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역사상 첫 좌파 정권이 추진 중인 사법 개혁이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반발에까지 부딪히고 있다. 서방 언론이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것이 사법부를 정치화시켜 멕시코의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것이 서방과 국제 뉴스를 주로 서방 언론에 의존하는 여러 국가에서 정설로 자리 잡을 정도로 그 반발은 거세다. 이런 반발이 정당한 것이 아니며 그 배후세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코뱅 기사를 소개한다.
멕시코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모레나(MORENA) 연합은 클라우디아 쉐인바움 당선인이 아직 취임하지 않았지만 이미 새로운 헌법 개정안을 논의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 대통령이 제안한 것으로, 여당이 의회에서 3분의 2의 특별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첫 번째로 다뤄질 사안은 이미 언론 대기업과 외국 정부의 반발을 사고 있다. 그 사안은 바로 연방 판사 모두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게 하겠다는 사법 개혁이다.
켄 살라자르 주멕시코 미국 대사는 8월 22일 이 개혁에 반대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상당히 이례적인 성명이었다. 그는 미국이 최근 침공해 점령했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언급하고 두 나라를 독립적인 사법부를 갖지 못한 예로 든 후, ‘판사를 직접 선출하는 것은 멕시코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고 ‘이것은 양국이 쌓아온 무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관계는 투자자가 멕시코 법체계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에 달려 있다’고 협박했다. 쉽게 말해 알아서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하지만 AMLO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아무리 그를 존중해도 미국 대사가 우리 일을 비난하는 것을 어떻게 허용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AMLO는 미 대사를 추방하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대사관과의 관계를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AMLO는 또한 미국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캐나다에 대해 ‘가련하다’며 속국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AMLO는 미국과 캐나다가 ‘멕시코 국민의 일에 간섭하려 한다’며 자신이 있는 한 주권 침해는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전선이 명확히 그어진 것이다.
미 대사의 태도 변화
살라자르 미 대사의 발언은 그가 불과 두 달 전 했던 이야기와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그는 6월 13일 ‘사법 개혁은 멕시코가 내릴 결정이다. 우리는 그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고 했고, 7월 24일에도 ‘이 개혁은 멕시코 정부와 의회의 결정이다. 나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확인했다. 심지어 태도를 번복하기 직전까지 그는 이 개혁이 ‘좋은 기회’라며 미국은 멕시코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했었다.
게다가 성명을 발표한 이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미 대사는 말을 바꿔 자기 발언이 ‘협력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변명하며 미국과 멕시코는 파트너이고 이 문제에 대해 미국은 ‘대화할 의지’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멕시코가 사법 개혁을 하는데 미국과 대화할 필요가 없고, 그것이 적절하지도 않다는 본질을 놓친 것이었다. 결국 미 대사는 이후 다시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고 밀레니오 TV 인터뷰에서 이 개혁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정신을 위배한다고 주장했다. 멕시코 사법 개혁이 실제로 USMCA을 위반했다고 할 수 없음을 알고는 그 ‘정신’을 위배한다는 논리를 펼친 것이다.
그리고 9월 3일이 되자 그는 ‘미국도 일부 주에서는 판사를 직접 선출하지만 그것은 주 단위일 뿐, 많은 주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사건은 주 법원에서 처리되고, 판사를 직접 선출하는 주가 41개에 이르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내정 간섭
이런 태도 변화가 멕시코시티의 미 대사관 결정이 아니라 워싱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문제는 누가 이런 결정을 내렸느냐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정부 내 다른 세력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서로 격렬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몇 달 동안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지난 4월 에콰도르가 멕시코 대사관을 침공했을 때,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이 사건에 대해 국무부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를 ‘정정’했다. 또 8월 베네수엘라 대선에서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우파 후보를 축하했다가 며칠 후 국무부 대변인이 이를 철회했다.
그러다가 미국 정부가 AMLO와 지나치게 친밀해지는 게 아니냐는 뉴욕타임스 견제 기사가 나올 정도로 멕시코에 우호적이라는 평을 받는 주멕시코 미 대사에게 자기 말을 계속 번복하게 하면서 그를 곤경에 빠뜨린 것이다.
