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상황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 서울 집값이 6년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는 정부 통계가 발표되더니, 하루만에 정반대의 민간 통계가 나왔다. 여기에 스트레스 DRS 2단계가 시행되며 대출한도도 줄었다. 집값 상승 원인 중 하나였던 신생아특례대출의 소득기준을 더 풀겠다던 정부 계획도 연기됐다.
불과 닷새 전까지만 해도 정부의 부동산 통계가 발표되며 국내 부동산 시장은 과열 조짐을 보였다. 정부 통계로 서울 아파트값이 역대급 상승을 거듭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면서 ‘집값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 것이다. 지난 19일 한국부동산원은 ‘전국 주택가격 동향조사’을 통해 8월 서울 주택매매가격이 전달보다 1.27% 올랐다고 밝혔다. 2018년 9월 이후 5년 11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하지만 민간단체의 주택 통계가 연이어 발표되며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같은 서울 아파트 가격 동향을 두고 정부 통계와 정반대의 결과를 내놓으면 부동산 시장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협회)는 지난 20일 ‘월간 KAR 부동산시장 동향’ 리포트 9월호에서 8월 서울 아파트값이 직전 달인 7월보다 4.5%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이 통계의 핵심은 올해 1월부터 이어진 상승세가 7월을 정점으로 이미 꺾였다는 것이다.
민간 통계는 공인중개사 80%가 부동산 계약 때 사용하는 시스템에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작성된다. 거래 정보가 시스템에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만큼 실거래가 정보를 기존 주택가격 통계보다 빠르게 제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통계가 한국부동산원이나 KB부동산 통계보다 한 달가량 빠르게 시장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는 집값 상승세가 주춤하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하지만 집값 상승세가 아직 지속 중이라는 정부 통계에 ‘추가적인 집값 상승’ 기대감이 생겼다가, 이미 하락이 시작됐다는 통계가 나오자 주택 매매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거래량도 감소했다. 이달 19일 기준 8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5,462건으로 전달(8,835건)보다 40%(3,373건)가량 급감했다. 계약 신고일이 10일 정도 남았지만 업계에서는 8월 거래량이 7월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대출규제도 집값 하락 전망에 힘을 싣는다. 정부는 이달 1일부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를 통해 추가 대출 억제했다. 스트레스 DRS는 미래 금리 변동 위험을 반영해 대출 금리에 가산 금리인 스트레스 금리를 부과해 대출한도를 산출하는 제도다. 미래 금리 변동성 리스크를 반영해 스트레스 금리가 붙는 만큼 대출한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는 수도권 주담대에 한해 스트레스 금리를 0.75%p보다 높은 1.2%p로 상향 적용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수도권 주담대 한도가 더 크게 줄어들게 된 것이다.
금융당국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보면 연소득 5천만원인 차주가 30년 만기 변동금리(대출이자 4.5%로 가정) 대출을 받으면 2단계 스트레스 DSR 도입 이전 한도는 3억2,900만원이다. 하지만 2단계 스트레스 DSR 적용되면 한도는 2억8,700만원이 된다. 한도가 4,200만원 줄어든 것이다. 반면 비수도권은 3억2,900만원에서 3억200만원으로 2,700만원 정도 한도가 낮아진다.
정책대출의 소득기준을 완화하려던 계획도 중단됐다. 앞서 정부는 지난 4월 현재 부부합산 1억3천만원인 신생아특례대출의 소득기준을 올 3분기 2억원까지 완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소득기준을 2억5천만원으로 올려 사실상 소득요건을 폐지한다는 계획이었다.
신생아특례대출은 대출 신청일 기준으로 2년 이내에 출산·입양한 무주택 가구나 1주택 가구에 대해 주택구입·전세자금을 연 1~3%대 금리로 최대 5억원까지 대출해 주는 정책금융상품이다. 대상 주택은 가격 9억원 이하, 전용 85㎡ 이하다.
신생아특례대출은 올해 시작된 집값 상승의 원인 중 하나였다. 국토부에 따르면 신생아특례대출이 시작된 올해 1월 말부터 7월 말까지 6개월간 들어온 대출 신청은 총 2만8,500여건, 액수로는 7조2천억원에 달했다.
정부는 신생아특례대출을 받을 수 있는 소득기준을 대폭 완화해 더 많은 신혼부부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으로 부동산 시장 과열이 지목되면서 계획을 연기했다. 정책 방향이 시장 규제 강화로 완전히 돌아선 것이다.
과열에 따른 추격 매수 주체가 40대 이하 청년들이었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 7월 기준 주택 매입자 중 60% 이상이 40대 이하였다. 40대가 33.2%였고 30대가 31.5%로 뒤를 이었다. 이번 상승기를 놓치면 내 집 마련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만들어낸 추격 매수다.
정부 정책대로 부동산 시장 찬바람이 본격화 하면 고금리에 높은 집값 부담은 고스란히 이들 청년이 짊어진다. 만약 금리 하락에 따른 부동산 가격 상승이 이어진다면? ‘막차’를 놓친 집없는 청년들에게 또 한번의 박탈감이 덮쳐온다.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집값 안정을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내세워 왔다. 공급 확대로 집값 안정 흐름을 이어가겠다고 호언 장담했다.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가 만능 열쇠인 듯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무엇인가? 지금의 집값 급등에 정부는 왜 아무런 설명이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