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부동산 등기부에 임차권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다만 이에 따라 발생할 각종 절차의 번거로움을 해소하는 방안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전세사기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를 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대한법무사협회는 “또 어느 곳에서 전세사기 뇌관이 터질지 모른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2022년 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로부터 시작해 경기 수원시, 서울 강서구, 경기 화성시 동탄, 부산, 대전, 전북 완주군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전세사기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오늘, 내일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전세사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제도 개선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 보호에 기여하고 있으나, 법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등기’ 대신 ‘거주’를 임대차의 공시방법으로 설정함에 따라 임차권 공시의 형태가 불완전해 여러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전세제도가 존재하는 한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는 상존하며 이 리스크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월세 거래의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전세사기 발생 가능성을 사전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임차권설정등기 의무화의 필요성을 강변했다.
“현행 임대차 공시방법은 불완전... 임차권설정등기 의무화해야”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김천일 강남대 부동산건설학부 교수는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한 임대차의 공시방법은 불완전한 방법이다. 공시 내용을 외부에서 파악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깜깜이 공시’”라며 “임차권설정등기를 의무화하면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고 임대차 권리와 관련된 제3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주민등록을 임차권의 공시방법으로 정해 임차인의 대항력을 인정한다. 하지만 주민등록을 통해야만 이미 발생한 권리관계를 타인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즉 주민등록이 공시 방법이기 때문에 기존 임차인과 관련 없는 신규 임차인과 같은 잠재적 이해관계자들은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주민등록표 열람이 어려워 임대차 계약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임차권과 관련된 정보원이 부동산등기부, 실소재지, 주민등록지, 확정일자부 등으로 흩어져 있어 외부 이해관계자가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정보를 담은 원천이 여러 곳에 흩어져 존재하는 특성으로 인해 외부의 이해관계자들이 권리관계를 파악하기 힘들거나 파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현행 공시 방법은 불완전한 형태”라고 강조했다. 흩어져 있는 임대차계약 정보에 손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라도 임차권을 부동산등기부로 일원화해 공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에 이어 발제에 나선 정경국 대한법무사협회 전문위원도 “일반인이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주택임차권에 관한 내용을 정확하게 공시해 전세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는 등기부를 통한 공시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행 주택임차권 공시제도의 실무상 문제점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우선 대항요건(주택의 점유와 전입)이 불완전한 공시라는 점을 짚었다. 전세피해 등의 예측이 불가능하며, 대항력을 빈번하게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등기부등본상 공시돼 있지 않은 임차권에 관한 사항인 점유 및 전입 일자, 확정일자 부여일, 차임 및 보증금, 임대차 기간 등을 쉽게 알 수 없어 전세사기 피해 등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임차인이 대항력을 행사하려면 대항요건인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법상에 따른 전입을 모두 갖춰야 한다. 하지만 보증금을 전부 반환받지 못한 임차인이 전입을 유지한 채 퇴거해 새로운 임차인이 거주와 전입 후 임차권등기명령에 따른 임차권 등기를 마치면, 퇴거로 인해 대항력이 상실돼 새로운 임차인보다 후순위권자가 돼버리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확정일자에 대한 문제도 언급했다. 불완전한 대항요건을 전제로 확정일자에 우선변제권을 부여하는 그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또 불완전한 공시이나마 그 대항요건에 기초한 대항력이 상실되면 확정일자를 받아도 우선변제권이 상실된다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임차인이 확정일자에 의한 우선변제권을 행사하려면 그 전제로 대항요건(주택의 점유와 전입)을 우선 갖추어야 한다. 주택 점유와 전입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확정일자를 부여받아도 우선변제권을 취득하지 못한다.
대항력 발생 시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대항력은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모두 마친 그다음 날 0시부터 생기는데, 이를 악용한 사례가 발행한다는 것이다. 실제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모두 마친 당일에 임대인이 근저당권 등 제한물권을 설정하거나 양도해 이해관계에 있는 제3자가 생기는 경우가 발생하는 지적이다.
정 전문위원은 “임대차계약 등 각종 계약체결의 과정에서 보증금 등의 회수 자금을 예측해 임차인은 물론 제3자의 손해를 방지하고 실무상 및 앞선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며 깡통전세를 예방하기 위해 ‘주택임대차등기 의무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임차권설정등기 의무화, 전세사기 직접적인 해결책은 아냐” 반대 의견도
발제 후 이뤄진 토론에서는 임차권설정등기 의무화의 한계점도 지적됐다.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전세사기가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온전히 회수할 수 없다는 점”이라며 “임차권설정등기를 의무화할 경우 법무사의 업역만 확대될 뿐 전세보증금 회수를 가능하게 하는 직접적인 방법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임차권설정등기를 하더라도 전세 주택의 경매 낙찰가가 전세보증금에 미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획득을 위한 시민 불편이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구 소장은 “주택임차권의 공시방법을 일원화해 등기부에 공시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한다”면서도 “주택 점유와 전입이면 간단히 주어지던 대항력이 ‘임차권설정등기’로 바뀌면 임차인이 무척이나 어렵고 힘들어진다”고 우려했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대차계약은 등기가 없어도 임차인이 주택 인도와 주민등록을 완료하면 다음 날부터는 제3자에 대해 대항력이 발생한다. 반면 임차권설정등기는 등기소를 찾아야 하며 관련 업무도 더 복잡해진다는 게 구 소장의 설명이다. 또 전입신고는 비용이 발생하지 않지만 임차권설정등기는 보증금의 0.24%의 비용이 발생한다.
조정흔 감정평가사도 “다가구주택의 경우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을 파악한다고 하더라도 주택가격을 명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안전한 전세인지 아닌지 별도 판단이 필요하다”면서 “임차권 등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남는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