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태영호 사무처장의 아들 태 모(32세) 씨가 아버지의 후광과 당국의 신변보호 및 관리를 받고 있다는 점 등을 이용해 지인과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을 상대로 가상화폐 ‘투자사기’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태 씨가 돈을 크게 불려주겠다는 식으로 투자받은 돈을 피해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으면서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투자자에게 돈이 묶여 있으니 돈을 돌려받고 싶으면 대부업자로부터 대출을 받아서 돈을 구해오라고 압박하는 등 악질적인 투자사기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한 피해자는 “총피해 금액이 17억이 넘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가상화폐 투자사기에 대한 고소가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들의 개별 고소장은 추석연휴 끝나고 접수됐다. 또 태 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스무 살 학생을 상대로 돈을 크게 불려주겠다면서 여러 해 동안 상당히 큰 금액을 투자받았는데, 돈을 돌려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학생에게 국방부 관계자 사칭을 요구해 또 다른 사건에 연루되게 만들었다.
태 씨의 아버지인 태영호 처장은 21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올해 7월 민주평통 사무처장으로 임명됐다.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차관급 고위공무원이다. 또 태 사무처장은 2016년까지 주영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공사로 있다가 가족과 함께 망명 후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신변보호 등 당국의 관리를 받아왔다. 아들 태 씨는 이번에 드러난 여러 사건에서 이 점을 적극 활용했다.
이달 12일부터 25일까지 ‘민중의소리’가 확인한 피해자는 4명이다. 이 외에도 피해자는 최소 3명 이상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진은 개별 피해자들을 직접 접촉해 그들의 증언, 태 씨와의 메신저 대화 내용, 계좌 입출금 내역 등을 교차 검증했다.
피해사례 ① 본인도 모르게 진행된 가상화폐 대출
A 씨와 A 씨 지인들은 지인 관계인 태 씨를 믿고 여러 사람 명의로 가상화폐 대출을 해줬다가 10억원이 넘는 규모의 가상화폐를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A 씨는 일을 하다가 만나 친해진 뒤 북한인권단체 설립 등 여러 사업을 같이 해보자는 태 씨를 믿었다고 한다.
A 씨에 따르면, 태 씨는 다른 피해자 B 씨 명의로 수억원이 넘는 가상화폐를 대출했다. 하지만 B 씨는 자신의 명의로 대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B 씨는 자신의 명의로 대출이 이루어진 사실을 A 씨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은 9월에서야 알게 됐다. B 씨는 5월에 태 씨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만나 가상화폐 환전을 부탁하며 신분 확인용으로 신분증을 찍어서 넘겼는데, 이게 B 씨도 모르게 대출에 사용된 것이다.
태 씨가 가상화폐 대출을 시작할 때, A 씨는 “위험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태 씨는 전부 지인관계이고, 이전에 했을 때도 문제없었으며, 친분이 있는 경찰을 통해 이들의 상환능력을 알 수 있는 신원조회까지 했다면서 A 씨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실제 태 씨가 A 씨에게 보낸 카카오톡 문자를 보면, 태 씨는 “저희 다 끼고 합니다. 경찰까지”, “일단 (경찰) 신변팀 쪽에도 내용 공유했고, 얘도 능력됩니다”, “신원조회는 아까 강남경찰에 하긴 했어요”, “깡패 안 쓰고 경찰 쓰면 더 효율적이죠”, “걔 개인정보 등 받아서 강남경찰서 조회 넘김요”라고 수시로 친분이 있는 경찰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태 씨는 A 씨에게 경찰 신변보호팀과 관련해 “그때부터 쭉 저랑 뜻이 맞고, 모든 게 맞는 형이 이 형이 되어서 여태 제가 사고치면 다 봐줌”이라고 자랑하듯 말했다. 그러면서 태 씨는 “정○○이라고 앞으로 우리 모든 사업 봐줄 형”이라며, 경찰관 이름을 언급했다.
A 씨는 “처음에는 100~200만원 단위였는데, 점차 (대출 규모가) 커졌다”면서 “상대방들이 정말 채무상환 능력이 있는지 검토하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태 씨가 안심하라고 위조된 상대방 계좌내역을 보여주는 식으로 안심을 시켰다”라고 설명했다. 또 상대방과 직접 소통하려고 하면, 태 씨가 전부 자기 지인이라서 이러면 곤란해진다는 식으로 막았다는 게 A 씨의 설명이다.
