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은행 대출 정책과 관련한 오락가락한 발언들에 대해 사과했다. 이 원장은 "가계대출 급증세와 관련해 세밀하게 입장과 메시지를 내지 못한 부분, 국민이나 은행 창구 직원에게 불편과 어려움을 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대출금리 인상을 비판했다가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자 이번엔 실수요자 피해를 지적하면서 생긴 혼란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이 원장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의 주택 대출 관련한 정책이 제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집값이 예상외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가계의 대출 규모도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수요자'에 대해선 규제를 풀겠다고 하지만 투기적 수요와 실수요를 정확하게 가르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원장이 '오락가락'한 건 현 정부 정책이 근본적 기조를 명확히 하지 않고 대증요법 수준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실수라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윤석열 정부가 '준비 없는' 정책을 내놓은 건 그밖에도 많다. 당장 의대 정원 확대만 해도, 뻔히 예견되는 의료계의 반발을 과소평가했다. 지난 달 29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이주호 교육부총리는 '6개월만 버티면 이긴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그 이후 발언을 주워담았지만 속내를 모를 일은 아니었다.
2026년도 의대 정원 문제를 놓고 여당과 정부가 부딪히는 것도 못 볼 꼴이다. 이런 정도도 미리 의논하고 준비할 수 없는 정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결국 정부가 한 발 물러나 여야의정 협의체를 만들기로 했지만 의료계가 협의에 참여할 지도 알 수 없다. 협의체를 만드는 것조차 사전에 준비한 흔적이 없다.
이해관계자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정책을 잡음없이 추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잘 준비해야 한다. 일단 '질러' 놓고 반발이 일어나면 철회하는 행태가 반복되면 누구도 정부 정책을 믿지 않을 것이다. 야당의 비협조를 탓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회 다수당의 협조를 얻는 건 정부의 역할이다. 대통령부터 나서서 야당과 전쟁을 치르듯 하면서, 뒤돌아서서 협조를 요청하니 이뤄질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