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이 만드는 음악은 특이하다. 한국 대중음악 생태계에서 인디 신의 일원인 그가 그동안 회기동 단편선, 단편선과 선원들 등의 이름으로 발표한 음악들은 항상 당대의 유행으로부터 비켜서 있었다. 개성 강한 인디 음악에도 트렌드가 있고 레퍼런스가 있다. 자우림, 언니네 이발관, 검정치마, 혁오의 자장이 느껴지는 음악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런데 단편선이 내놓은 음악에 어떤 시대와 지역과 음악가의 흔적이 묻어나더라도 그는 누군가에게 헌정하듯 음반을 만든 법이 없다. 그는 과거의 음악과 현재의 음악을 뒤섞고, 록과 일렉트로닉과 포크와 재즈와 노이즈와 지역음악을 배합했다. 그렇게 내놓은 음악은 항상 그 자신의 음악이었다. 섬세하면서 거칠고, 투박하면서 진지한데다, 몽환적이면서 예스러운 음악은 그를 독보적인 창작자로 인정하게 했다.
지난 9월 10일 단편선 순간들의 이름으로 내놓은 정규 음반 [음악만세]에서도 이 같은 차이는 한결 같다. 그동안 그가 중심이 되어 발표했던 음악들이 견지했던 어쿠스틱한 록 사운드의 흐름은 이번에도 이어지지만 이번 음반은 그가 발표했던 어떤 음악보다 서정적이고 클래시컬하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어떤 이는 아트록이나 포크록의 전범들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편선 순간들의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음악을 끌어올 필요는 없다.
MV Danpyunsun and the Moments Ensemble(단편선 순간들) - Independent(독립)
피아니스트 이보람, 베이시스트 송현우, 드러머 박재준, 기타리스트 박장미과 단편선이 구성한 단편선 순간들의 첫 음반 [음악만세]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라. 연주와 노래 가운데 특정 악기나 목소리가 도드라지는 순간들이 있다. 어느 한 악기나 목소리가 항상 음악을 주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의 귀에는 유독 이보람의 건반이 자주 들렸고, 그 연주의 질감은 이 음반이 서정적이고 클래시컬하다는 인상을 갖게 만들었다. 연주곡이 세 곡이나 있다는 사실도 이 같은 인상을 강화하는데 기여하지 않았을까. 부드러운 목소리이지만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단편선의 목소리는 이번 음반에도 묘하게 사이키델릭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그런데 단편선 순간들은 이번 음반의 제목을 [음악만세]라고 정했음에도 음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증거하거나 헌정하는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독립의 가치와 삶의 새로움, 관계에 대한 통찰, 고마운 존재에 대한 감사를 비롯한 이야기는 흩어져 산개하다가 존재의 본질로 향하는데,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설을 넣은 곡까지 공존할 만큼 이번 음반은 폭이 넓다.
그럼에도 음악을 듣고 노랫말을 읽으며 생각해볼 화두를 주는 곡들이 많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홀로 멀리에 있는 / 홀로 멀리로 가는 / 독립”이라거나 “우리는 드디어 입을 맞추고 / 주름지고 늙은 나는 / 영원한 물의 세계로 잠겨”라는 노랫말에 이르면 단편선 순간들이 지향하고 성찰하고 창조하며 옹호하는 “영혼과 전쟁과 짐승과 사랑”의 세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게 된다. 순정과 낭만과 투지로 노래하는 음반은 일부로 전부를 말한다. 내내 만나고 연결되고 지키려는 것들을 가리킨다. 미래라고 해도 좋고, 사랑이라고 해도 좋을 대상을 향한 단편선 순간들의 목소리는 사실 간절하게 반복되어 모를 수 없다. 그래서 이 음반은 단편선 순간들의 사랑노래 모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편선 순간들은 이 사랑노래들을 고요하고 침잠하고 분출하고 소멸하는 소리의 집합과 운동으로 직조한다. 록이어도 어쿠스틱한 사운드가 중심이 된 음악은 대체로 여유롭고 아름답다. ‘Land of Hope and Glory (and The Things) (Edward Elgar)’, ‘독립’ 등에서 소리가 거칠게 엉킬 때에도 록의 급박한 질서는 현악기 연주를 동반하면서 기존의 록 음악에서 탈주한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만들어낸 현악기 연주는 피아노 연주와 함께 단편선 순간들의 음악이 여러 장르와 만나게 하는 주역이다. 록킹하면서 어쿠스틱하고, 거칠면서 유려한 음악은 단편선의 보컬과 함께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낸다. 이 소리들을 횡단과 포획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개별 악기의 매력과 앙상블의 변화무쌍한 전개는 정직한 분출 이면에 담아놓은 확장과 여유로움을 실현할 뿐 아니라 그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세계를 건설한다. ‘Alice in Deep’처럼 쓸쓸하면서 은밀하고 장엄한 서사는 그 세계 중 하나다.
그리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설을 넣어 만든 타이틀곡 ‘음악만세’는 그동안 단편선이 연대해온 가치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 이들의 사랑고백을 완성한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돌파해온 한 운동가의 치열한 삶에 헌사를 바치면서 음악은 사적 관계만 엄호하는 상품에서 벗어나 세계를 변혁할 가능성을 지켜가는 깃발로 펄럭인다. 예술은 만남과 연대를 통해 깊어지고 넓어지며 제 역할을 다한다고, 그 순간이 음악만세라고 외칠 수 있는 순간이라고 말하려 한 것은 아닐까. 이 곡이 음반의 말미에 와야 할 이유가 있고, 이 음반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다. 음악가 단편선과 단편선 순간들에 주목해야 할 근거를 묻는다면 이 곡만으로 충분하다. 음악의 매력으로 작품을 쌓고 감동의 힘으로 싸우는 음악가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