A 씨는 “설마 다른 사람의 명의를 (몰래) 빌려서 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피해사례 ② 대부업, 카드깡, 배우자 명의 대출 피해자 B 씨를 ATM 기계처럼 이용 B 씨, 돈 돌려받기 위해 태국 따라가
피해자 B 씨는 올해 5월 9일 가상화폐 환전을 위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입장했다가 태 씨를 알게 됐다. 일부 가상화폐의 경우 환전을 하려면 24시간이 걸리는데, 태 씨는 가상화폐 투자자들에게 수수료를 받고 곧바로 환전을 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 씨가 B 씨를 상대로 가상화폐 투자를 종용하기 시작한 시점은 5월 중순쯤이다.
B 씨는 “돈을 부풀려주겠다는 식으로 태 씨가 투자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B 씨가 처음부터 태 씨를 믿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태 씨가 가족관계증명서와 카카오톡 가족대화방, 가족사진 등을 제시하며 “이래도 못 믿느냐”면서 투자를 종용했다. 심지어 태 씨는 경찰과 친근하게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여주며 자신과 가족이 경찰의 신변보호 및 당국의 관리를 받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버지가 고위공무원이고, 정부의 신변보호까지 받는 가족의 명예가 걸린 일인데 설마 속이겠냐는 취지다. 결국 B 씨는 태 씨에게 돈을 맡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6월 태 씨가 실제 투자한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주자, B 씨는 태 씨를 정말 믿기 시작했다.
피해는 그 이후부터 발생했다. 태 씨와 B 씨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방 기록을 보면, 태 씨는 7월부터 B 씨에게 다시 투자를 권유했다. 이에 B 씨는 태 씨에게 580만원을 건넸다. 그러자, 태 씨는 “완전 증가율이 다르다”면서 B 씨에게 추가 투자를 종용했다. B 씨는 1000만원 더 건넸다. 그런데도 태 씨는 멈추지 않고 “1500을 더 넣으면 1억1300까지 회사에서 밀어준다고 한다, 진짜 대박 기회”라며 투자를 종용했고, B 씨는 지인에게서 1500만원을 빌려서 또 건넸다. 그런 뒤에도 태 씨는 “벌 수 있을 때 확 벌어야 한다”면서 추가 투자를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도 태 씨는 “(전) 국회의원 아들한테 질러줬다고 하라”면서 계속 아버지 신분을 이용했다.
그러다가 더 이상 B 씨로부터 돈이 나오지 않자, 태 씨는 방식을 바꿨다. 그는 돈이 묶였다면서 2000만원을 B 씨가 구해오지 않으면 돈을 찾을 수 없다고 압박했다. 태 씨는 B 씨에게 10여 곳의 대부업체 연락처까지 넘겨주며 대출을 받으라고 강요했다. 태 씨가 돌려주지 않으면 투자 원금조차 회수할 길이 없었던 B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배우자 C 씨 명의로 수천만 원을 대출받아 넘겼다. 이 과정에서 태 씨는 B 씨에게 수백만원 상당의 이른바 ‘카드깡’까지 시켰다. 그런데도, 태 씨는 B 씨로부터 또 돈 나올 구석이 없는지 시험하듯 “긴급이에요 긴급”이라며 추가로 돈을 빌려오라고 압박했다.
B 씨는 더 이상 끌려다니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아내 명의의 대출금이라도 회수하기 위해 9월 4일 태 씨를 만나러 갔다. 이날 B 씨는 태 씨를 만나 아내의 돈이라도 돌려달라고 호소했지만, 돌려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B 씨는 ‘태국으로 가면 돈을 구할 수 있다는 태 씨’를 따라 태국으로 향했다. 태국과 같은 동남아 지역은 북한 공작원들이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 태 씨와 같은 고위공직자 출신 탈북자 가족에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은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 당시 태 씨를 따라간 이유에 대해, B 씨는 “와이프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돈을 어떻게든 받아야겠다는 심정이었다”라고 말했다.
남편 B 씨에 대한 실종신고 과정에서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배우자 C 씨는 남편에게 연락해 설득했다. 당장 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B 씨는 다행히 9월 10일 귀국했다.
피해사례 ③ 태 씨, 피해자에게 국방부 사칭 요구 돈 못 돌려받을까봐 요구 들어준 C 씨 결국 경찰수사까지 받게 돼
태 씨가 태국으로 향한 시기는, 태 씨가 모친 회사 사건으로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을 때였다. 이 사건에는 ‘돈을 불려주겠다’는 태 씨의 말을 믿고 수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과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돈을 여러 차례에 걸쳐 태 씨에게 넘긴 C(22세) 씨가 억울하게 연루됐다.
