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전 세계 관객을 만나는 등 기대작으로 떠오른 허진호 감독의 영화 '보통의 가족'이 드디어 한국에서도 베일을 벗었다.
허진호 감독은 24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처음 제의 받은 건 대본을 받았다. 그동안 나왔던 (해외) 영화들도 보고 원작 소설도 읽었다. 만들어진 영화들이 훌륭했고, 제가 이 영화를 다시 잘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숨길 수 있는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부모가 어떻게 행동할까' 이런 부분들이 저도 자식이 있기 때문에 공감했다"면서 "이야기의 틀들은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에 가지고 와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 내서 작품을 하게 됐다"고 연출을 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네덜란드의 국민 작가인 헤르만 코흐(Herman Koch)의 소설 '더 디너(The Dinner)'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더 디너'에서 두 형제 부부는 자신들의 자식이 노숙자를 구타해 죽이는 끔찍한 범죄 앞에 직면하게 된다. 레스토랑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인간의 위선과 욕망,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과 도덕적인 양심 등이 수면 위로 폭발적으로 떠오른다.
허진호 감독은 원작의 제목인 '더 디너'가 아닌 '보통의 가족'으로 제목을 결정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숨길 수 있는 범죄를 저지른 가족 앞에서 가족이 하는 행동이 특이하고 어떻게 보면 보통이 아니고 특별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 저도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통의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그런 면에서 '보통의 가족'이라는 제목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제목에서 무언가 역설적인 느낌도 있었고, 반어적인 느낌이 있어서 영화를 보고 나서 제목이 또 다시 영화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이 제목을 선택하게 됐다"고 덧붙여 말했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세 번의 디너 장면이다. 첫 번째 디너에선 두 형제와 그들의 아내들이 형제 어머니의 거취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고 모인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디너는 네 사람이 자식들의 범죄를 알게 된 후 모이게 된다.
허 감독은 '디너' 장면에 대해 "배우들의 어떤 미세한 심리적인 변화들이나 감정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첫 디너는 영화의 시작이고 이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소개하는 거라서 유머도 있고 그렇다"며 "두 번째 디너는 아이들의 사건을 알고 나서 봤을 때 인물이 보여주는 모습, 그리고 세 번째 디너는 인물이 보여줬던 모습을 다르게 보여주는 것을 신경 써서 찍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꽃은 네 배우의 열연이다. 배우들은 아이들의 범죄 앞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를 섬세하게 연기한다. 그리고 때론 폭발적으로 때론 미묘하게 감정과 분위기를 스크린 위에 수놓는다. 그런 연기의 맞부딪힘이 관객으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네 배우의 연기만으로 이 영화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특히 두 형제 재완과 재규는 초반과 다른 급격한 감정 변화를 겪는 인물이라 눈길을 끈다.
동생 재규 역할을 맡은 장동건 배우는 "어떤 계기로 재규의 마음이 바뀌었을까에 대해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면서 "가장 큰 심정 변화를 겪은 캐릭터이기에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영화를 보면 사실 우리가 생각할 때 정답은 굉장히 분명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아는데 자기에게 유리한 선택인가 불리한 선택인가 생각하면서 정답이 중요해지지 않고 (자기에게) 맞는 답을 찾게 되는 게 인간의 본성이 있는 것 같다"면서 "재규는 어쩌면 처음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던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여 말했다.
형 재완 역할을 맡은 설경구 배우는 "감정의 변화가 생긴 게 아기 방에 있는 아이들 목소리를 듣고 그런 것일 수 있는데 재완이는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면서 "재완은 늘 그래왔듯 숨기고 살아갈 수 있느냐부터해서 잡혔을 경우까지 여러 수를 따졌을 것이다. 제 나름대로 생각은 (재완이) 끝까지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규의 아내 연경을 맡은 배우 김희애는 "프리랜서 번역가고 봉사도 하는 등 완벽한 여자임에도 자신의 아들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 내던지고 날 것을 보여주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순수하고 직면한 것에 올인하는 단순한 여자 같다"고 말했다.
영화는 10대 청소년의 범죄라는 다소 묵직한 주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 배우가 주거니 받거니 이어가는 대화 속에는 유머와 웃음이 상당수 존재한다.
김희애는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두 남자가 집안에서 인간적인 면에 들어갔을 때 밑바닥을 보여주는 거에 대해 연경이로선 돌아버리겠는 거다"라며 "'형제가 돌아가면서 사람 돌게 만든다'는 대사를 통쾌하게 보신 분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재완의 아내 지수를 맡은 배우 수현은 "사실 지수의 대사들은 타이밍이 뜬금없는 게 있다"면서 "앞서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의 대화를) 뚫고 들어가는 게 어렵다고 말씀드렸는데 김희애 선배님이 제게 '저기요'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워낙 포스가 있으시다 보니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보는 지수는 어린 엄마로서 좀 더 성숙한 엄마인 연경을 봤을 때 '엄마에게 이런 감정도 있나?' 이런 것을 알게 된 점도 있는 것 같다"면서 "근데 또 '이게 맞는 거잖아요'라고 소심하게 자신의 생각을 호소해보는 것이기도 하고, 끝에는 '이제 나도 신념이 있어' 하고 이야기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