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16세기 고전이 전하는 돈과 혐오의 이야기, 연극 ‘몰타의 유대인’

연극 '몰타의 유대인' 컨셉 사진 ⓒK아트 플래닛

무대에 등장한 바라바스는 자신이 어떻게 돈을 벌었으며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돈을 이야기할 때 그의 눈은 빛났고 행동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보인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막대한 부를 긁어모았다는 그의 이야기는 확신에 차 있었다. 순간 월 천만 원을 벌게 해주겠다는 투자의 신이 등장했나 착각할 정도다. 게다가 자신이 가진 모든 부는 딸의 것이라는 애정(?)어린 바라바스의 연설을 듣고 있자니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시작부터 돈 이야기가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돈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거나 인생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든지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딱히 돈을 마다하지도 않는다. 그저 말끝마다 돈을 노래 부르면 왠지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뿐이다. 참 이율배반적이고 양가감정으로 갖게 하는 ‘돈’. 오늘의 연극은 바로 그 ‘돈’이야기로 시작된다.

폭력적인 자본의 민낯을 보여주는 이야기


연극 ‘몰타의 유대인’은 2018년 ‘말피’를 시작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을 새롭게 해석해 무대화하고 있는 극단 적의 세 번째 작품이다. 원작 ‘몰타의 유대인’은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영국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의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비견되며 당대 히트작으로 기록되어 있다. 두 작품 모두 유대인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것과 폭력적인 자본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연극 '몰타의 유대인' 컨셉 사진 ⓒK아트 플래닛

2024년 셰익스피어가 아닌 크리스토퍼 말로의 ‘몰타의 유대인’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시작부터 거창하게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바라바스의 등장은 이 작품이 철저하게 코미디로 재해석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지중해의 작은 섬, 몰타에서 시작된다. 몰타는 튀르키예에 조공금을 바쳐야 하지만 나라의 재산을 다 모아도 조공금을 마련할 수 없다. 몰타의 총독은 이방인이면서 몰타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바라바스의 재산을 몰수해 조공금을 마련하게 된다.

자신의 피와 살 같은 재산을 몰수당한 바라바스는 몰타를 상대로 복수극을 시작한다. 먼저 딸을 이용해 숨겨놓은 재산을 되찾은 바라바스는 아름다운 자신의 딸, 아비게일을 이용해 총독의 아들을 죽게 만든다. 바라바스는 튀르키예 출신 노예 이싸모어를 사들여 자신의 복수에 이용한다. 한편 아비게일은 바라바스를 배신하고 기독교로 개종해 수녀가 되고 바라바스는 자신의 딸 아비게일과 수녀원에 함께 머물던 다른 수녀들까지 모두 독살하고 만다. 복수는 다시 복수로 이어지고 바라바스의 악행은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꼬리를 무는 살인과 복수가 막장으로 치닫고 서서히 바라바스의 악행이 들통나기 시작한다.

혐오와 돈의 진짜 모습 그려


바라바스는 16세기 유럽인들이 유대인에 대해 가졌던 모든 혐오와 차별을 모아 만들어낸 전형적인 악인이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자신의 돈을 뺏는 사람이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돈을 지키기 위해 딸을 이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으며 자신을 배신하면 딸이라도 가차 없이 죽인다. 하지만 주인공이 유럽 사회에서 엄청난 차별을 받으며 쫓겨 다녔던 유대인이라거나 기독교인들의 위선과 탐욕 같은 배경지식은 그저 배경지식일 뿐이다.

연극 '몰타의 유대인' 컨셉 사진 ⓒK아트 플래닛

이방인에 대한 혐오를 무기 삼아 권력을 휘두르는 총독이나, 돈 앞에서 믿음도 신념도 가볍게 던져버릴 수 있는 교회의 수사나, 돈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자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연극 ‘몰타의 유대인’은 돈으로 시작해 혐오를 부추기며 다시 돈으로 파멸되는 이야기다.

잔인하고 잔혹한 무대 위 이야기는 코미디이지만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을 뜨끔하게 만든다. 바라바스의 마지막 대사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돈을 꺼낼 때마다, 만질 때마다, 쓸 때마다, 거기 달라붙은 바라바스가 보일 것이다. 그의 집착과 중독이. 그리고 그로 인해 무너진 세상이.’ 연극 ‘몰타의 유대인’은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9월 29일까지 공연된다.

연극 ‘몰타의 유대인’

공연 날짜 : 2024년 9월 21일(토)~9월 29일(일)
공연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공연 시간 : 평일 19시 30분/토 15시, 19시/일 15시/월요일 공연 없음
러닝 타임 : 110분
관람 연령 : 만 13세(중학생) 이상
원작 :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
창작진 : 연출 이 곤/번역, 각색 마정화/움직임연출 이두성/발성,화술 코치 최정선/무대 정영/조명 성미림/음악 이승호/음향감독 강지완/의상 고혜영/분장 김근영/그래픽, 사진 김솔/영상촬영 플레이슈터/무대감독 이라임/조명오퍼 손유라/음향오퍼 이지은/조연출 박지예/제작피디 권연순
출연진 : 곽지숙, 권일, 백은경, 안병찬, 임윤진, 이승현, 심연화, 성근창
공연 예매 : 아르코 대학로 예술극장, 인터파크 티켓, 플레이 티켓
공연 문의 : 02-742-7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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