C 씨가 태 씨에게 맡긴 돈을 돌려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 시작할 무렵, 태 씨는 C 씨에게 국방부 정신전력문화정책과 사무관인 척 어머니 회사에 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C 씨는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 씨는 어머니와의 일이라며 C 씨를 안심시켰고, C 씨는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 등으로 태 씨의 요구를 들어줬다고 말했다.
올해 5월 13일 태 씨가 C 씨에게 전달한 대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 출판사 오○○ 대표님 맞으실까요? 저는 국방부 문화정책과 김○○ 사무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5월 10일에 요청한 추가 도서 외에 오늘 5개 출판사에 한해서 5500부 추가 되어서 안내드립니다. 관련 이메일을 태○○ 팀장님께 보내드렸습니다. (생략) 더미라클 도서 ‘런던에서 온 평양여자’ 샘플본은 오늘 오전에 전달받았습니다. 검수 상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그대로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이 대본에 적힌 “5500부 추가” 등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국방부 정신전력정책과에 문의한 결과, 책 ‘런던에서 온 평양여자’는 2023년 2분기 때 진중문고로 선정되어 각 부대에 배치됐고 추가로 계약이 이루어진 사실은 없다.
태 씨가 C 씨 등을 이용해 어머니 회사를 속이고 인쇄비를 빼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태 씨가 어머니 출판사를 속인 것은, 8월쯤 태 사무처장이 C 씨에게 전화해 국방부 사무관이 맞는지 물어보면서 들통 난 것으로 보인다. C 씨와 태 씨가 8월 말에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면 C 씨가 “문제 생기는 거 아니냐”면서 “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안 되냐”고 하는데, 태 씨는 “안 된다”면서 계속 거짓말을 할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는 C 씨의 질문에, 태 씨는 그제야 “내가 출판사 자금을 썼다”고 고백했다. 그러고는 결국 사건이 드러날 것 같으니 C 씨에게 “일이 커질 것 같다”면서 “통신사 가서 번호를 바꿔라”라고 요구했다.
이 때문에, C 씨는 해당 사건 피의자로 경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C 씨는 최근 관할 경찰서로부터 출석요구를 받았다. C 씨는 “태 씨로부터 돈도 못 받은 상태였고, 만약 요구를 안 들어주었다고 잠수를 타면 어떻게 하지 그런 우려가 있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태 씨가 가상화폐로 돈을 불려주겠다면서 C 씨로부터 여러 차례 받아 낸 돈과 가상화폐 역시, C 씨에 따르면 수천만원이다. 수법은 B 씨가 당한 것과 비슷했다. 다만 C 씨는 더 오랜 기간 태 씨에게 시달렸다. 심지어 태 씨는 C 씨에게 학생들의 학업·취업을 돕기 위해 나온 서민금융상품 ‘햇살론 유스’과 불법으로 의심되는 대출까지 이용하게 했다.
경찰 “신변보호 대상자라 언론노출 안 돼” 태영호, 피해자에게 “부모와 전혀 관계없다”
태 씨에게 돈과 신상정보 등을 보냈다가 피해를 본 피해자는 이 외에도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태 씨는 피해자들 명의로 받은 대출과 피해자들에게서 직접 받은 돈으로 여러 가상화폐 매매를 하다가 대부분 잃은 것으로 보인다. A 씨는 “태 씨가 가상화폐 투자를 하다가 거액을 잃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사건에 대해 관할 경찰서에 문의했으나, 경찰 관계자는 “태영호와 그 가족은 주요 탈북민으로 신변보호 대상자”라며 “관련 내용이 언론에 노출되면 신변보호 대상자에 대한 테러 등 위해 위험이 높아져 관련 규정에 따라 내용 확인이 불가하니 양해바란다”고만 답했다. 태 씨가 경찰의 신변보호 대상자라는 점 등을 악용해 이 같은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경찰은 같은 이유로 취재에 응할 수 없다고 답한 것이다.
태영호 사무처장과 아들 태 씨 측에도 입장을 묻기 위해 여러 번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변이 없었다. 다만, 태영호 사무처장은 한 피해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태○○는 성인”이라며 “그러면 채무채권 관계는 부모와 전혀 관계없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 1차장 출신으로 국회 정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선원 의원은 25일 ‘민중의소리’와 통화에서 “해당 내용과 관련해 내일 있을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국정원에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을 따져 묻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