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작품을 2인극으로 풀어낸 공연이 있다고 하면 늘 '어떻게?'라는 질문이 따라 나온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엔 요즘 구어와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대사와 대사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작품엔 등장인물의 수가 엄청 많다.
그런데 극단 감동프로젝트와 창작꿈터 놀이공장이 함께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The Clown'을 보면 이러한 질문이 기분 좋게 갈무리된다. 단 두 명의 배우와 악사가 극장을 발랄한 연극적 기지와 관객의 웃음소리로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듯 이 연극은 올해 제45회 서울연극제 자유경연작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관객의 관심과 사랑에 힘입어 9월에 개최된 '어쩌다 연극 페스티벌'에서 앵콜 공연으로 다시 관객을 만났다.
무대엔 단 두 명의 배우와 악사만 등장한다. 내일이 올지 말지 걱정하는 광대2(서인권 배우)와 내일 안 오면 오게 하면 된다는 광대1(강나리 배우)이다. 격정적인 오늘을 끝내고, 쓸쓸한 내일을 맞이하게 될 광대들은 다시 한번 신나게 놀아 보기로 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악사 류찬이 광대와 광대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에 호흡과 생기를 불어넣는다.
두 광대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줄리엣이 너무 해보고 싶었던 광대1과 로미오를 연기하게 된 광대2는 영주, 티볼트, 머큐쇼, 유모, 벤볼리오 등 다양한 인물을 연기한다. 두 광대는 한 인물을 번갈아 가면서 연기하기도 한다.
두 광대를 통해서 다양한 등장인물이 스쳐 지나가지만 관객이 이를 쫓아가기엔 큰 어려움이 없다. (역할) 놀이 속에서 숨겨진 영리한 연극성이 번뜩이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각 등장인물의 개성과 특징을 잡아내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짧고 경쾌하게 무대가 바뀌는 느낌이다. 이에 관객은 광대들의 놀이에 푹 빠진다. 관객은 연극 무대가 아닌 광대들의 놀이터에 초대받은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배우의 기지와 역량이 돋보이는 연극이었다. 강나리·서인권 배우는 무대를 살벌한 검투 현장으로 바꾸었다가, 순식간에 절절한 사랑과 애정의 무대로 바꿔 놓기도 했다. 여기에 작곡을 맡은 악사 류찬의 라이브 음악은 무대의 풍경에 생생한 색을 입혔다.
뭔가 어그러지고 망해버리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버린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극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은 힘을 준다.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처음부터 다시 하자"고 말하는 광대의 패기는 관객을 극 바깥으로 환기시킨다. 뭉개지고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처음부터 해봐도 될 것 같은 토닥거림을 안겨준다. 완벽한 오늘이 아니라 각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오늘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극단 감동프로젝트의 대표인 임정은 작가가 재창작 했고, 창작꿈터 놀이공장의 대표인 홍성연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다. 강나리, 서인권, 류찬이 무대에 출연했다. 공연은 지난 9월 11일 씨어터 조이(대학로)에 올랐다가 9월 15일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