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대규모 실태조사에서 들쭉날쭉한 처우가 확인되면서 법제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법적으로 교육공무직이라 불리는 학교비정규직은 학교에서 일하지만 교원, 공무원이 아닌 노동자를 일컫는다. 전국에 무려 17만명이 넘는다. 학령인구가 급감하고 있으나 돌봄, 교육복지, 상담, 방과후 수업 등 정규수업 외의 교육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수요가 생길 때마다 학교비정규직으로 메우면서 100여 개에 달하는 직종의 노동자가 천차만별의 근로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국민입법센터에 의뢰해 1만명이 넘는 조합원들에게 실시한 대규모 실태조사에서도 이런 문제가 잘 드러난다. 응답자의 87.2%는 법적 근거가 없는 신분이었다. ‘교육공무직 채용 및 운영 관련 공통조례’는 전 지역에 있으나, 개별 직종에 관한 조례는 거의 없어(12.8%) 업무나 처우규정이 불분명했다. 응답자 대다수가 정규직 교원과 동일 또는 유사업무를 하면서도 급여나 복지, 호봉에서 차별을 받는다고 인식했고, 차별이 없다는 응답은 2.2%에 불과했다. 갑질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전체의 56%에 달했다. 갑질 유형으로는 업무 또는 책임 떠넘기기, 할당된 업무 외 업무지시가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고용이 불안하고, 급여가 낮으며, 차별과 갑질에 노출된 근본적인 이유는 신분이나 처우, 업무가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비정규직 전체를 포괄하는 단일한 법령이 없기 때문에 같은 직종이라도 지자체 조례나 지역별 단체협약, 직종별 지침 유무 등에 따라 노동조건의 차이가 크다. 또한 규정이 없어 제대로 된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정규직에 비해 고용과 처우 등에 대해서도 불합리한 차별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당시 학교비정규직에게도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개학이 연기되는 동안 임금을 지급하라는 요구에 대해 ‘관련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한 교육청도 있었다.
법제화가 필요한 이유를 묻자 ‘같은 일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교사·공무원과 임금 및 복리후생의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응답과 ‘직종 범위·채용·정원·배치기준 등 인사 및 임금체계 전반의 통일된 규정 마련을 위해서’라는 응답이 많았다. “교사·공무원과 동일한 보수 체계와 호봉 기준을 기대할 수 있어서”, “공무직 등 법적 신분이 마련되면 다음 단계로 교사 또는 공무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어서” 등의 응답은 극히 낮았다. 그간 정치권이나 보수언론 등은 법제화가 추진될 때마다 ‘비정규직으로 들어와 꼼수로 공무원이 되려는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해왔다. 이번 조사 결과는 이런 비난이 노동자들의 인식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드러냈다고 노조는 분석했다.
민주시민을 키우는 학교에서 불합리한 차별이나 비인간적 노동조건이 존재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저출생 문제 해결의 첫 단추가 현재의 어린이, 청소년을 잘 가르치고 돌보는 일이라면, 학교의 역할과 양질의 교육서비스는 더욱 중요하다. 100여개 업종의 17만명 노동자들의 신분을 규정하고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통일적 법제화는 더 이상 늦출 일이 아니다.