지가 되었고, 프린터는 선생님들이 아침 시간마다 줄을 설 정도로 인기 있는 기자재가 되었다.

태블릿PC ⓒpixabay

AI디지털교과서의 가성비

이 ‘애물단지가 된 태블릿PC’ 이야기의 교훈은 교육 예산을 사용한다면 그만큼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학교 현장 구성원들이 체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된 교육 예산의 효과가 결국 교사, 학생, 학부모에게 체감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산을 사용하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다. 돈을 써놓고도 그만한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을 낭비하는 것 아닌가?

이 교훈은 AI디지털교과서에도 적용된다. 여러 쟁점 사항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지만, 사실 AI디지털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한 가지 주제로 압축된다. 바로 ‘AI디지털교과서가 투입된 예산만큼의 가성비를 뽑을 수 있는 기자재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AI디지털교과서의 가격은 교육부·시도교육청이 각각 산출한 구독료를 기준으로 협상을 통해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부 업체들은 학생 1인당 월 8,000원(연 96,000원)을 희망하고 있으며 교육청은 학생 1인당 월 5,000원(연 60,000원)을 바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 수를 기준으로 추계해보면, AI디지털교과서 구독 관련 비용은 2025년 최소 1,851억 원에서 최대 4,092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2028년 AI 디지털교과서가 전체 학년을 대상으로 전면 도입된다면 최소 6,143억 원에서 최대 2조 5,558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난해 교과서 지원 사업으로 지출한 금액이 4,680억 원(2022 회계연도 결산 기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AI디지털교과서 전면 도입 시점을 기준으로 각 시도교육청의 교과서 구매 총비용은 최소 2.3배에서 최대 6.5배까지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연간 5,000억 원, 3년간 총사업비 1조 5,0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AI디지털교과서는 기존 교과서 대비 2.3배~6.5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그 효과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학교 현장 구성원이 체감하는 가성비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그 효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교육부가 발표한 계획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만약 효과가 없다면 누가 책임을 지는 것인지도 나온 바 없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교육부의 답변은, ‘세계 최초의 시도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고, 개선해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AI디지털교과서의 정확한 효과는 아직 알 수 없으니, 일단 학교에서 실험해보겠다는 뜻이다.

실험장으로 전락한 학교

“우리 학교와 대학들이 에듀테크 기업들에게 테스트베드(실험장)을 제공해야 한다”

이 충격적인 발언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021년 한국에듀테크산업협회가 개최한 정기총회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물론 교육부 장관이 되기 직전에 한 발언이지만, 이러한 생각은 아직도 유효한 듯하다. AI디지털교과서를 비롯한 윤석열 정부 디지털교육 정책의 철학과 관점이 전부 이 발언 안에 담겨있다. 정부는 왜 학교를 에듀테크 실험장으로 사용하려 할까? 왜 충분히 검증하고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급박하게 각종 반발을 무릅쓰고 AI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려 할까? 이 질문의 답은 결국 돈에서 찾을 수 있다.

에듀테크는 더 이상 학교와 교육에 한정된 국소 산업이 아니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구글, 네이버 등 유수의 빅테크 기업들은 비대면 교육활동 지원을 표방하며 학습뿐만 아니라 교육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 산업 시장에 뛰어들었고, 팬데믹 속에서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소통 창구였던 줌(ZOOM)은 거침없이 사업 영역을 확장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마디로, 에듀테크는 돈이 됐다.

그러나 각국 정부가 코로나 종식을 선언하고 ‘비대면 사회에서 대면 사회로의 회귀’를 추진하면서, 에듀테크 기업들은 일순간 성장 동력을 잃게 된다. 코로나 기간 이어졌던 오랜 비대면 교육활동에 대한 반동으로, 학교 현장에서 에듀테크에 대한 수요가 비교적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 2023년 Chat GPT의 등장은 AI 활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에듀테크 산업계에도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당시 교육공학 관련 학술지에 등재된 논문의 주제로 Chat GPT와 AI가 들어가지 않은 경우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각 대학 관련 학과 이름들마저 온통 AI 관련 학과로 바뀔 만큼 대단한 열풍이었다.

그러나 Chat GPT가 자동으로 작성해준 글을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것처럼 학습 과제로 제출하는 등, 악용 사례가 알려지면서 찬물이 끼얹어졌다. AI의 교육적 활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미국 일부 주에서는 실제로 생성형 AI의 교육적 활용을 규제하는 규칙까지 제정했다.

간만에 호재를 만났던 에듀테크 산업계는 위기의식에 빠졌고, 각국 정부에 에듀테크 산업 및 AI 활용 교육에 대한 지원과 공적 자금 투입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육부는 그러한 산업계의 요구에 응답하듯 갑작스레 AI디지털교과서 전면 도입을 선언하고 개발사들에 대한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입버릇처럼 ‘기업 요구에 부합하는 교육 정책’을 지시했다는 것을 비춰보면, 교육적 효과는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은 AI디지털교과서 도입이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업’을 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AI 디지털교과서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도입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해야


한편 초기 AI 디지털교과서는 교육활동 데이터가 부족하여 질적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능 향상을 위해서는 일정 기간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이는 AI디지털교과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재정과 학습데이터가 민간 개발사에 제공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교육부는 이미 지난 5월 성적 등 학습데이터를 민간기업과 연구자들에게 전면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공교육에 투입해야 할 공적 자금을 퍼붓는 것으로도 모자라, 학습데이터까지 민간기업에 전면 제공하고, 데이터 관리를 비롯한 교과서 시스템 운영의 주도권을 민간기업에게 넘겨주겠다는 계획은 지나치게 위험하다.

이미 학생들의 학습데이터의 완전한 비식별 처리와 원천적인 정보 유출 차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관련 토론회에서 수차례 입증되었고, AI디지털교과서를 운영하는 민간기업이 학생들의 데이터를 입시 사교육 프로그램에 악용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심지어 이러한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비롯한 126개 단체는 ‘AI디지털교과서 중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구성하고, 9월 6일부터 범국민 서명 운동에 돌입했다. 공대위의 주요한 요구는 AI디지털교과서에 대한 무작정 반대가 아닌, 현재 제기되고 있는 합리적인 우려들에 대해 교육부가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업 재검토에 착수하는 것이다. 도입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효과도 없는 사업에 지나치게 막대한 예산을 낭비했다는 혹평을 듣는 것보다는, 충분한 검토를 거치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수많은 시민사회단체가 나서기 시작했지만, 막을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교육부는 이미 8월부터 검정 절차에 착수했고, 늦어도 올해 안으로 각 학교에서 AI디지털교과서를 채택하도록, 검증되지도 않은 AI디지털교과서 개발을 강행할 것이다.

이제 국회가 답할 시간이다. 마침 정기국회가 시작되었고, 곧 국정감사 일정이 다가온다. 국회는 청문회와 국정감사를 통해 ▲AI디지털교과서의 교육 효과에 대한 검증 미흡, ▲학생의 학습데이터 등 개인정보 보호 체계 미비, ▲민간기업에 대한 과도한 교육재정 투입, ▲인지 중심 학습에 치우친 기능으로 사교육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등 정책 추진 전반에 걸쳐 제기된 우려를 점검하고 교육부의 정책 강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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