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

서울시와 고용노동부의 시범사업인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시작부터 삐걱대는 모양새다. 지난달 입국한 100여명의 필리핀 노동자들은 이달 3일부터 157가구에 첫 출근 했다. 그런데 5대 1의 경쟁률이 무색하게 첫 날부터 취소신청이 잇따랐다고 한다. 심지어 시행 직전에는 신청가구 중 절반이 넘는 숫자가 이용을 취소해 한 차례 재모집을 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20일에는 월급 성격의 교육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등 임금체불까지 발생했음에도, 서울시는 고용노동부 책임으로, 고용노동부는 민간업체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어 여러 갈등의 소지를 남기게 됐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졸속행정이 부른 예견된 문제라고 지적했고, 폐지 수준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정부가 함께 추진한 사업이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가사와 육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데, 자국민을 고용하기엔 비용 부담이 있으니 ‘값싼’ 외국인 여성노동자를 고용하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 투성이로, 정책 실패는 불보듯 뻔하다.

우선, 저출생 문제 해결에 있어 핵심은 ‘일·가정 양립’에 있다. 이는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가사와 육아를 남성이 공동으로 분담하고,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할 수 있도록 기업환경과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미 우리사회에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의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는 가사와 육아를 다시 ‘여성’의 것으로 되돌려 놓았다는 점에서 시대를 역행한다. 또한, 부모가 아이를 직접 양육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와 육아를 타인에게 맡기고 직장생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도 ‘일·가정 양립’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 주장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최저임금 미만으로 임금을 삭감하자는 것인데, 이는 ‘돌봄노동’을 값싼 노동으로 낙인찍는 효과를 줄 뿐만 아니라, 돌봄노동이 대표적인 여성들의 일자리라는 점에서 성별간 임금격차를 지금보다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렇듯 대체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어떻게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정책적 설득력도 없고, 사회적 논의도 충분하지 않았으며, 고용에서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 권리와 사용자 책임도 마련된 게 없다. 따라서 동일 업종에서 국내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간의 문제,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문제, 돌봄의 질 문제, 고용계약 문제 등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요소들은 산적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내년 상반기에 1,200명 규모로 본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단 하고 보자는 윤석열 정부식의 졸속행정,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