멕시코의 사법 개혁을 반대하는 미국의 태도 뒤에는 AMLO를 비판하는 언론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미국 마약단속국(DEA)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는 국무부 내 블링컨계 강경파나 정보기관이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배후세력은 재계이다. 이들이 오랫동안 사법부를 이용해 금융, 광업, 에너지, 물과 같은 전략적 산업에서 자기 이익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민주적으로 선출되면 조직범죄의 영향력이 커질 우려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도 있지만, 다국적 기업이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그들의 금권과 뇌물, 그리고 오랜 판사들과의 유착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AMLO가 거센 법적 다툼과 맞서며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정부 통제를 강화하려는 개혁을 추진할 때도 살라자르 대사가 동원된 바 있다. 오랫동안 에너지 업계를 옹호해 온 살라자르 대사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고, 에너지 개혁에 대한 미국과 멕시코의 의견 차이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민간 에너지 통제 법안은 멕시코 대법원에서 폐기됐고, 미국이 승리했다. 그러나 AMLO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멕시코 사법부의 문제
에너지 개혁 논란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멕시코 사법부는 이미 과도한 급여, 특권, 비리, 족벌주의로 악명이 높다. 이들은 부유한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이 허다했다고, 부유한 용의자를 석방하거나 가택연금이 상태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 줬다. 이런 결정이 정부 기관이 문을 닫고 언론 보도도 더 적은 토요일에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멕시코 국민 사이에는 ‘이번 주말에는 누가 나올까’라는 농담까지 생겼고, ‘사바다소’ 그러니까 ‘토요일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러한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브라질 기업 오데브레히트의 자금을 엔리케 페냐 니에토의 2012년 대선 캠페인으로 불법 송금한 혐의를 받는 에밀리오 로소야, 사회 개발 기금을 대학교를 통해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로사리오 로블레스, 돈세탁 및 조직범죄 혐의를 받는 타마울리파스 주 전 주지사 프란시스코 가르시아 카베사 데 바카, 언론인 리디아 카초를 고문하라고 명령한 혐의로 기소된 푸에블라 전 주지사 마리오 마린 등이 있다. 이런 혜택은 인맥이나 재력이 부족한 수천 명의 멕시코인이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특히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더욱이 최근 몇 달 사이에 사법부의 부도덕한 행동이 더욱 논란이 됐다. 멕시코 대법원장 노르마 피냐가 2024년 대선의 유효성을 결정할 판사를 대동하고 보수 야당 혁명제도당(PRI) 지도자 알레한드로 모레노와 비밀 회동을 가진 사건이 폭로됐다. 더구나 유출된 왓츠앱 대화에 따르면, 피냐 대법원장이 모레노를 ‘동맹’이자 ‘친구’로 소개하기까지 했다. 이는 명백한 이해 충돌로 피냐 대법원장이 즉각 사퇴해야 마땅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사법 개혁에 맞서 싸우는 선봉장이 되어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대법원의 파업을 주도했다.
또 몇몇 연방 판사는 사법부 개혁 논의를 막기 위한 의회에 개혁 논의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만약 사법 개혁안이 통과되더라도 주 의회로 송부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등 사법 개혁을 막기 위한 불법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는 사법부의 권한 남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와중에 엘 피난시에로 신문의 칼럼니스트 로데스 멘도사가 사법 개혁에 관한 자기 칼럼을 대법원 판사 마르가리타 리오스 파르하트에게 미리 보내 사전 검토를 받았다는 사건이 폭로되어 언론과 사법부 간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여러 사건은 사법부 개혁이 절실함을 더욱 부각했다.
멕시코 사법 개혁의 중요성
멕시코 사법 개혁의 첫 단계는 2025년까지 연방 사법부 절반을, 2027년까지 나머지를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법원 전체가 포함되며, 현직 판사도 재출마할 수 있다. 선거는 비당파적으로 이루어지며, 민간 자금 사용은 금지되고, TV와 라디오에서 무료 방송 시간을 받게 된다. 또 의회에 후보의 교육과 경험 등의 경력을 확인하는 기술 위원회가 설치될 예정이다.
대법관의 임기는 15년에서 12년으로 줄고, 성별 균형이 강제된다. 과도한 급여와 특권도 폐지된다. 특히 부유층, 권력층, 그리고 대기업이 자기 이익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남용되는 경우가 많은 헌법 소원인 ‘암파로’도 제한될 예정이다. 또 독립적인 감시 기구가 설치돼 부패한 판사를 처벌하거나 심지어 해임할 수 있는 권한도 갖게 된다.
현재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법 개혁이지만, 사법 개혁은 멕시코 의회가 앞으로 다룰 여러 헌법 개정안 중 하나에 불과하다.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멕시코인의 자치권 강화, 임금과 주택, 연금 보호 강화, 프래킹(수압 파쇄법), 노천 채굴, 유전자 변형 옥수수 사용 금지 등이 포함된다.
다국적 기업과 그들의 대변자들이 이런 개혁을 우려하는 것은 이 개혁들로 사법부와의 밀월 관계가 청산되고 자기의 사법적 특권이 제한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개혁이 선례가 되어 미국에도 퍼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이제야 과도한 권력을 남용하는 대법원을 개혁하려는 멕시코보다 훨씬 더 미미한 사법 개혁을 시도하기 시작한 미국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